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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n 15. 2021

관조觀照

 성치 않은 몸이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움직인다. 병이 들어 성치 않은 건지, 나이가 들어 성치 않은 건지 모호하다. ‘이렇게 살아갈 바에야 죽자.’하는 생각도 들지만 생각은 생각으로 그칠 뿐, 생生은 비참할수록 질기다고 했던가. 모진 목숨이라도 이어 가겠다는 의지인지 아집인지 모를 무언가에 끌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삶, 움직여야 한다.     

 


 도와주는 이라도 있으면 염치 불고하고 고단한 삶이라는 핑계로 기대기라도 할 텐데 가족마저 외면한 몸, 그 누가 있어 도와주랴. 그도 한 때는 멋있는 남편으로 믿음직한 아빠로 불렸던 적도 있었지만, 현실의 냉정함은 지금 막 벼려 낸 칼보다 날카로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남편을, 아빠를 가족은 결국 외면하고 말았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라는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돌아서니 남보다 무서운 게 피를 섞은 가족이라…. 그 쌀쌀한 외면을 서운함과 원망보다 미안함이 앞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할 마음의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해도 아량이라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할 텐데.     

 


 가족은 있지만 혼자 남은 처지가 애달았는지, 뭐라도 해 봐야겠다는 되지도 않는 조급함이 앞섰다. 조급함에 눈이 멀어 사기를 당해 얼마 되지도 않은 재산마저 다 들어 먹었다. 이런 삶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술이나 마시고 죽자고 스스로를 놔 버렸다. 그렇게 알코올 중독이 되고 깡소주에 과자 하나 살 돈도 없어지자 술은 더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종이를 줍기 시작했다.     

 


 풍요로운 세상이라 버려지는 종이는 많았다. 죽지 못해 사는 삶, 죽지 말라고 소주라도 한 병 사다 마시라고 풍요로운 사람들이 종이를 버려 줬다. 삶에 이렇다 할 의지도 없으면서 종이 줍는 건 열심이었다. 종이 줍는 것마저도 경쟁이 치열했다. 능력이 있건 없건 간에 경쟁에서 밀려나 종이를 줍고 있는데, 그 속에서도 경쟁을 해야만 소주라도 한 병 사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비참함을 가중시켰다.     

 


 그 정성이면 막노동이라도 할 텐데, 무기력은 생각보다 무서운 병이다. 언덕에서 고꾸라지고 또 고꾸라지면 언덕 비슷한 것만 봐도 주저앉게 된다. 무기력이란 구렁텅이에 빠져 딱 소주 한 병 살 수 있는 정도의 노력이면 충분하다는 듯이 종이만 열심히 줍게 된다.     

 


 오늘은 웬일인지 종이가 많다. 평소 같으면 하루 종일 주워 봐야 수레 하나 채우기 힘든데, 점심도 되기 전에 수레 하나가 채워져 가고 있다. 이런 삶도 삶이라고 순간의 기쁨이 올라온다. 이 속도로 줍다 보면 무겁겠지만 두 수레 분량은 나올 것 같은 기분 좋은 상상으로 열심히 주웠다. 소주 한 병에 괜찮은 과자 한 봉 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힘든지도 모르고 주웠다.     

 


 하지만 썩어진 몸, 기운이 달려 헉헉거리며 호흡을 돌리지 앉을 수 없어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날은 춥지도 덥지도 않아 그렇게 스르륵 수레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얼마 뒤 ‘후드득’하는 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비릿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대지를 때리고 있었다. 큰일이다. 종이가 젖으면 안 되는데, 오늘 당장 돈을 받지 못할 텐데, 하루 주워 하루 먹고사는 삶인데 오늘 종이를 팔지 못하면 굶어야 하는데, 망연자실 종이와 함께 비를 맞았다.     

 


 종이도 젖고 그의 몸과 마음도 젖었다. 울고 또 울어 온 삶이기에 아직 눈물이 남아 있을까 싶으면서도 눈물이 나온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이 볼을 흘러 몸을 타고 땟국물이 되어 흐른다. 그렇게 한 참을 앉아 있었다. 소나기답게 얼마 후 비는 그쳤다. 계속 앉아 있을 수는 없어 비에 젖어 무거운 건지, 삶에 치여 무거운 건지 모를 몸과 더 무거운 수레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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