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릴 걸 예상했는지 나도 모르게 준비를 했다. 매니저로서 일을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진 시기가 있었다. 더 정확히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커피를 만드는 일은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고 나름 규모가 있는 카페에서 마음이 맞는 직원과 커피를 배우면서 만들었다. 행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말이 좋아 매니저였지 다른 알바들에 비해 급여를 엄청나게 더 받는 것도 아니었다. 기억에 의하면 알바들과 마찬가지로 최저시급으로 계산해 받았는데 한 달 기준으로 5만 원 남짓 더 받았던 것 같다. 이마저도 확실치는 않다. 그럼에도 분명히 재미있었고, 행복했다. 이유는 단 하나, 커피를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부분과 변화 없는 상황, 아니 변화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 두려웠던 것 같다. 내 카페를 차릴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돈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용기가 없었다. 정말 내 카페를 차리고 싶었다면 빚을 내서라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조금 변명을 하자면 자라 온 가정환경에 의해 빚을 내는 것을 상당히 두려워했다. 하고 싶은 커피를 배우고 만드는 순간이 재미있고 행복하면서도 불안했다.
40대가 돼서도 이러고 있어야 되나? 다른 사람의 카페에서 어떻게 보면 허울 좋은 매니저 생활만 계속하게 되는 건 아닌가. 이렇게 일해서 돈을 모은다고 해도 답이 나올 상황이 아닌데…. 한 달에 150만 원 정도를 벌었으니 기본적인 생활비 쓰고 반 정도를 저축한다고 해도 1년에 900만 원 정도, 10년에 1억인데. 이게 이렇게 해서 뭐가 될까 싶었다. 최근처럼 전 국민이 투자에 눈을 뜨고 있던 시대도 아니었고, 특히 난 투자에 영 관심도 없었고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자문을 하게 됐다. 다양한 꿈이 있었지만 우선 떠오른 건 선생님이었다. 세상 일 참 웃기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을 꿈꾸던 학생이 자라서 커피를 만들고 있다니…. 그 순간, ‘아! 그래, 커피를 가르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였다. 그런데 어떻게 가르치지? 가르친다는 것은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어야 된다는 소리다. 그리고 알고 있는 걸로 끝나면 안 되고 나름 체계도 잡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야지 하고 묻어 두었던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계속 이 카페에서 매니저 생활을 하건 안 하건 간에 자격을 따 두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도 모르게 이때부터 이 카페를 나와야겠다는 준비를 했던 것 같았다. 자격을 따고 커피에 있어 보다 전문가가 돼서 우선 커피를 더 잘 만들어 보자. 그리고 상황이 되면 커피를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 자격증을 땄다. 당시에 이사님도 응원을 해 줬다. 자기 카페에서 일하는 매니저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다는데 말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때는 이런 준비가 결국엔 서로가 헤어지는 여러 단초 중에 하나가 될 줄은 몰랐다. 나 역시 막연한 미래를 준비한 것이지 자격증 따고 바로 커피를 가르칠 수 있는 일을 구해야지 했던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엔 그렇게 나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백수가 됐다. 이제 일자리를 찾는 과정이 더 힘들어졌다. 단순히 카페에서의 일자리를 찾는 문제가 아니라 커피를 가르칠 수 있는 강사 자리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걸리긴 하지만 여하튼 카페는 차고 넘쳤다. 그에 반해 바리스타학원은 몇 군데밖에 없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내가 사는 지역에 바리스타학원은 5개 정도였던 것 같다.
우선 카페에서 일하면서 바리스타 자격을 딴 학원에 먼저 알아봤다. 하지만 자리가 없다고 했다. 자리가 없었던 건지 얼마 전에 학원에서 수강한 사람이 강사로 일해보고 싶다고 하니 미덥지 못해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자리가 없다는 데 자리를 만들어 나를 채용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몇 번 더 문의해 봤지만 결국엔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학원은 몇 군데 없었지만 다행히도 바리스타 자격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던 시기여서 강사를 채용하고자 하는 학원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면접 일에 맞춰 이 번에도 정장을 차려입고 갔다. 강사를 채용하는 면접이었기에 조금 더 신경을 썼다. 학원은 시내 한 복판에 있었는데 내부는 생각보다 아담했다. 내부를 카페처럼 꾸며놔서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규모가 있고, 커피 그러니까 음료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가르치는 학원이었기에 깔끔한 이미지였으면 했지만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사장님과 원장님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사장님과 원장님은 시누올케 사이였다. 면접은 사장님이 진행했다. 밝고 도전적이며 쾌활한 분이었다. 커피와 관련된 경력 그리고 어떻게 일을 할 것인지 등을 질문했다.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누구 앞에서 말은 잘한다. 거칠 것 없이 대답했다. 기억에 의하면 면접 마무리할 때 서로 합의 후에 바로 일하기로 결정했던 것 같다. 우선, 강사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더 마음에 들었던 건 규모는 작지만 전국 프랜차이즈 브랜드까지 운영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스튜디오에 속한 작은 카페, 설계사무실과 함께 운영하던 나름 규모가 있던 카페에서의 매니저 그리고 바리스타학원에서 강사로서 일하면서 프랜차이즈 실무까지 배울 수 있는 학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뭔가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을 받았다. 돌아보면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 실패를 했음에도 그 역시 경력으로 남아 학원에서 일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만족스러웠다. 실패를 하는 과정 속에서도 배움이 있고, 그 자체가 경험과 경력이 돼 조금씩 나은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부분이 은근히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강사라곤 하지만 벌이는 역시 카페 매니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릴 적 꿈이었던 선생님과 지금의 꿈인 커피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까지 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당장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