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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Nov 02. 2021

습관

 5월 말부터 8월 말까지 글을 썼다. 근 100여 일의 시간을 매일 글을 썼다. 이쯤 썼으면 습관이 잡히겠지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쓰기 싫어졌다. 누군가의 책에서 습관을 잡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21일이라는 내용을 봤다. 21일, 3주다. 내가 매일 글을 쓴 시간은 3주를 넘어서는 3개월이었다. 그런데 습관이 잡힐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책의 저자가 사기를 친 건가 싶은 생각을 했다.     

 


 사실 처음 글쓰기를 해보자 하고 마음먹었을 때도 이미 한 달 정도 매일 글을 썼다. 그때도 3주를 넘어 4주 정도를 글을 썼음에도 결국엔 습관이 잡히질 않았다. 글쓰기를 처음 해보자 하고 다짐했을 때의 한 달,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 다시 다짐하고 3개월을 썼지만 역시 습관으로 자리 잡히지는 않았다.     

 


 이어서 또 한 번 3주를 넘어서는 기간 동안 글을 썼지만 역시 습관으로 자리 잡히는 일은 요원했다. 이쯤 되면 습관이란 뜻을 내 뇌는 모르는 것 같다. 아니면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21일 동안 같은 행위를 하면 습관이 잡힌다는 책의 저자가 사기를 친 것이거나…. 나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선 그 저자가 사기를 친 것이 맞아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글쓰기 이외에도 살아오면서 많은 습관을 잡아 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운동, 다이어트, 학습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예들이 있지만 결과적으론 다 실패였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 10번이면 30일 간 계획을 세우고 수정하고 무언 갈 한 거라는 자위도 해 보았지만 습관은 쉽게 잡히질 않았다.     

 


 습관이란 부분을 우리가 하는 일과 연결시켜 보면 결코 쉽게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우리는 일을 한다. 매일 일을 한다. 나는 고등 시절 수능을 마치고부터 알바를 시작했고, 대학시절 내내 알바를 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하기 전에 이미 취업을 했다. 중간에 백수였던 시절이 1년 정도 있었지만 그 기간을 제외하곤 지금까지 계속 일을 했다. 안 할 수가 없었다, 다들 그렇듯이 기본적인 생활 영위를 위해선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부모가 돈이 많았으면 빌붙어 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모는 그런 재력이 없었다. 그러니 우선은 생존을 위해 일은 안 할 수가 없었다.     

 


 20여 년의 시간이다. 일을 한 시간이…. 21일이란 시간 동안 어떠한 행위를 지속적으로 하면 습관이 잡힌다고 하는데 앞에서 이야기한 예들은 다 실패했지만 일은 계속했다.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안 할 수가 없었다. 정말 강력한 동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이 잡힌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21일의 몇 배를 훌쩍 뛰어넘는 20여 년을 일을 했으면 습관이 잡혀야 되는 것이 아닌가?    


 앞에서 실질적으로 예를 들었던 글쓰기는 그 기간을 다 이어 붙여 봐도 6개월이 채 안 된다. 그런데 일은 20여 년이란 시간 동안 해 왔다. 단순한 개념의 습관과 생존을 위한 일을 비교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마어마한 기간이 이런 부분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 같은데, 왜 도대체 일은 습관으로 자리 잡히질 않는 것일까? 생존 문제만 아니라면 20년을 해 왔건, 30년을 해 왔건 간에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매일 든다.     

 


 중간중간 일의 종류를 바꿔 오긴 했다. 그중엔 싫었던 일도 있었고, 좋았던 일도 있었다. 좋았던 일을 할 시기엔 상대적으로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덜 하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일은 힘들다는 생각은 깔려 있었다. 글쓰기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살아보자 다짐하고 쓰는 글도 영 귀찮고 힘든 점은 어쩔 수가 없다.     

 


 습관이란 것이 행위의 연속성으로 설명되는 것이 맞다면 다른 건 몰라도 아무리 생존이라는 강력한 동기가 걸려 있어도 일은 습관이 돼서 조금 수월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왜! 해도 해도 힘들어 결국엔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그만큼 생존이란 동기가 강력한 것일까. 하기야 말 그대로 살아가야 되는 문제니까 그럴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발 좀 일이라고 하는 부분이 습관이 돼서 조금이나마 덜 힘들었으면 한다.      

 


 생존이란 단어를 반복해 쓰다 보니 문득 들은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우리가 습관을 잡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 몸이 안정적인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서 습관, 그러니까 일반적인 의미의 습관은 지금의 상황을 조금 더 낫게 만들기 위한 변화다. 그런 변화로써의 습관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생각하는 관습적인 안전과 몸이 생각하는 안전은 그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야식을 지속적으로 하면 살이 찌고, 속도 불편해지고 그로 인해 심해지면 성인병 등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우린 야식을 줄이는 습관을 잡으려 한다. 그런데 몸은 우선 일정 시간에 들어오는 음식의 포만감에서 오는 만족을 더 크게 느끼고 그 만족 자체를 안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조금은 전문적인 연구 분야이기에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예도 들 수 있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 유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속은 정말 좋다. 가능하다면 늘 그렇게 있고 싶다. 하지만 이불 밖을 나가야 운동을 해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고, 아니면 여행이라도 가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몸은 일단은 포근한 이불속을 택한다는 것이다.      

 


 글쓰기를 매일 해서 작가가 돼 꿈을 이루는 것, 운동을 열심히 해 건강해지는 것, 일을 열심히 해 많은 돈을 벌어 삶이 여유로워지는 것 등 분명히 고통이 수반되지만 이겨내고 습관(?)화 시키면 당장은 아닐지라도 멀지 않은 미래에 어떠한 형태로든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해 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몸은 당장 오늘, 삶의 안정을 더 추구하는 것 같다. 이 부분이 맞다면 몇십 년을 해도 일이 결코 습관으로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럼 결국 딜레마 dilemma다. 오늘을 살 것이냐? 내일을 바라볼 것이냐? 개인적으로 햄릿 Hamlet의 고뇌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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