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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사쁨 May 24. 2024

체육대회가 저절로 열릴리 없다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불만에 절여진 목소리. 화가 나면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내미는 과학적 이유도 있는 걸까. 3반 아이들이 잔뜩 성이 나있다.

  

 이어달리기와 장애물 달리기 두 종목에 선수가 중복 출전할 수 없. 최소한 남자 8명, 여자 8명이 필요한데 우리 반은 선수가 부족했. 아이들이 체육선생님께 미리 말씀을 드려 규칙에서 열외 되었지만 이 상황과 사정이 다른 학급에 정식으로 공지가 되지 않. 중학교 아이들에게 열외는 특혜와 같다. 알음알음 알게 된 다른 반, 특히 3반 아이들이 울그락 불그락이다. 업하긴 글렀다.


 바로 전 체육시간, 선생님께 이의를 제기했 체육선생님은 중복 출전 금지 조항을 없애겠다 셨다는데 그건 싫단다. 그렇게 되면 계주로 뛰는 아이들이 장애물 달리기에도 출전할 것이고, 그럼 장애물 달리기에 이미 출전하기로 한 아이들이 뭐가 되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가득 찬 볼멘소리 사이반장이 조심스레 손을 들어 올 따끈따끈한 소식을 알린다. 기존의 규칙을 유지하는 대신 1상황에 맞춰 두 종목의 선수 숫자를 줄이는 것으로 최종 결정이 났단다. 긴급 속보가 전해지는 순간 잠시 다물었던 입에서 야유가 터져 나온다. 손으로 책상을 치고 고개를 2시 방향으로 꺾으며 눈알을 돌린다. 입이 가운데로 또 모인다. 이어달리기 선수를 줄이면 재미가 있겠냐는 둥, 우리는 경기에서 빠지자는 둥, 아예 체육대회를 하지 말자는 둥 점점 거칠어진다. 이래도 싫고 저래도 싫고 어찌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말이라도 해야 속이 시원하겠거니 하며 한참을 들어주고 있는데 결국 내 기가 건드려진다. 공평. 공평이라. 심박수가 올라간다. 아이들이 공평하지 않다고 했다.


  "공평하지가 않아? 얘들아 정말 공정하고 공평하길 원하면 반배치부터 다시 해야지. 지금 2학년에 있는 푸른 반(도움반) 친구들이 다 우리 반에 배치된 상태야. 공평한게 그렇게 중요하면 각 반에 한 명씩 다시 배치하고 시작해야지. 우리 반 애들은 너희와 다른 조건에서 1년을 지내야 해. 꾸준히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들이 많아. 이미 지난주부터 이번주 내내, 우리 반에는 일이 끊이질 않고 있어."


 "왜 1반에 다 배치됐는데요?"


 "너희가 자꾸 푸른 반 친구랑 싸우니까. 대 놓고 푸른 반 친구랑 같은 반 하기 싫다고 하니까. 푸른 반 친구가 반에 있으면 담임인 나도 힘든 부분이 있어. 하물며 하루종일 같이 생활하는 애들은 어떻겠어. 너희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너희 반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우리 반에서는 계속해서 일어나. 애들 나름대로 나한테 말하지 않고 참고 넘어가는 일들도 고. 그런 어려움을 2학년에서 우리 반 친구들만 겪고 있는데 체육대회 단 하루, 우리 반 상황에 맞춰주는 게 그렇게 억울하고 불공평한 일이야?"


 질문을 한 아이, 그 아이 때문에 3반에는 푸른 반 친구를 배치할 수 없었다. 왜 푸른 반 아이한테는 청소를 시키지 않느냐부터 소통도 어려운 푸른 반 친구와 어떻게 그렇게 싸우는지. 심지어 3월 학기 초에는 푸른 반 다 몰려 있다고 우리 반 아이들을 얼마나 놀려댔나 모른다. 그래놓고 저렇게 묻는다. 얼굴이 벌게져서는 공정함을 따지고 체육대회 보이콧을 선동면서 말이다. 배치는 선생님들이 한 일 아니냐고 따질 속셈이었을 터. 너 때문이라는 말이 목젖 치고 간신히 내려간다.


  뜬금없는 반배치 공격에 모든 것이 멈췄다. 체육대회랑 반배치가 무슨 상관이냐고 따져 물을지 몰라도 우리 반이 특별한 혜택을 누리고 나머지 반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것처럼 말하는 태도와 내용만큼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과 다르다. 우리 반 덕을 보고 있으면서 우리 반 반장에게 우르르 몰려와 따지기까지 했다. 왜 선수가 부족한지, 누가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취조하듯 물어놓고서 


"너희가 제대로 관리를 했어야지!" 


 자기 관리도 실력이라는 말이 체육대회에서도 나온다. 그 상황을 나에게 설명하다 결국 반장 눈물이 그렁그렁. 공감하되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적정 수준의 심리적 거리감도 필요하다. 알지만 안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의 속사정을 뒤늦게 알게 미안함과 책임감 때문인지, 아기 키우다 보니 눈물에 약해져서 인지 어른스럽고 선생답게 구는 것이 도통되지 않던 날. 마가 꼈나 싶을 만큼 우후죽순으로 아이들이 다치고 아프기도 했지만 가장 힘든 것은 맞다, 푸른 반 벼리(가명) 때문이었다.


 벼리가 한 경기라도 함께 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툭 던진 말,


 "줄다리기는 벼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이 말을 놓치지 않았다. 규칙을 알려주고 함께 해보려는데 줄을 붙잡고 신나게 흔들어대는 통에 연습은 엉망이 됐고 몇몇 아이들은 화가 났다. 결국 줄 밖으로 쫓겨난 벼리. 벼리 없이 연습 경기를 치렀는데 그게 또 졌단다. 그런데 그거 졌다고 아이들한테 소리소리.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뿌리, 귀에 소리 지르, 활동지 구겨서 넘기기. 나에게 알리지 않고 이르지 않고 저희들 나름대로 그러려니 하넘어가던 일들이 체육대회 앞에서 터져버렸다. 벼리가 줄다리기 밧줄을 흔들 때 아이들의 평정심과 인내심도 출렁였다. 아이들에겐 체육대회가 전부다. 체육대회 건드리면 이 꼴이 난다.


 우리 반 아이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이제야 알았다. 들린 인내심 덕에 아이들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눈에 힘을 주고 벼리를 지도했다.  푸른 반 선생님도 여러 차례 설명했다. 런데 벼리도 억울 게 있었는지 수업 중커터칼을 꺼내 들었고, 혼비백산한 아이들이 헐레벌떡 교무실로 달려오기까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든 사건과 사고와 사연들. 해결책도 없다. 그래서 미칠 노릇이었다.  나에게 '공평'은 좀체 삼지지 않는 말이다. 그런데 무리 그렇다고, 3반 애들이 뭘 안다고, 이 아사리판을 모르는 애들 앞에 반배치부터 다시 하자니. 나도 참 쩨쩨하다.


 신인 아이돌을 최고의 성과로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그녀의 기자회견이 화제다. 사연 많은 그녀 울먹이며 말했다.


 "어른이 그런 거 생색내는 거 역겹잖아요."


 반배치에 대한 불만을, 푸른 반 친구를 나만 맡아 힘들어 죽겠다는 하소연을 애들 앞세워 애들 앞에서 이런 식으로 해버린 것만 같다. 그런 거 생색낸 것 같다. 난 아직 어른이 아닌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글속의 글, 합평말고 자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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