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by 이야기하는 늑대

어떤 전개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고민을 해 봤지만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게 가장 좋은 전개 방식일 것 같다. 지나 온 날과 삶 속에서 실수들을 있는 그대로 떠 올려 보는 과정이니 시간의 흐름대로 풀어 나가는 게 글을 쓰는 나도, 읽는 독자들도 수월할 것 같다.



태어나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의 이야기를 먼저 해 보려 한다. 사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실수한 일이건 뭐건 간에 기억이 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자그마치 40여 년 전 이야기다. 더군다나 유아기의 이야기니 기억을 하는 게 어쩌면 이상한 것이다. 그럼에도 꿈같지만 희미하게 기억이 나는 몇 가지의 이야기와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시기의 이야기는 기억나는 대로 다 해봐야겠다.



아마 실수를 가장 많이 한 시기이겠지만 그때의 실수들은 처음으로 세상을 배워가면서 하게 되는 필수 불가결한 생존을 위한 실수이기 때문에 많이 하면 할수록 조금 더 단단해지는 그런 실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실수는 모두가 기다려 주는 그런 실수니 해도 부담이 없는 실수이기도 하다. 그런 실수조차 주변에서 귀엽게 바라봐 주던 그런 시기였으니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바나나를 좋아했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좋아했다.’가 아니라 ‘좋아했던 것 같다.’라고 이야기한 이유는 딱 한 가지 상황이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린 나를 엄마가 업어 주고 있었던 것 같은데 바나나를 먹으려는지 들고 있었다. 그런데 한 손이 아닌 두 손에 바나나를 하나씩 들고 있는 그런 상황이 뿌연 꿈속의 장면처럼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나중에 엄마가 ‘너 참 욕심이 많았다고, 뭘 줘도 꼭 두 손에 다 쥐어 줘야 됐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통해 그 장면이 꿈이 아닌 실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발에 차일 정도로 싼 과일이 바나나지만 그 시절에는 바나나도 그렇게 저렴한 과일은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다.



가난한 집에서 욕심 많은 아들 식탐 챙기느라 등허리가 휘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라고 말하기엔 너무 감정이 메말라 사실 눈물이 나진 않는다. 그냥 그렇게 써야 될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썼다.) 딸아이가 딸기를 좋아하는데 팩으로 사 오면 난 한 두어 개 먹을까 말까다. 내 식욕이면 딸기 한 두 팩이야 우습게 앉은자리에서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울 수 있지만 딸아이가 좋아하니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그런 부모 마음을 부모가 되어서야 겨우 느끼는 구나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엄마 미안하고 고마워.



이 이야기는 들은 이야기인데 이건 실수가 맞다. 정신이 팔린 거니까 실수가 맞다. 그런데 또 정신이 팔릴 수밖에 없었던 5살쯤의 이야기이니 이해가 가기도 한다. 5살이니 이거 저거 생각할 겨를 없이 정신을 팔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세 들어 살던 집 마당에서 주인집 아주머니와 엄마가 마당에 일거리를 펼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일이라기보다는 아마도 배추나 열무 등을 다듬는 뭐 그런 일이었을 것이다. 난 그때 엄마와 주인아주머니 옆에서 꼼지락 거리며 놀고 있었다고 한다. 자그마한 마당과 더 작은 화단이 있는 2층 주택이었기에 5살 눈에는 놀 거리가 많았으리라.



수다를 떨면서 일을 하던 엄마가 문득 불안한 마음에 마당 주변을 돌아보니 내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마당 대문을 특별히 걸어 잠가 두지 않고 엄마와 주인집 아주머니는 일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아주 잠깐 한눈 판 사이에 5살짜리 아들이 사라진 것이다. 너무 놀라 경황이 없던 엄마를 주인집 아주머니가 진정시키면서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나를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는 그랬다. 아파트가 많지 않았던, 집들이 옹기종기 골목을 이루고 모여 살던 그런 시절이었기에 누구 집 아이 하나 없어졌다고 하면 모든 동네 사람들이 다 들고일어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엄마 표현에 의하면 ‘미친년’처럼 나를 찾았다고 한다. 충분히 상상이 간다. 지금도 아들 사랑이 지극한 양반인데 내 성정이 조금만 내성적이었어도 마마보이 되기 딱 좋을 만큼 지극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아마 거의 반 실성 상태로 나를 찾았으리라. 그렇게 동네 사람들과 한참 찾아 돌아다니는데 누군지 모를 아저씨가 나를 붙잡아 두고 있었다고 한다. 달려가서 물으니 어린애가 혼자 돌아다니기에 길을 잃은 것 같아 엄마가 찾아오겠지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나를 찾아왔다고 한다.(고아가 될 뻔했는데 잘 잡아서 기다려 주신 이름 모를 아저씨,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당에서만 놀라고 했는데 왜 나갔냐고 물으니 사태의 심각성은 눈곱만큼도 몰랐던 나는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가서 나비 잡으러 쫓아갔다고 한다. 아들 잃어버린 정신 나간 여편네 소리 들을 뻔한 엄마는 화도 나고, 어이도 없고, 그렇다고 애를 혼낼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애는 찾았으니 다행이다 하면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난 그 일이 눈곱만큼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바나나 두 개를 두 손에 들고 있던 상황은 기억하면서 어쩌면 동네를 뒤집어엎었을 상황은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신기할 따름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7살 정도로 기억이 나는데 여름에 할머니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사실 정확한 나이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7살 보다 어렸을 수도 있고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수도 있다. 방학이 되면 매번 할머니 집에 놀러 갔었는데 그랬던 것 같기도 해서 7살 전후 언제쯤이었을 것이다.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도시에선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어서 즐거웠던 것 같다.



그때도 살아있는 새 한 마리를 밑에 집에 잡아 뒀다고 구경 오라고 해서 도시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경험인지라 호기심이 동해 바로 내려갔다. 정말 웬 새 한 마리가 다친 건지 뭔지 그 집 마당에 가만히 있었다. 신기해서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에 다가갔는데 그만 그 집 개에게 엉덩이를 물리고 말았다. 물리는 순간 죽는다고 울어 재끼니 집 어른이 달려 나와 개를 떼어 내고 우리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집으로 올라가 방에 앉혀두고는 읍내에 나가 약을 사 온다고 했다. 졸려도 절대 자면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삼촌과 나를 두고 부리나케 읍내로 달려가셨다.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 더 간단한 일이었을 텐데 무슨 이유 엔지 할머니는 나를 집에 두고 급하게 약을 사러 가셨었다. 그 이후론 기억이 잘 나질 않지만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니 아마도 잘 해결됐을 것이다.



할머니 집에 놀러 가서 개에게 물린 일을 떠 올리다 보니 왼손 엄지손가락에 아직도 남아 있는 흉터가 왜 생겼는지 문득 생각이 났다. 아마 이 일은 조금 더 뒤의 일일 텐데 할머니 집에 놀러 갔을 때 할머니를 따라 뽕잎인가 뭔가를 따러 가는 데 따라 간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나를 집에 혼자 두고 다녀올 수 없었기에 같이 갔을 것이다. 할머니가 뽕잎을 따는 그 주변 어딘가에서 놀고 있으면 되고 마을 사람들도 다 같이 가는 거라 나를 잃어버릴 일도 없어 그랬던 거 같다. 그때 마을 사람들과 할머니가 뽕잎을 따다가 점심 즈음이 됐나 마을에 아저씨 한 분이(아마 먼 친척이었을 거다. 지금은 거의 없지만 당시에 할머니가 살던 곳은 같은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다. 그러니 아마도 먼 친척이 맞을 거다.) 어디서 뱀을 잡았는지 그 자리에서 뱀 껍질을 그냥 벗겨 내더니 바로 구워 먹었다.



신기한 건 그 장면이 그렇게 충격적인 장면으로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뽕잎을 따러 간 그날, 난 낫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 왼손 엄지손가락을 베었고 그 흉터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뱀의 껍질이 벗겨지고 구워지는 장면이 그냥 그랬던 것 같다.(이 인간 소시오패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그렇진 않으니 걱정하지 마시길.) 마지막 이야기는 유아기의 일은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생각나거나 들은 일들 중에 굵직한 것들만 이 정도이니 얼마나 많은 실수와 사고를 달고 커 왔는지 안 봐도 비디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