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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n 12. 2022

EBS 다큐프라임 공부상처를 보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수치심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상입니다. 한국 사회와 학교는 공부를 잘하고 못 하고를 통해 삶의 의미와 왜 사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공부 중요합니다. 하지만 삶 전체를 놓고 보면 하나의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한국에선 공부가 수단이자 목적이 된 지 이미 오래인 듯합니다.



 학교에서 서열화되고 매겨지는 등급으로 인해 아이들은 절망감을 느낍니다. 영상에서 어떤 학생이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한우도 아니고 무슨 등급을 그렇게 매기냐고… 한 번 공부 못하는 학생으로 낙인찍히면 넌 해도 안 된다는 냉대만 받게 됩니다. 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해 보고 싶은 아이들의 의욕을 결국 꺾어 버리게 됩니다. 아이들의 슬픔이 느껴집니다. 영상에 소개된 멘트입니다. “슬픔은 배움을 가로막는 벽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그중에서도 소위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수치심, 절망감, 의욕상실 등의 슬픔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에 이른 듯합니다.



 학교에선 1등만 기억합니다. 학교에선 공부를 잘하면 그냥 자연스럽게 성실하고 착한 아이가 됩니다. 학교에선 이렇게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도 편견을 갖고 있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에게도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올바르게 평등하게 학생들을 대우할 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공부를 못 하는 학생들도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한 번 찍힌 낙인은 편견과 선입견이 돼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학교의 선생님과 부모 그리고 사회의 이런 편견과 선입견 속에 공부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조차도 박탈당합니다. 가르쳐 주는 선생님도 부모님도 없습니다. 그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들러리일 뿐입니다. 이런 무섭고 폭력적인 주변의 시선을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은 온전하게 받아낼 수 없습니다. 영상에 보니 성적으로 급식을 한다는 학교도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날카로운 칼로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짓입니다. 학교에서 이런 행위가 벌어진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현시대는 누가 뭐래도 평등사회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겐 공부 계급이 존재합니다. 이 공부 계급으로 본인들의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 대한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시기 어린 시선, 공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조금은 추악한 우월감…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잔인한 공부입니다. 세상은 같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곳인데 이런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면 과연 다른 사람과 같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이런 비교와 경쟁의 부담으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건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건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은 없습니다. 공부 자체가 싫어지다 보니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 공부 못 하는 학생들은 공부하고 싶어 하는 본인의 본능에 복수를 해 버립니다. 이때 부모의 욕심은 아이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게 됩니다. 언제나 항상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사회적인 잣대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을 합니다. 다 너를 위해서 그런 거라는 책임회피로 자신이 아이들을 애지중지 키운 보상의 개념으로 오늘도 본인들의 아이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 대고 있습니다.



 주변의 모든 시선이 학생들을 이렇게 바라보니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저 공부하는 기계들을 만든 게 아닌 가 싶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이 흘렀는데 변한 게 없다니 정말 가슴이 아프고 슬픕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도 변할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영상의 한 학생의 말처럼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가 지금의 대한민국에선 삶의 이유가 된 이 시점에 학생들과 과외라는 이름으로 1:1로 만나면서 교육을 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나 자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영상입니다. 나는 어떤가?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만 강요한 건 아닌가? 내가 일주일에 2시간 정도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의 모든 걸 바꿀 수 없다는 합리화로 그저 수학 문제, 수학 성적에만 매달리는 건 아닌가? 하는 여러 생각들이 듭니다.



 그럼에도 별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슬픕니다. 그럴수록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겠다고 또 다짐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존중하고 공부를 하는 이유를 같이 공유하고 수학만 가르치는 교사가 아닌 수학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고 싶습니다. 변화하지 않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잣대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아이들을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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