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백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커피 일을 시작했다. 계절은 겨울이었다. 정확히는 백수가 된 해의 10월에 시작한 것 같다. 우선 사수가 있었다. 사장님과 함께 카페를 오픈한 멤버다. 그 사람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카페를 그만두게 돼서 내가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역시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남자였다. 나보단 한 두어 살 어렸던 것 같다. 커피에 나름 열정이 있었던 친구였다. 그랬으니 사장님과 카페를 함께 열었겠지.
카페의 기본적인 운영과정과 메뉴들에 대해서 안내도 받고 교육도 받았다. 그 친구는 조만간 그만둘 것이었고, 이어서 내가 카페를 전담해 운영해야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안내해주고 가르쳐 줬다. 열정적이기도 했지만 친절한 친구였다. 대학교 이후로 카페일이 처음이라 나도 기억을 소환하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모름지기 몸으로 익힌 건 조금만 건드려 주면 그냥 기억이 나는 법이다. 몇십 년간 안 타던 자전거를 어렵지 않게 타는 것과 같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 추출하는 법, 아! 그보다 앞서야 되는 것이 그라인더 다루는 법, 머신 관리하는 법, 우유 스팀 하는 법, 물류 시키는 법, 재고 관리하는 법 등등 말 그대로 카페 업무 전반에 대해 인계해 줬다. 앞에도 이야기했듯이 대학시절에 다 했던 것들이라 배우는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배운 다기보다는 잠들어 있던 몸에 저장돼 있던 기억을 불러내는 과정이었다.
그런 와중에 처음 접하는 커피가 있었다. ‘더치커피(Dutch coffee)’였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 커피고,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로 커피 이름도 ‘Cold brew’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커피를 추출하기 위한 방법이 커피 이름이 된 경우다. 당시의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면 더치커피는 후에 이름이 바뀌어 가는 과정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찬물로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커피는 일반적으로 뜨거운 물로 추출하거나 뜨거운 물에 타 먹는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도 기본은 뜨거운 물로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추출된 에스프레소에 찬 물을 타고 얼음을 넣은 경우다.
여하튼 상당히 이색적인 커피였다. 알아보니 더치의 의미는 ‘네덜란드의’라는 뜻이다. 즉, 네덜란드의 커피 혹은 네덜란드인들이 즐겨 먹은 커피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더 찾아보니 네덜란드가 식민지에서 커피를 배로 가져오는 과정 중에 커피를 추출해 먹을 때, 찬 물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당시의 배는 목선인데 목선에서 불을 이용해 물을 데우는 과정이 혹여 화재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 그랬다는 데 사실 확인할 길은 없는 그냥 ‘썰’에 불과하다.
우리 커피 문화가 초창기엔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마케팅을 위해 일본에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확실한 건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차가운 물로 커피를 추출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맛과 향이라는 부분이 뜨거운 물로 추출할 때와는 색다른 결과를 보여 준다. 맛과 향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기에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맛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깔끔함이다.
내가 느낀 부분을 이야기해 본다면 뜨거운 물로 추출한 커피와는 다른 향긋함이 있다. 뜨거운 커피도 분명히 향긋하다.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커피 향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커피는 향이 좋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커피는 뜨거운 커피이기에 당연히 뜨거운 물로 추출한 커피도 향이 좋다. 그런데 그 향긋함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다. 분명히 있다. 이런 차이점을 말로 설명을 잘 못해서 뒤에 이야기할 ‘핸드드립(Hand Drip)’ 공부에도 한계가 왔었다.
여하튼 차이점이 있는 향긋함인데 굳이 표현하자면 조금 더 은은하고 앞에도 이야기했듯이 깔끔함이 있는 그런 향긋함이었다. 그리고 잘 추출된 더치커피는 초콜릿 향이 난다. 반대로 잘못 추출된 더치커피는 담배 찌든 내가 난다. 극과 극을 달리는 커피라고 할 수도 있다. 담배 찌든 내가 날 수 있는 배경은 더치커피는 추출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하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추출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0초 내외다. 핸드드립 방식을 이용해 추출할 경우에도 길어야 5분 남짓이다. 인스턴트커피를 타 먹을 때도 물만 끓으면 부어 몇 초 안 되는 시간에 녹여 마시게 된다. 그에 반해 더치커피는 오래전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기본적으로 추출하는 데 몇 시간이 걸린다. 1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해도 뜨거운 물로 추출하는 방식에 비하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몇 시간이 걸린다. 짧게는 3시간, 조금 더 여유 있게 추출하면 5시간, 때에 따라서는 마감하고 더치커피 추출하는 기계를 걸어 놓고 퇴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즉, 뜨거운 물로 추출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긴 시간 동안 추출하게 된다. 이 부분이 잘 발현되면 은은하면서도 깔끔한 그리고 긴 시간에 의해 천천히 추출되는 과정에서 쌓이는 맛의 깊이가 상당하다. 하지만 그 반대가 되면 영 이상한 맛과 향이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이는 것이다.
그리고 더치커피는 카페인이 적은 커피라고 이름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조금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일단 이런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커피의 주요 성분인 카페인이 지용성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니 뜨거운 물에서는 추출이 잘 되지만 차가운 물에선 상대적으로 추출이 덜 된다는 것이다. 일견 들으면 그럴듯해 보인다. 그래서 당시에 그렇게 많이 홍보를 했다. ‘은은하면서도 초콜릿 같은 향과 깔끔한 맛을 가지고 있으면서 카페인도 적어 마시기에 부담이 적은 커피’라는 표현과 더불어 네덜란드에서 어쩌고저쩌고 이야기를 붙이는 그런 형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추출하는 시간이 뜨거운 물로 추출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길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용성이라고 했지 차가운 물에서 카페인이 추출이 안 된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니 조금씩 장시간 추출되는 과정에서 뜨거운 물로 추출할 때와 카페인의 양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연구 의뢰를 했다거나 성분 분석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상식의 선에서 생각을 했을 때 그러지 않을까 하고 혼자 결론 내린 부분이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이 더치커피를 추출하는 것이 주요 업무 중에 하나였다. 사장님은 본업이 있으셨고, 사장이라는 위치에 걸맞게 인맥도 넓었다. 물론 그 인맥은 주로 본업과 관계된 인맥이었다. 그런 분들이 생소해할 더치커피는 선물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명절 때만 되면 미친 듯이, 정말 미친 듯이 더치커피를 추출했다. 추출하는데 최소한 3~4시간은 걸리니 카페에 출근해 퇴근할 때까지 추출하고 퇴근하면서도 기계를 걸어 놓고 퇴근했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엔 카페에 손님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사장님의 본업은 웨딩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도심에 자리한 소위 ‘웨딩거리’에서 10여 년간 운영을 하다 보다 여유 있는 촬영을 하고 싶어 외곽에 단독 스튜디오를 차리셨다. 그 스튜디오 건물 1층 한 구석을 카페로 바꾼 것이었다. 도심 외곽에 있다 보니 커피를 마시러 찾아오는 손님보다는 알음알음 오는 스튜디오 고객이 많았다. 그래서 난 경관 좋은 작은 카페를 혼자 운영하는 기분으로 일했다. 바쁘지도 않았으니 금상첨화였다. 그래서 당시에 커피 공부를 많이 했다.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당시에 산 커피 관련 서적이 10권 정도 되는 것 같다.
더치커피가 처음 접한 커피였다면 ‘핸드드립(Hand Drip)’ 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해 본 적은 없는 추출 방식이었다. 사장님이 카페를 열면서 콘셉트로 잡은 주요 커피가 바로 더치커피와 핸드드립 커피였다. 그러니 인수인계 과정 속에서 더치커피와 마찬가지로 핸드드립으로 추출하는 방식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여담이지만 핸드드립이란 표현은 아마 일본식 콩글리쉬일 것이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초창기에 우리의 커피 문화는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한국의 1세대 바리스타라고 하는 분도 재일동포로 알고 있다. 핸드드립이란 표현을 보면 핸드는 손을 뜻하고 드립은 떨어트리는 것이다. 즉, 기계가 아닌 손을 이용해 물을 직접 떨어트려 추출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핸드드립을 영어권에서는 ‘푸어 오버(pour over)’ 또는 ‘브루(brew)’라는 표현으로 쓰는 것을 후에 알게 됐다. 지금에 와서는 이런 구분조차 사실 별 의미가 없지만 여하튼 그렇다는 이야기다.
일본식 콩글리쉬라 쓰기 좀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선 가장 일반적인 표현이니 그냥 쓰도록 하겠다.(일본식 콩글리쉬라는 이야기 역시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다.) 이 핸드드립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도 머신을 어떻게 세팅하느냐에 따라 상당히 세밀하게 커피 맛이 변한다. 그래서 그 부분을 파고드는 바리스타들도 상당히 많다. 난 다만 그런 재미를 핸드드립에서 느꼈을 뿐이다.
물을 끓인다. 추출된 커피를 담을 고풍스러우면서 예쁜 잔을 준비한다. 잔 받침이 있는 그런 잔말이다. 잔을 데우기 위해 뜨거운 물을 우선 담아 둔다. 잔을 데워 두는 이유는 추출된 커피를 상대적으로 차가운 잔에 담을 경우 커피의 온도가 내려감을 막기 위해서다. 추출되는 커피를 1차적으로 받아 낼 서버를 준비한다. 그 위에 분쇄된 커피를 담을 드리퍼를 올린다. 드리퍼 위에 종이필터를 깐다. 서버와 드리퍼 역시 먼저 뜨거운 물로 데워 둔다. 본격 추출을 하기 위해 뜨거운 물을 주둥이가 좁은 주전자에 옮겨 담는다. 모든 준비가 되면 마지막으로 커피를 갈기 시작한다. 커피는 성격이 고약하다. 습기에 약하고 맛이 순식간에 변한다. 그래서 커피 공부를 열심히 하는 바리스타들 중에 커피를 생선에 비유하는 사람도 많다. 맛있는 생선이지만 잘못 다루면 썩은 비린내가 진동하듯이 커피 역시 관리라는 측면에서 조금만 게을리하면 맛을 보장할 수가 없다.
커피를 정확히는 원두를 분쇄하는 순간의 향은 황홀할 정도로 좋다. 그런 향을 맡으며 드륵드륵 갈아 내는 과정 자체가 행복하다. 물론 카페에선 보다 빠르게 갈기 위해 전동 그라인더를 사용한다. 분쇄한 커피를 준비된 필터가 깔려 있는 드리퍼에 담는다. 고르게 잘 담아내고 호흡을 고른다. 종교의식을 치르기 전 사제의 마음가짐 같기도 하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주둥이가 좁은 주전자를 집어 든다. 그리고 천천히 물을 붓는다. 여지없이 향기로운 커피 향이 코를 찌르고 담겨 있는 커피는 빵빵하게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물을 붓는 행위를 조심스럽게 두 번, 세 번 반복 후 추출을 마무리한다. 드리퍼를 치우고 서버에 담긴 커피의 향을 다시 한번 음미하고, 준비된 예쁜 잔에 담는다. 잔에 담긴 커피 표면에 어린 김이 사그라지듯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맛을 본다. 향을 맡는다. 평을 해야 되는데 평을 할 말을 찾지 못한다. 핸드드립 공부할 때 정말 다양한 표현을 빌려 화려하게 커피의 맛과 향을 표현하는 걸 많이 봤는데 난 도저히 그런 식의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대충 생각나는 표현을 한 번 이야기해보면 이렇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커피의 표면은 악마의 얼굴 같은 검은색을 띠고 있지만 그 순수한 악마성에 매료되듯이 나도 모르게 잔을 집어 든다. 코를 찌르는 향은 장미정원을 노니는 나비의 살랑거림이 느껴지는 듯하다. 처음 모금을 머금었을 때 휘몰아치는 파도 같지만 또 따뜻한 여름날의 비를 맞는 포근함을 주기도 한다. 에티오피아 커피 농부의 땀과 노력이 느껴지는 그런 맛이다.’ 뭐 이런 식이다.
상당히 과장되게 예를 들기는 했지만, 나는 저런 표현을 할 수 없겠다 하는 그런 벽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래서 그런 내 마음을 대변하듯이 아주 과장된 예를 들었다. 하지만 추출하는 과정은 정말 재미있었다. 새롭게 알게 된 더치커피 그리고 알고 있었지만 해 본 적 없는 핸드드립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듯해서 일을 하는 카페였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아! 한 가지 빠트린 내용이 있는데, 핸드드립으로 추출한 커피가 혹여 너무 진하다면 ‘필라델피아 치즈케이크’와 함께 하는 걸 추천한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상당히 맛있다. 커피도 케이크도.
카페에서 일을 했다라기 보다는 커피를 배웠다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간간히 오는 손님을 맞으며 신나게 더치커피를 추출하고, 핸드드립을 위시한 커피 공부를 만족스럽게 하다 보니 어느덧 겨울을 지나 봄이 왔다. 그해 봄에 커피 공부를 하면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정말 많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