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coffee

by 이야기하는 늑대

내 삶 속엔 커피 향이 난다.



큰 의미는 없지만 바리스타 자격증이 2개 있다. 정확히는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이다. 2개의 자격이 모두 2급 자격증이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두 곳의 협회에서 자격증을 땄다. 이유가 있어서 딴 자격증이긴 한데 별 의미는 없다. 물론 바리스타 자격을 딴 분들과 준비하는 분들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커피를 만드는 관점을 크게 본다면 자격증은 하나의 방편일 뿐이지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커피와 인연을 맺은 건 대학교 시절이다. 군대를 전역하고 아무 생각 없이 놀다가 복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용돈 벌이나 좀 하자 생각하던 차였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밤새 친구들과 놀다 집에 가는 길이었다. 11월 어느 아침이었다. 7시 정도였던 것 같다.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알바공고가 보였다. 지금이야 알바 사이트나 앱을 통해 알바 자리를 구하지만 그때는 가게 문에 알바 구한다는 공고문을 직접 써 붙였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공고가 카페 알바였다. 그전까지 해 본 알바는 노래방 알바가 전부였다. 노래방 알바는 생각보다 지저분한 일이 많다. 손님들이 보통 밥 먹고 술이 거나해진 상태에서 오기 때문에 노래만 부르지 않고 속에 있는 걸 자꾸 확인한다. 그에 비하면 카페 알바는 수월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술을 마시는 공간이 아니고, 술을 마신 사람들이 온다고 해도 노래방처럼 호흡이 격해지고 혈액순환이 빨라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연락처를 기억하고 집에 가서 눈을 조금 붙이고 일어나 연락을 했다. 면접 일정을 잡고 간단한 면접을 진행한 후에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허드렛일이 전부였다. 출근해서 홀의 테이블과 바닥을 쓸고 닦았다. 당연히 화장실 청소도 내 몫이었다. 청소를 마칠 즈음 손님들이 들어왔다. 서빙을 했다. 지금이야 서빙을 해 주는 매장이 거의 없지만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생각 없이 청소하고 서빙하는 일도 꽤 재미있었다. 재미있었기보다는 할 만했다.


일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일이 손에 익자 추가적인 일들이 생겼다. 아침에 출근하면 청소에 더해서 과일주스를 만들 과일 손질을 도왔다. 키위를 깎고, 딸기를 다듬고, 토마토를 씻고 등등의 일을 했다. 과일 손질이 익숙해지니 생크림 만드는 걸 시켰다. 과일 손질을 하고 생크림을 만드는 일은 모두 바(bar) 안에서 이루어진다. 즉, 바 출입이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간단한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과일주스는 정말 만들기 쉬웠다. 레시피만 외워서 블렌더에 재료 집어넣고 돌리면 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추가적인 일을 시킨 것이 아니라 일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손님이 많아 바쁠 때면 과일주스 만들기는 내가 전담을 했다.



그다음으로 만들기 시작한 음료가 커피를 제외한 것들이었다. 아! 과일주스보다 만들기 쉬운 음료가 차였다. 차를 담아갈 포트에 티백이나 잎차를 넣고 뜨거운 물만 부어 잔과 함께 서빙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핫초코나 쉐이크, 지금은 없는 프라페 같은 음료 등을 만들었다. 이들 역시 레시피대로 재료 집어넣고 섞고, 데우고, 블렌더 돌리면 그만인 음료들이었다.



이제 마지막, 커피만 만들면 됐다. 일했던 카페가 커피에 상당히 일가견이 있는 그런 카페는 아니었다. 대학교 앞에 있는 사람들이 잠시 시간을 보낼 만한 그런 수준의 카페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커피를 만드는 건 대충 할 수 없었다. 우선 커피를 주로 파는 카페이니만큼 커피에 일가견이 있고 없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기본이었다. 그러니 함부로 만들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시엔 에스프레소를 바탕으로 한 커피 문화가 막 시작되는 시점이라 지역엔 소위 커피전문점이 없었다. 지역에선 다방보단 조금 더 세련된 카페들이 주를 이뤘을 뿐, 에스프레소 머신을 다루는 커피전문점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알바를 시작한 해가 2002년이었다. 서울 경기권에서나 스타벅스, 커피빈 그리고 몇몇의 프랜차이즈가 막 태동하는 시기였으니 지역엔 커피전문점, 바리스타라는 단어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 커피전문점의 문화와 바리스타라는 단어를 알린 일등공신은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차후에 자세히 해 보려 한다.



그런 시절에 지역에 있던 내가 일한 카페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가지고 있던 카페였다. 머신을 다뤄야지만 커피를 만들 수 있었기에 가장 늦게 배웠던 것 같다. 마지막 관문 같은 느낌. 머신을 처음 잡고 커피를 만들던 그 순간은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내 삶 속에 전혀 없었던 문화였다. 커피가 좋아서가 아니라 용돈이나 벌자 하는 마음에 우연찮게 알바공고를 보고 일을 하게 된 나였다. 그런 내가 커피를 알리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머신을 다루는 과정과 느낌이 너무 좋았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카페에서 파는 모든 음료를 만들 수 있는 지금으로 따지면 바리스타가 돼 있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당시엔 바리스타라는 단어도 없었을뿐더러 학원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자격을 딸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음료는 얼마든지 만들어 나갔다. 그래서 처음에 바리스타 자격증이 별 의미가 없다고 한 것이다. 생각해 보라. 엄마가 음식을 조금 잘해서 식당을 여는데 반드시 한식조리사 자격증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있으면 좋겠지만 추가적인 사항이지 필수적인 사항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알바는 대학교 졸업하는 순간까지 근 3년 여간 계속됐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하고 살아도 재미있겠다.’ 물론 의지박약이라는 본질을 현실이라는 좋은 변명 뒤에 숨기고 결국엔 일반 직장을 택했다. 과거는 돌릴 수 없고 후회는 의미가 없지만 지금도 간간히 생각이 난다. 그때 커피를 계속했으면 내 삶이 어떻게 됐을까?



의도치 않은 커피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상당기간 커피와 단절된 삶을 살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욱여넣은 송곳과 같아 결국엔 주머니를 뚫고 나오기 마련이다. 주머니를 뚫고 나온 커피라는 송곳에 대한 이야기를 몇 편에 걸쳐 이어 가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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