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쏘아 올린 경영성과급 DC

퇴직에 진심

by 나은권

성과급 시즌이 되면 특정 지역의 공기가 달라진다.


최근 SK하이닉스가 역대급 경영성과급을 지급했을 당시, 공장이 위치한 청주와 이천 일대의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수입차 전시장에는 평일에도 대기 줄이 늘어섰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또한 인근 상가에는 예약자명에 'SK'라는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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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화폐 가치를 지닌 돈임에도, 왜 성과급 앞에서 유독 소비의 고삐를 풀게 되는 것일까?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는 사람들이 돈의 출처에 따라 가치를 다르게 부여하는 현상을 '심적 회계(Mental Accounting)’라고 정의했다. 같은 돈이라도 '월급’이라는 라벨이 붙으면 아껴써야하는 생활비가 되고, ‘성과급’이라는 라벨이 붙는 순간 소비해도 되는 돈으로 인식되기 쉽다는 것이다.


한 달 내내 피땀 흘려 번 '월급' 500만 원을 가정해 보자. 우리는 이 돈 앞에 신중해진다. 이렇게 말이다.

'이번 달 생활비랑 관리비 내야지'

'카드값이 21일에 빠져나가니까 아껴 써야겠다'

'이번 달은 외식을 줄여야겠는걸..'


그런데 어느 날 성과급 500만 원이 들어왔을 때는 사뭇 달라진다. 월급과 같은 금액이지만 이렇게 생각하기 쉽자.

'이건 별도의 보너스니까 괜찮겠지'

'그동안 미뤄왔던 노트북을 바꿔야겠다'

'우리 가족을 위한 여행을 가도 되지 않을까'


불현듯 쏟아진 성과급 앞에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관대해진다. 큰돈의 성과급이 통장에 찍히는 순간, 우리 뇌는 이를 노동의 대가인 '임금'이 아닌 뜻밖의'보너스'로 새로운 의미로 라벨링(Labeling)한다.


라벨이 바뀌면 가치는 하락한다. 공돈 계좌의 돈은 소비에 대한 죄책감이 낮아지고 써도 되는 돈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성과급은 공돈이 아니다. 당신의 일 년 치 노동력이 응축된 '소중한 근로 소득'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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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 성과급이 들어오는 순간에는 거의 예외 없이 소비 쪽으로 기울어진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인간의 뇌가 단기 보상을 우선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성과급이 통장에 들어와 소비의 대상이 되기 전에, 애초에 '미래 소득'으로 분류되도록 시스템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장치가 바로 '경영성과급 DC'이다.


그런데 '경영성과급 DC'가 뭔가요?

우선 경영성과급 DC의 개념부터 짚어보자. 쉽게 말해 '회사에서 주는 성과급을 지금 현금으로 받지 않고, 내 퇴직연금 DC 계좌에 바로 꽂아 넣는 것'이다. 내 통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연금 계좌로 넘어가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이를 '지금 번 소득'이 아니라 '나중에 받을 퇴직금'으로 인정해 준다. 이 한 끝 차이가 근로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세금 차이를 만들어낸다. 즉, 과세이연 효과로 지금 당장은 어떠한 세금도 안내도 된다는 혜택으로 귀결된다.


경영성과급은 근로소득인데 어떻게 퇴직연금에 넣나요?"

경영성과급은 어떻게 세금 한 푼 없이 퇴직연금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여기에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있다.

퇴직급여로의 성격 전환 : 고용노동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규약에 따라 성과급을 퇴직연금에 적립하기로 한 경우, 이는 근로소득이 아닌 '퇴직급여'로 본다"라고 명시했다.


소득세법상 과세이연 : 소득세법은 퇴직급여로 적립되는 금액에 대해 실제 퇴직하여 수령하는 시점으로 과세를 미루어준다. 지금 받으면 '근로소득세'지만, 나중에 받으면 '퇴직소득세' 대상이 되므로 당장 세금을 떼지 않는 것이다.


경영성과급 DC 전환: 30~40%의 손실을 확정 수익으로

현금 수령 시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금액은 생각보다 치명적이다. 경영성과급 1억 원을 받을 때 급여 통장에 들어오기도 전에 사라지는 것들을 하나씩 나열해 보자.


근로소득세 및 지방소득세 (약 38.5% ~ 41.8%) : 성과급은 당신의 최고 세율 구간에 더해진다. 연봉 8,800만 원을 초과한 상태에서 1억 원을 더 받으면, 그 1억 원에 대해서는 38.5%(지방세 포함) 이상의 세율이 적용된다. 연봉 구간에 따라서는 41.8%(지방세 포함)까지 치솟기도 한다. 즉, 세금으로만 약 3,850만 원~4,180만 원이 증발한다.

- 연봉 1.5억 원 ~ 3억 원 구간 세율 : 35% + 3.5% = 38.5%
- 연봉 3억 원 ~ 5억 원 구간 세율 : 38% + 3.8% = 41.8%


건강보험 및 장기요양보험료 (약 4.0%): 성과급은 '보수'에 포함되어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를 높인다. 근로자 부담분 기준 약 4%가 추가로 빠져나간다. 즉 1억 원 중 400만 원이 추가로 빠져나간다.


고용보험료 (0.9%): 실업급여 명목으로 0.9%가 지출된다. 즉 90만 원이 지출된다.


결과적으로 기존 연봉 1.5억 원 수준의 근로자가 추가로 경영성과급 1억 원을 현금으로 받으면, 세금과 보험료로만 약 4,340만 원~4,670만 원을 내야 한다. 내 손에 쥐는 건 총금액 1억 원 중 5,330만 원~5,660만 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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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DC로 전환하면 1억 원 원금 그대로 DC계좌에 쌓인다. 전환이라는 선택만으로도 급여계좌로 전액 수령하는 경우에 비해 약 30~40% 수준의 세후 자산 차이를 만들어낸 상태에서 운용을 시작하는 셈이다.


참고로 경영성과급의 DC 전환은 근로자에게만 유리한 제도가 아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충분한 경제적 이점을 제공한다. 성과급을 현금으로 지급할 경우 회사 역시 부담해야 하는 사회보험료(국민연금, 고용보험 등)의 일부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도, 근로자는 세후 기준의 실질 자산을 높일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비용은 낮추고 복지는 강화하는, 회사와 근로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제도적 장치라 할 수 있다.


경영성과급은 어떻게 내 DC계좌에 들어오나?

경영성과급 DC는 회사가 먼저 퇴직연금 DC를 도입해야 가능하다.


1) 규약 변경 및 동의 : 회사가 퇴직연금 규약에 관련 조항을 넣고 경영성과급 DC에 대한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2) 비율의 선택: 근로자는 경영성과급 지급 전에 '현금 수령'과 'DC 적립' 비율을 선택한다. (예: 100% DC 전환 혹은 50:50 분할 등)

3) 입금과 운용 : 선택 금액은 회사가 직접 근로자 DC 계좌로 입금하며, 이는 매년 쌓이는 정기 퇴직금(1/12)과는 별도로 관리되어 자산의 덩치를 비약적으로 키운다.


이렇게 경영성과급이 DC로 들어오면, 계좌 내에서 발생하는 투자 수익에 대해서는 과세 없이 재투자되는 복리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은퇴 시점에 이르러서야 상대적으로 낮은 퇴직소득세를 부담하게 된다.


반면, 회사가 기존에 DB(확정급여형)만 운영하고 있는 경우에는 어떨까? DB형은 근로자 개별 계좌가 없으므로 근로자별로 성과급을 넣을 '바구니' 자체가 없는 경우이다.


이 때는 회사가 기존 DB형을 유지하면서 DC형을 추가로 도입하여 복수로 퇴직연금을 운영하는 것이 가장 정석적인 방법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근로자는 기존 퇴직금은 안전한 DB로 쌓으면서 동시에 경영성과급만 DC 계좌로 받는 '성과급 전용 DC' 운영이 가능해진다. 최근 많은 대기업이 근로자의 절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가장 큰 선물

SK 하이닉스가 쏘아 올린 경영성과급 활용방식에 대한 고민은 단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된다.

"이번 성과급을 소비의 재원으로 쓸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월급으로 바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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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을 현금으로 받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세금과 사회보험료라는 이름으로 약 30~40%의 손실을 확정 짓고 투자를 시작하게 된다. 반대로 DC 전환을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투자 수익률을 고민하기도 전에 약 30~40%에 가까운 '수익률'을 확보한 상태에서 출발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자 성과를 높이기 위해 어떤 종목을 선택할지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 그러나 퇴직연금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무엇에 투자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구조에서 투자할 것인가’이다.


성과급을 현금으로 수령하는 순간 우리는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차감한 이후의 금액으로 투자를 시작하게 된다. 반면 DC 전환을 선택하면 과세가 이연된 상태에서 원금 전액을 운용할 수 있는 구조를 확보하게 된다.


성과급 시즌의 화려한 소비는 찰나의 쾌감을 준다. 하지만 성과급을 DC 계좌로 보내는 행위는 미래의 나에게 매달 지급될 또 하나의 월급을 만드는 과정이다. 서두에 살펴본 '심적 회계'라는 뇌의 장난에 보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성과급에 '현재 소비'가 아닌 '미래 소득'이라는 라벨을 붙이고 시스템에 맡기는 순간, 성과급은 더 이상 보너스가 아니라 은퇴 이후에도 계속 지급될 ‘마르지 않는 월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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