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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Sep 09. 2022

일기인데 이제 브런치에다가...

 글이라고 하는 걸 쓰겠다고 한 시간이 이제 2년을 넘어가는 것 같다.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는 여러 글을 통해 많이 밝혀 왔다. 너무 이야기해서 입이 아플 지경이다. 글로 쓰니까 타자를 치니까 손이 아프다고 해야 되나? 그만큼 글을 쓰는 이유를 많이 떠들었다는 이야기다. 별 다를 건 없다. 이상적인 이유는 글쓰기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것들, 내 속에 들어찬 것들, 그리고 경험한 것들을 끄집어내서 지면 혹은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으면 나를 보다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알고 싶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말 그대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고, 또 하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걸 바탕으로 세상에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다. 현실적인 이유는 지금 생각엔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데 글 좀 잘 써서 출간을 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 지금 하는 일을 때려치우는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지금으로선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글의 소재라는 게 결국은 내 삶 속에 있어서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누구인지 조금씩은 알아가는 것 같기는 하다. 보다 정확히는 막연하게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고 느끼고 있던 부분들이 조금은 명확해진다고 해야 되나? 그와 동시에 또 다른 면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어서 나에 대한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것 같으면서 또 모르겠다.



 내가 나를 잘 모르는데 뭐 아는 게 있다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떠드는지 가끔은 스스로가 같잖기도 하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나의 몸뚱이 끌어안고 살았으면서도 그 몸뚱이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쓰임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뭐 그리 잘났다고 떠드는지 어이가 뒤를 후려친다.



 날고 기는 기존의 전업 작가들도 많고 뒤늦은 재능을 발견한 그래서 작가가 된 분들도 많다. 그들에 비해 글쓰기 능력이라면 거의 일천한 내가 두각을 나타내기엔 재능이나 역량 등을 제외하고라도 시간적으로도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럼 더 시간을 들여 많이 쓰면 조금은 나아질까 하고 생각해 보면 그것도 딱히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책을 내고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건 불특정 한 대중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른 이야기도 아닌 그냥 내 이야기, 시답지 않은 내 이야기가 대중의 공감을 손톱만큼이라도 살 수 있을까? 물론 한 사람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요, 영화라 할 수 있다. 사람 하나가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할 이야기는 많고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경험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어디 나만 그렇겠는가. 내가 그렇듯이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고 그 다른 사람이 보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잘 풀어내면 내 이야기는 사람들이 읽어주지 않을 것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는 건 정말 요원한 일 같다.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그것도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원래 꿈은 선생이었다. 역사 선생. 공부를 곧잘 하다 중간에 삐딱선을 타서 결국 엎어졌지만 원래의 꿈인 선생을 보면 그 직업도 사람들 그러니까 학생들 앞에 서서 떠드는 직업이다. 그리고 민망해서 두 번째라고 쓰지만 사실은 진짜 가슴이 원하는 꿈은 또 가수였다. 아~ 잠깐! 노래를 엄청 잘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음정, 박자나 겨우 맞추는 정도다.



 꿈이라는 게 잘하고 못하고도 중요하지만 하고 싶은 마음도 중요한데 가수라는 꿈은 후자라고 할 수 있다. 가수도 역시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이다. 역사 선생이 역사라는 이야기를 떠드는 사람이라면 가수는 자기의 이야기를 노래라고 하는 매개를 통해 떠드는 정확히는 부르는 사람이다.



 대학생이 돼 우연치 않은 기회에 카페 알바를 하면서 바리스타의 꿈도 키워 한 때 바리스타로서 삶을 살았는데 바리스타도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엮어 볼 수 있다. 고객이라는 사람들이 본인이 원하는 음료를 시키고 나를 바라보면 그 앞에서 몸으로 당신의 커피를 내 경험을 담아 정성스레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하고 보여주는 직업이다.



 지금은 아이들을 1:1로 만나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역사 선생이 꿈이었는데 수학이라니. 문과 선생을 꿈꿨는데 수학이라니. 여러분들! 문이과 구분 그거 한 개도 의미 없는 겁니다이!) 대중이라고 할 수 없는 한 명의 아이지만 여하튼 사람 앞에서 떠드는 일이다.



 다소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안겨준 일도 있었는데 그 역시 사람들과 만나고 사람들 앞에서 떠드는 일이었다.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겪은 이야기든 만들어 낸 이야기든 지면과 화면을 통해 떠드는 직업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작가라는 직업이 나에게 딱 맞는 직업일 수도 있다.



 다만 문제는 이 역시 잘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어 하는 쪽이라서 그 결과가 대중들에게 공감을 사 현실적인 부분 그러니까 돈으로 연결될지가 의문이다. 물론 글을 씀으로써 나를 알아간다는 아주 이상적이면서 고상한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글쓰기는 가치가 있다. 그런데 내가 그리 고상한 사람이 못 된다. 난 세속적이며 통속적인 사람이다. 이 지점에서 모순, 인지부조화가 발생한다.



 내가 글을 쓰는 두 가지 이유, 나를 알아가는 것과 책을 팔아먹고 사는 것. 나를 알아가는 고상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글쓰기의 이유가 되고 일정 부분 바라는 바이기도 한데, 결과적으로는 그리 고상한 사람이 못 되고 글을 바탕으로 돈을 벌었으면 하는 마음.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니 좋은 결과가 나올 수가 없다.



 그렇다면 고상하지 않은 세속적이면서 통속적인 나를 있는 그대로 까발리면 되는데 어느 정도 그렇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딱히 재미가 없다. 고상하지 않은데 고상한 척하려니 뭐가 안 되고 있는 그대로 까발려 봐야 재미가 없고, 어 허허허허 그만해야 되는 건가 하는 현타가 만조시간에 꽉 들어찬 바닷물처럼 밀려들어 온다.



 이런 현타에 한 몫하는 아주 근본적인 이유가 안타깝게도 지금 쓰는 글들의 내용들이다. 일상이어도 너무 일상적인 그러니까 그냥 일기 밖에 안 되는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매일 글쓰기를 한 적이 있다. 한 3개월 정도 매일 일정 분량 이상의 글을 썼는데 쓰다가 지친 이유는 일기 쓰는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부터다. 물론 수필 혹은 에세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긴 하지만 그렇다고 또 그냥 일기와는 분명히 그 결이 다르다.



 당시의 내 글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일기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엔 스스로가 재미가 없어 매일 글쓰기를 중단하게 됐다. 그럼에도 글을 쓰겠다고 여기저기 떠벌린 게 있어 무엇보다 아내 보기 미안해서 뭐라도 써야지 하는 마음에 짧은 글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은 문장들을 한 두 개씩 써서 브런치에 올려 왔다. 지금은 다시 글쓰기 모임을 통해 일정 분량의 글을 쓰고 있기는 한데 아직도 일기 밖에 안 되는 수준의 글을 쓰고 있는 건 변함이 없다.



 물론 더 노력하면 조금씩 분명히 나아지겠지만 나아지는 정도가 눈에 보일까 의심스럽다. 무언가 빨리 결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인지 능력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글쓰기가 어렵다. 더 안타까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일기 수준밖에 안 되는 글을 쓰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거다. 그러니까 써야지. 꾸역꾸역 써야지.(글쓰기 모임 숙제 때문에 꾸역꾸역 쓰는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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