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커피

by 이야기하는 늑대

2010년 12월에 교육 회사를 그만뒀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린 시절의 장래희망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교육 회사에서의 선생 노릇은 지옥과도 같았다. 이 번 글에서 다룰 이야기는 아니기에 이 정도로 정리한다.


그만두기 전에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고민을 했다. 일단 그만 둘 건 확실한데, 나가면 뭐하고 살지? 어린 시절의 꿈인 교단에 서는 학교 선생님이 되려면 다시 대학에 가야 하는데 갈 수 있을까? 30대 초반인데 다시 대학에 가면 4년,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편입이 된다고 해도 최소 2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그전에 입학이나 편입은 할 수 있을까? 그 시간만 해도 1~2년은 걸릴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입학이나 편입을 한 번에 성공해서 대학교에 갔다고 하자. 그럼 졸업까지 대략 4~5년의 시간이 지날 것이다. 졸업하면 선생이 되느냐? 아니다.


임용을 봐야 한다. 여기가 지옥이다. 도무지 감당이 되질 않는다. 그럼에도 한 3년 안에 임용을 통과한다고 가정을 해보자. 가정 말이다. 그렇게 임용까지 통과하면 8~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 지금의 나이가 됐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 낼 수 있는 거라면 도전해 볼 의사가 있었을 텐데, 당시엔 도전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포기했다.


이어서 공무원을 준비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소싯적에 공부를 조금 했다. 어느 시점까지는. 그때 나의 주특기가 암기였다. 특히 사회나 과학 과목은 시험 보기 전에 거의 통으로 다 외워 버렸다. 주변 친구들도 나의 암기능력을 인정했었다. 공무원 시험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시절에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공무원 시험은 누가 누가 암기를 잘 하나 하는 시험이었다.


그래서 이 번엔 용기를 내 공무원 시험 교재를 샀다. 그리고 일을 그만두기 전에 교재를 보면서 공부를 해 봤다. 하지만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만 둘 거긴 했지만 여하튼 일을 하면서 한 부분도 있지만 도저히 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역시 포기하고 준비 없이 그냥 교육 회사를 퇴사했다.



30대 초반이었다. 가진 것도 없는 집안의 아들이었고, 모아 둔 돈도 없었다. 한심스러웠다. 그럼에도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은근히 좋았다. 당장 내일부터 쉰다는 생각에 그러면 안 되는 상황임에도 입 꼬리가 올라갔다. 생각해 보니 고3 시절 수능 보고 난 이후부터 30대 초반까지 일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수능 끝나자마자 노래방 알바를 시작해서 군대 가기 전까지 했다. 군대 다녀오고 대학교 복학하면서 카페 알바를 했는데 졸업할 때까지 했다. 지잡대 출신인데 운 좋게 졸업 전에 취업이 됐다. 4학년 12월까지 카페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알바 도중에 합격소식을 듣고 알바를 정리했다.


그렇게 첫 번째 직장을 다니다 힘들어 7개월여 만에 그만두고 바로 이어서 이 번에 그만둔 교육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고3부터 30대 초반까지 학교 다닐 거 다니면서 쉰 적이 없는 나 자신에게 내일은 어찌 되더라도 오늘은 당장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너무나도 걱정이 많은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30대 초반의 나는 백수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 같다. 그 당시 한 마디로 즐거웠다. 일은 그만뒀지만 매일 출근은 했다. 게임방으로 출근을 했다. 게임방이지만 출근답게 당시에 끌던 자차를 타고 멋있게(?) 출근을 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면서 배고프면 간식을 사 먹고, 더 배고프면 일시 정지하고 밖으로 나와 밥을 사 먹었다.


혼자였다. 하지만 그다지 외롭지도 않았고 분명히 걱정이 많았어야 되는데 순간만큼은 그냥 그랬다. 밥을 먹고 다시 게임방에 들어 가 게임을 시작했다. 조금 늦은 아침에 출근을 해서 게임을 즐기다 조금 늦은 저녁이면 퇴근을 했다. 퇴근을 했으니 TV도 보고, 영화도 보고, 맥주도 마셨다.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다 새벽 3시 정도에 잠자리에 들었다. 알람 따위는 맞추지 않았다. 날 밝으면 눈은 떠지니까.


그렇게 6개월 정도 시간이 흐르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많이 되기 시작했다. 있는 집안 자식은 아니니 집에 손을 벌릴 수도 없고 애당초 생각지도 않았다. 모아 둔 돈도 없는 마당에 게임방에 출퇴근하느라 그마저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내가 취한 기가 막힌 행동, 게임방에 매일 출근해 쓰는 돈이 조금 부담되니 컴퓨터를 그냥 사 버렸다. 그리곤 집에서 게임을 즐겼다. 게임을 하다 잠들었고, 눈을 뜨고 몸이 일어나기 전에 발가락으로 컴퓨터 전원을 먼저 켰다.


배고픔은 간혹 들르는 엄마가 챙겨두고 가는 먹을거리로 해결했다. ‘이런 것도 아들이라고 챙겨주는 엄마 미안해요.’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배고픔 없이 게임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간간히 맥주만 사러 나갔다. 여기서 또 기가 막힌 엄마의 행동, 아들이 간간히 맥주를 마시는 걸 알고 이젠 맥주까지 사서 채워 줬다. 정말 대단하다.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 아들이 없었다. 그래도 일단 먹고 마시고 게임을 했다.


하지만 이제 갈수록 쌓이는 불안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그래 맞아! 그만두면서 이거 저거 고민하다 커피일 하기로 했었지.’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서 커피일을 알아봤다. 게임을 하면서 알아봤다. 커피일은 보통 정직원을 채용하진 않으니 알바 사이트를 통해 알아봤다. 어차피 컴퓨터를 통해 알아봐야 되니 게임은 계속하면서 알아봤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적극적으로 알아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시까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한 곳은 교육 회사였는데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다 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대학시절에 알바를 통해 남아 있는 조금은 아름다웠던 그리고 약간의 꿈을 꿨던 커피밖에 다른 길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였다. 커피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젊다. 보통 20대 초중반이다. 내 나인 30대 초반. 쉽게 뽑아줄 리 만무했다. 괜찮은 카페, 느낌 있는 카페는 나 같은 30대는 보통 받아 주질 않았다. 그럼에도 길은 이거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열심히 지원했고 면접도 은근히 봤다. 그렇게 한 두 군데 정도 짧게 일을 했던 것도 같다. 처음 생각과 조금 맞지 않아 정중하게 사과드리고 바로 그만뒀다. 그렇게 또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러갔다.


일을 그만두고 게임을 하며 백수생활을 하는 와중에 커피일을 찾기 시작한 지 9개월 정도가 흐른 시점이었다. 그냥 다 내려놓고 싶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이거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그렇게 살아온 결과임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원망스러웠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대상이 나 스스로였는지, 부모였는지, 사회였는지, 전부 다 였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랬다. ‘아! 사람들이 이렇게 나쁜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구나.’하는 생각도 했다. 생각만 했다.


그러다 우연찮은 기회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이란 분야를 알게 됐다. 말 그대로다. 우리 한국어가 외국어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다. 가르치는 일, 내 꿈이 원래 선생이었다. 괜찮겠다는 생각에 알아봤다.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에서 과정을 이수하면 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지원을 받아 면접을 보고 합격한 사람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 같았다. 면접을 봤고, 합격을 했다.


기억에 의하면 한 2년 정도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생각을 했다. 과정을 배우기 위한 학비를 벌기 위해 뭐가 됐든 알바를 하자. 과정을 이수하고 관련 직종의 일을 해보자. 뭐 이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운명의 장난인지 몇 개월 전에 올려 둔 커피일 관련 이력서를 누군가 검색을 통해 읽어 보고 연락을 준 것이다. 뜻밖이었다. 나이도 많은(커피업계에선) 나를, 그것도 올린 지 한참 된 이력서를 찾아서 연락을 줬다고?


알고 보니 그 카페에선 나 같은 사람을 찾은 것이었다. 카페가 외곽에 있어 밤에는 조금 무서울 수 있다. 외곽에 있으니 출퇴근에 용이한 자차 보유자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 사업 분야는 다른 것이 있으니 작게 운영해 보고자 하는 카페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너무 어리지 않은 남자를 찾았던 것이다. 딱 나였다. 내가 잘나거나 능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그냥 이런저런 조건들이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커피일을 할 운명이었나 보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준비해 보려는 시점이었기에 살짝 고민은 했지만 조금 더 마음이 이끄는 커피를 선택했다. 대학 이후로 단절된 커피와의 인연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다시 연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