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나이

커피는 나이순인가요?

by 이야기하는 늑대

지역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다. 소위 ‘지잡대’ 출신이다. 그런데 운 좋게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이 됐다. 취업 합격통보를 대학 4학년 12월경에 알바하던 카페에서 받았다. 같이 일하던, 사장 역할을 하고 있는 형에게 합격 사실을 전하고 조만간 알바를 정리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직장을 잡는 과정이니 형도 카페에서도 축하와 함께 흔쾌히 알바를 정리해 주기로 했다.


취업 합격통보를 받았다는 것은 취업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알바를 하면서 취업준비를 했다. 물론 처음엔 커피 일을 준비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엔 지역에 이렇다 할 커피전문점도 없던 시절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알고 있는 건 가보지도 못한 ‘스타벅스’라는 세계적인 커피전문점이 있다는 사실 정도였다. 정말 단순하게 그럼 스타벅스에서 일을 해 보자 하고 준비를 했다. 하지만 바로 난관에 봉착했다. 스타벅스 매장은 서울 경기권에만 있는 것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인근 광역시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고 싶어도 기본적으로 서울에 있는 매장에서 1년 정도 일을 한 뒤 지역으로 발령받듯이 내려올 수 있는 구조였다.(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일단 서울을 가야 했는데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현실적으로 서울에 올라갈 돈도 없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500만 원 정도를 빌리기로 했다.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고 빌리기로 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이 엄마에게 빌리기로 했다. 그래서 빌려줄 줄 알았다.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우선 당장 빌려 줄 돈도 없었고, 지잡대지만 4년제 대학까지 나온 자신의 장남이 당시의 관점에서 커피 나부랭이나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엔 바리스타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던 시절이었다. 처음엔 자신감도 내비치고, 소리도 처 보고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포기한 이유는 당시에 사귀던 여자 친구의 ‘커피도 좋지만 조금 더 현실적인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한마디 때문이었다. 엄마 말은 안 듣더니 여자 말은 듣는 아주 나쁜 아들놈이다.


그때는 그 여자가 좋아서 말을 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럽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어차피 헤어질 사람이었는데 뭐 그리 좋다고, 자신의 미래를 휘둘리다니. 지나간 일이니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여하튼 이상을 접고 현실을 잡았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첫 직장은 제약회사, 두 번째 직장은 교육회사였다. 내 삶에서 가장 많은 걸 배운 시기이면서 동시에 가장 악몽 같았던 시기다. 이 야기를 풀면 너무 옆으로 샐 수가 있기에 이 이야기는 따로 풀어내도록 하겠다. 그 악몽 같은 시간에 욱여넣었던 꿈인 커피 향이 결국 올라오기 시작했다.


교육회사를 다니면서 커피 일을 하기 위한 면접을 보러 다녔다. 우선 스타벅스에 지원하기로 했다. 1차는 온라인 서류 지원이고 서류통과가 된 사람만 2차인 면접으로 이어지는 구조였다.(역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미 내 나이 30대 초반이란 점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로 지원을 했다.


결과는 처참하게 단 한 번도 1차 서류를 통과한 적이 없다. 이해가 됐지만 원망스러웠다. 나이 때문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나이 때문일 것 같았다. 이럴 거면 1차 서류 모집할 때 아예 나이 제한을 두든가 하는 볼멘소리도 많이 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우선 아직 하는 일이 있었고, 그 일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지원한 것이기도 해서 우선은 괜찮았다.


하지만 한 번 고개를 내민 생각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안 그래도 악몽 같았던, 하기 싫은 일이 더 하기 싫어졌다. 그때 우연찮은 기회에 ‘커피빈’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됐다. 스타벅스와 마찬가지로 우리 브랜드가 아닌 소위 물 건너온 카페 브랜드였다. 기본적인 업무구조까지 스타벅스와 비슷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지원을 했다. 역시 온라인 서류 지원이었다. 자신 있게 지원은 했지만 스타벅스와 비슷하겠지 하고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1차 됐으니 서울 본사로 면접 보러 오라는 통보를 받게 됐다. ‘어? 이거 봐라 됐다!’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하고 있던 일이 너무 하기 싫었기에 일을 상당히 줄인 상태였다. 그래서 하루 정도 비우고 서울로 면접 보러 가는 것이 그리 부담스럽진 않았다.


올라가 보니 본사는 아닌 것 같고 매장 근처에 있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지원자들 면접보고, 신입들 기본 교육하는 그런 장소 같았다. 적게는 30명 정도, 많게는 50명 정도의 1차 서류 합격자들이 모였던 것 같다. 면접방식은 그룹 면접이었다. 한 번에 3명에서 5명 정도가 함께 면접을 치렀다. 대다수가 나보다 어린 지원자들이었다. 내가 30대 초반이었는데 많아야 20대 후반, 보통은 20대 초중반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룹 면접을 하면 면접관들의 관심은 보통 나에게 집중됐다. 나이도 가장 많았고, 알바가 아닌 직업도 가지고 있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관심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잘 하진 못했지만 첫 직장이 제약회사 영업 사원이었다. 이어서 면접 당시까지 하고 있던 일도 교육회사의 선생이라지만 결국엔 교육상품을 파는 영업사원이었다. 이런 경력에 의해 말까지 그중에서 제일 잘했다.


말 그대로 면접장의 분위기는 나를 위해 흐르는 듯했다. 면접 당시에 딱히 떨리지도 않았다. 면접을 마치고 나면 다들 버스나 지하철, 택시 등을 타고 부랴부랴 터미널로 갔는데 난 인근에 주차해둔 내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이런 모든 부분이 면접 당시에 내 자세에 여유로움으로 묻어났다.


그렇게 1~2년 이란 시간 동안 동일한 카페 브랜드인 커피빈의 면접을 3번 봤고 다 떨어졌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것들이 나를 가지고 노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스타벅스의 행태가 더 나아 보였다. 그들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서류를 보고 이유가 나이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단 한 번도 1차 서류합격통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커피빈은 서류 지원할 때마다 합격통보를 보내왔고 난 매번 낚싯줄에 엮인 붕어처럼 끌려 올라갔다. 그리고 그때마다 면접관과 면접장에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였었다. 그래서 처음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이 때문이라면 서류에 다 나와 있는데 봐서 알 텐데 왜 뽑아 올린 거지? 그러니 나이 때문은 아니야. 도대체 이유가 뭐지. 스타벅스보다 더 원망스러웠고, 원망을 넘어 화까지 났다.


하지만 3번째 떨어지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이 때문이 맞았던 것 같다. 서류상으론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기회를 한 번 줘 보자 하고 뽑은 것 같다. 아니면 서류는 프로그램이 뽑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여하튼 그런 기회를 바탕으로 그들도 나를 확인했고, 나 역시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내 나이가 너무 많았던 것 같다. 30대 초반이 어찌 많은 나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쪽 조직에선 상당히 많은 나이였다. 커피 일은 대부분 20대 초반, 늦어야 중반에 시작한다. 그래서 20대 중반이나 후반이면 각 매장의 매니저 정도의 직급에 오르게 된다. 그런 조직에 신입으로 즉, 매니저의 모든 지시를 받아야 될 인원으로 30대인 내가 들어가야 되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난 괜찮다. 업계 사정 충분히 이해한다. 당연한 것이니 자세를 낮추고 나이 등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배우겠다.’라고 이야기해도 그건 내 생각이었을 뿐이다. 직급이나 계급으로 나이 상관없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군대도 아닌 곳에서 나보다 적으면 3~4살, 많으면 10살 정도 차이 나는 친구들이 나를 후배 삼아 일을 가르치고 업무지시를 한다는 것이 그들에겐 상당히 부담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면접을 3번이나 떨어지고 나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악몽 같은 당시의 일도, 떨어지는 이유를 나만 모르고 있었던 면접도 끝나가고 있었다. 대학교 때 알바 이후로 단절해 왔던 커피와의 연을 이어 보려던 노력이 현실이란 벽에 부딪혀 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커피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