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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l 25. 2022

MZ가 뭐여? 먹는 거여?

‘MZ세대는 1980년부터 2004년생까지를 일컫는 밀레니얼(M) 세대와 1995년부터 2004년 출생자를 뜻하는 Z세대를 합쳐 일컫는 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MZ세대는 2019년 기준 약 1700만 명으로 국내 인구의 약 34%를 차지한다. MZ세대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트렌드에 민감하며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한다. 특히 SNS 활용에 능숙한 MZ세대는 유통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에듀윌 시사상식 2022년 7월호에서 발췌-     

 

 그렇다고 한다. 웃기지도 않는다. 저런 단어가 무슨 공식적으로 알아야 되는 것처럼 포털에 검색하면 저렇게 멋있게 정리가 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제목에도 쓴 것처럼 난 도무지 MZ세대가 뭔지 모르겠다. 해당 내용을 읽어 보면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와닿는 게 없다.



 저런 구분이 너무 우습지만 그렇다고 하니 일단 저 구분에 맞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난 일단 MZ세대가 아니다. 1979년생이니 M세대 바로 직전 세대라 할 수 있다. 아니 그런데 이런 구분이 말이 되는 건가? 1979년 12월 31일 생은 M세대 이전 세대고, 1980년 1월 1일 생부터는 M세대라는 소리인데 둘의 차이가 있는 것인가?



 물론 시대적 배경과 어떤 사회적 특징 등을 바탕으로 대략적으로 구분 지어 놓은 사실이란 건 알고 있다. 그런 사실이 우습기 때문에 이렇게 까고 들어가는 거다. 참고로 친동생이 1981년생이다. 그렇다면 내 동생은 M세대가 맞는데 세상을 살아온 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등이 비슷하다. 친 남매사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따져 물을 수 있다. 맞다. 친 남매니까 객관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고, 일반화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주변을 보자. 친하게 지낼 수 있는 후배들이 아래로 넉넉히 잡아도 5살 안쪽의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전부 M세대인데 역시 나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나 관점 등이 다른가 하고 보면 그렇지 않다. 비슷하면 비슷했지 다르지 않다. 그럼 역시 또 그건 당신과 알고 지내는 후배들이니 그렇지 않나 하고 되물을 것이다. 역시 맞는 이야기다. 친동생보다는 덜 가까워도 상당히 가까운 사람들이니 많은 부분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당연히 일반화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을 전국에 있는 모든 1979년생들로 확대해 보자. 그들도 나처럼 후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아래로 5살이 아니라 10살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많다. 더욱이 난 인싸가 아니라서 후배가 몇 없지만 인싸 라면 더더욱 많을 것이다. 이래도 위에 설명한 상황이 나만의 특징적인 상황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인가?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세대별 구분을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개소리라는 거다.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난 1979년생이고 98학번이다. 아마 우리 세대를 X세대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바로 윗세대를 지칭한 건지 우리 윗세대 중에서도 강남의 대단하신 부잣집 자제분들(?)만 그렇게 지칭한 건지 명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여하튼 그들은 오렌지족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베이비부머 세대 이후에 세대 구분 표현이 없다시피 하다 살만해지니 세대 구분을 시작한 것 같고 그 시작이 오렌지족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따져 본다면 그렇다는 거지 난 내가 X세대로서 삶을 이렇게 살아왔다고 할 만한 어떤 특질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X세대라고 인식하고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따위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윗세대에 의하면 나 역시 말 안 듣는 요즘 것들이었기 때문에 윗세대들과 부딪히면서 컸다. 그런데 이는 역사적으로 언제나 항상 반복돼 왔던 것이다. 저 고대 그리스 로마 시절의 유물에도 요즘 것들은 말을 안 듣고 싸가지가 없다 뭐 이런 내용의 글귀가 있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윗세대와 바로 아랫세대가 부딪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과거를 살아온 윗세대가 미래를 살아갈 아랫세대를 가르치는데 문제가 안 생기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윗세대를 ‘정’이라 하면 아랫세대는 ‘반’이 되는 것이고 그들이 서로의 경험과 시간을 합의해 결론을 도출하면 ‘합’이 되는 것이다. 윗세대가 ‘보수’라면 아랫세대는 ‘진보’가 돼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거나 깨부수면 ‘개혁’으로 세상이 발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 굴러온 역사가 윗세대인 꼰대들과 아랫세대인 싸가지 없는 요즘 것들의 투쟁의 결과란 이야기다. 다시 말해 이런 투쟁이 없다면 우리 인간의 역사는 이어져 내려올 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관점에서 이런 투쟁이 없었다면 우린 어쩌면 도태돼 공룡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하나의 종으로서 유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과정과 투쟁이 최근엔 세대 구분 자체에 매몰되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다. 서로를 애써 인정하고 어쩌고 할 것도 없다. 우린 이렇게 살아왔고 또 우린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주면 되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역시 받으면 된다. 그러다 뭔가 아니다 싶으면 정당하게 부딪혀 싸우면 된다. 하지만 싸움이라는 것이 어느 한쪽만 완벽하게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어 이 쪽이 이 만큼을 얻으면 일정 부분을 내줘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그래서 서로 나름의 선을 지켜가며 싸운다. 물론 정말 아니다 싶으면 뒤집어엎는 경우도 있지만 흔치 않은 경우고 또한 정말 필요하다면 그런 상황도 큰 틀에서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손을 잡을 땐 손을 잡고, 치고 박을 땐 치고 박을 수 있는 관계.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친구사이가 딱 그렇다. 진정한 친구라면 친구의 어떠한 점을 고치려 하지 않는 관계다. 그냥 저 인간은 저런 인간이고 나는 이런 인간인데 저 인간의 저런 점을 감안해도 지낼만하니 지내는 그런 관계가 친구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치고 박을 수도 있다. 왜? 서로 다르니까. 그렇게 치고 박으면서 서로 커 가는 사이가 또 친구이기도 하다. 다소 확대해석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세대 사이의 관계도 일정 부분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MZ세대와 그 윗세대의 보다 직접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MZ세대와 그 윗세대가 가장 많이 부딪히는 단어 중에 하나가 ‘노력’이다. 윗세대들이 MZ세대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요즘 것들은 노오오오오오오오오력은 하지 않으면서 얻으려고만 한다.’ MZ세대와 거리를 두고 싶으면 앞에 문장 한 마디만 내뱉으면 된다. 그럼 관계는 끝이다. 그 관계의 끝을 보다 명확하게 확인하고 싶으면 이어서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 하면 거의 확실하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이야기하는 윗세대를 MZ세대는 벌레 보듯이 혐오한다. ‘극혐’이라고 하면 더 확실히 이해가 갈 것이다. 백날 이야기해 봐야 MZ세대들은 ‘저 꼰대 또 지랄이네, 블라 블라 아 뭐래는 거여. 듣기 싫어.’ 딱 이 생각으로 그 상황이 끝나기만 바라고 있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흐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세대가 모두 맞고, 또 모두 틀리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서로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기 때문이다. 꼰대란 무엇인가? 나이가 들어 꼰대가 아니다. 상대방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옳다고 우기는 인간이 꼰대다. 안타까운 건 보통 나이 든 사람들이 살아온 진짜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상대방의 말을 잘 안 듣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신보다 어린 그러니까 아랫세대와 이야기할 때 그 특징이 더 두드러진다.



 그런데 이 부분은 아랫세대들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해 줘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실제로 살아온 삶을 바탕에 두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이야기가 아닌 성공을 했으면 한 대로 실제 경험의 이야기가 있고, 실패를 했으면 실패를 한 대로 또한 실제 이야기가 있다. 그러니 그 주장이 강력할 수밖에 없다. 몸소 체험한 바를 이야기하다 보니 진정성의 농도가 짙을 수밖에 없다. 그 진정성이 과해져 신념이 되면 상대방의 말을 안 듣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 그러니까 아랫세대들은 정말 말 그대로 노력 없이 싸가지 없게 그냥 꿀 빨려고 하는 세대냐고 물어본다면 역시 그렇지 않다. 윗세대들은 자신들의 영광스러운 과거에 도취돼 세상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발전해 간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 세상이 발전해 간다는 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예전의 경쟁과 지금의 경쟁은 비교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아주 거칠게 비교해 본다면 예전엔 4년제만 졸업하면 적당한 곳에 취업할 수 있었고 보통은 그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4년제는 그냥 밑밥이다. 깔고 가는 거다. 아니 4년제 졸업이 밑밥인 시대도 이미 훌쩍 지나버렸다. 관련학과 자격증은 기본이고 과와 관련 없는 분야의 다양한 경험과 이력이 필요하며 외국어 역시 영어는 기본이고 추가로 한 두 가지는 더 할 수 있어야 한다. 윗세대 여러분! 어디 감히 요즘 것들이 노력을 안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안 한다고 하니 꼰대 소리 듣는 겁니다.



 이쯤 되면 결국엔 결론이 안 나는 이야기가 되는데 조금 더 크게 보도록 하자. 지금 현재 우리가 더 힘드니, 니들 노력은 노력도 아니니, 어쩌니 저쩌니 싸우는 건데 과연 노력을 안 한, 힘들지 않았던 세대가 있었을까?



 90대를 보자. 1930년대에 태어나신 분들이다. 지금 세대들이 힘들다고 까불어 봐야 나라 잃은 설움에 비할 수 있을까? 그리고 20대를 전쟁으로 보낸 분들이다. 80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초토화된 나라를 포기하지 않은 분들이다.



 70대는 어떤가? 전쟁 통에 태어나신 분들이다. 전쟁 통에도 생명은 태어나고 세상은 굴러가야 된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신 분들이다. 60대도 확인해 보자. 전쟁 이후에 개판이 된 나라에서, 세계 최빈국에서 태어난 분들이다.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표현, 보릿고개란 단어를 들어는 봤는가?



 50대도 만만치 않다. 먹고살기 바빠서 인권이고 뭐고 개나 줘 버린 독재의 시대에 태어나신 분들이다. 사람답게 일하고 싶다고 온 몸에 불을 지른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 해가 1970년이다.



 이제 나의 이야기인 40대 차례다. 위 세대에 비하면 사실 별거 없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독재가 끝나고 또 한 인간의 독재가 시작된 시기이긴 하지만 앞의 세대에 비하면 그래도 뭐 상대적으로 가장 덜 힘들었던 세대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세대는 20대에 IMF라고 통칭되는 외환위기를 뚜드려 맞는다. 이어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려고 할 때 미국의 한 금융회사에서 비롯된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또 한 번 처 맞게 된다. 뭐 그냥 가볍게 경제위기 두 번 정도 맞은 세대다. 나라 잃고 전쟁 나는 거에 비하면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니….



 마지막으로 30대, 20대 이야기를 해 보자.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 따위 다 불사 질러 버린 양극화, 지역갈등에 이은 세대갈등, 성별갈등 그리고 사람의 한계는 어디인가 시험하는 것 같은 경쟁구도 등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맞나 싶은 요소들만 가득하다. 여기에 코로나는 무슨 진한 향신료처럼 올라가 버렸다.



 이 거지 같은 역병은 3년째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가 시작될 때 고1인 아이들이 이제 고3이다. 이 아이들의 사회적 결함은 도대체 무슨 수로 채운단 말인가?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이 보다 심각한 역병이 있었나 싶다. 페스트라고도 불리는 흑사병이 있었지만 그때는 정말 의술도 뭐도 없고 무지해서 많이 죽었다. 하지만 지금의 코로나는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는 의술과 기술이 있음에도 아이러니하게 이 세상이 너무 발전해 발생한 역병이고, 또 그로 인해 쉽게 수습이 안 되는 상황이니 페스트 같은 역사적인 역병과 비교해 봐도 그 위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자! 요는 이거다. 우리 모두 힘들게 살아왔고 힘들게 살아갈 거라는 점이다. 힘든 거 이야기할라치면 한도 끝도 없다. 인간이 그렇게 생겨 먹었다. 다른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고통보다 자기 손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픈 게 이 인간이란 종자다. 그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냥 그렇구나 하면 된다. 그냥 그런 건데 귀를 닫고 서로의 이야기만 하다 보니 이어져야 할 세대가 단절되고 있다. 밀면서 당기면서 가야 되는데 밀기만 하고 있는 꼬라지가 난 것이다. 이래선 해결 방법이 나오질 않는다. 그러니 서로를 그만 구분하고 손을 잡고, 손을 잡기 싫으면 같은 방향이라도 보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제목 그대로 MZ세대가 뭐여 먹는 거여? 하고 씹어 먹고 소화시키고 더 맛있는 걸 같이 찾아 먹을 수 있는 서로 연결된 세대가 되길 바라본다.



 


 참고로 전 약간 아싸라 그런지 애초에 선배와 후배 이런 개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선배니까 대우해주기도 싫었고 후배라고 챙겨주기도 싫었습니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조금 강하다고 보면 맞을 거 같습니다. 군 생활할 때 선임으로부터 당한 부당한 것들을 제가 선임이 됐을 때 다 끊어 냈습니다. 군대를 갔다 온 분들이라면 어떤 의미인지 알 겁니다.



 지금의 40대는 보다 큰 시대적 흐름으로 봤을 때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문화가 끝나고 보다 수평적인 문화로 접어드는 그 어디쯤에 있는 세대입니다. 제 개인적인 삶의 시간을 이야기해보면 한 독재자가 죽은 1979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은 독재자가 물러난 1987년에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독재자는 물러났지만 두 명의 독재자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군림함으로써 사회는 권위적일 수밖에 없었고, 독재자가 물러났음에도 그 잔재가 남아 체벌이라는 단어가 없는(체벌이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굳이 단어를 들먹일 필요가 없는) 초중고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군 생활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에서도 그런 권위적인 문화에 의해 선배들을 챙겨야 했고 그게 당시의 당연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를 후배들에게 전가하지 않았습니다. 비근한 예를 들어 보면 직장 생활할 때 선배들과 밥을 먹으러 가면 선배들의 숟가락, 젓가락을 다 챙기고 혹여 식당 테이블이 더러울까 냅킨을 깔고 그 위에 올려 두곤 했습니다. 그런데 후배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면 바로 이야기했습니다. ‘하지 마. 이런 거 하지 마. 자기 숟가락, 젓가락 자기가 챙기면 되지. 이런 거 하지 마.’ 안 좋은 건 끊어 내면서 나름 세대를 연결시키려 애를 써 왔습니다. TMI 인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위에서 장황하게 떠든 이야기에 나름의 신뢰성을 부여하고자 함을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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