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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Dec 02. 2022

어색한 속초 2

2022년 10월 29일 ~ 30일

 조금 뒤에 J언니 부부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와서 다 같이 숙소를 향해 움직였다. 숙소 주차장에 모여 서로의 짐과 준비해 온 먹을 거리등을 나눠 들고 올라갔다. 숙소에 들어서 거실 전면 유리창을 통해 관람차가 보이는 모습을 통해 확실히 전에는 없었고 최근에 지어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각자 가족의 짐을 풀고 먹을 거리등은 바로 거실 바닥에 깔기 시작했다. 4년 전 메인 요리는 게찜이었는데 이 번엔 참골뱅이? 백골뱅이? 찜이었다. 이름이 무어든 조금은 씨알이 굵은 골뱅이를 특별한 간이나 양념 없이 그냥 쪄서 익힌 걸 기호대로 초장이나 간장 등을 찍어 먹었는데 맛있었다. 그 외에도 물회, 회, 굴, 불고기, 부대찌개, 등등 4년 전보다 훨씬 푸짐한 먹을거리와 안주 등이 준비됐다.


 거실 바닥에 음식을 깔면서 동시에 먹기 시작했다. 저녁도 겸한 자리여서 준비한 햇반도 함께 먹었다. 그런데 누가 돌렸는지 한 번에 여러 개를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햇반이 전체적으로 따뜻해지질 않았다. 웃긴 건 어쩌다 보니 햇반을 남편들이 먼저 먹기 시작했는데 아무도 덜 익었다고 이야기하질 않고 그냥 먹었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다 먹은 뒤에 누군가가 조금 덜 익은 거 같다고 하니 그제야 여기저기에서 안 익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 역시 덜 익었는데 애초에 익힌 밥을 냉동한 거기에 적당히 따뜻하면 됐지 하고 먹고 있었다. 다들 웃으며 마저 먹었다.


 충분히 먹을 만큼 먹고 게임도 하고 자리도 치우고 안주거리만 조금 챙겨 식탁에 올라 술을 마실 사람들만 자리를 잡고 마시기 시작했다. 거실 바닥에 자리를 깔고 먹을 때는 주로 맥주와 소주를 마셨는데 본격적인 술자리가 시작되니 어디 있었는지 와인도 나왔다. 와인 잔이 부족해 잔을 찾다 보니 이전에 묵었던 사람들이 두고 간 와인 잔을 찾았는데 싸구려 플라스틱 잔이었다. 잔이 없으니 종이컵보다는 낫다고 정말 허름했지만 플라스틱 잔도 고맙다고 썼다. 결국엔 사람이 더 많아 종이컵에 와인을 따라 마시기도 했다. 사실 와인이라고 해 봐야 그냥 포도주인데 뭐 대단하다고 꼭 와인 잔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왁자한 자리에서 굳이 와인 잔을 꼭 챙기는 것도 조금은 우스웠다. 중요한 건 와인이나 와인 잔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었다.



 글로 전달하기 힘들지만 와인을 마시며 서로 주고받은 농담이 참 웃겼다. 와인을 마시니 되지도 않는 폼과 격식은 한 번 차려 봐야겠는데 잘 알지도 못하고 환경도 안 받쳐주고 하는 그런 애매한 상황에서의 성인들의 가감 없는 과감한 농담이 참 재미있었다. 4년 전과 조금 달랐던 점은 같은 사람들이 같은 청주에서 역시 같은 속초에 왔는데 운전을 한 사람들이 이 전보다 많이 피곤했는지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는 것이다. 다들 40대 중반을 향해가니 영 예전 같지가 않은 것 같았다. 나 역시 버틸 만큼 버티다 아이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가 아내보다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그 이후로도 아내와 동료들은 꽤 늦은 시간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예의 그 북적북적한 흡사 대가족이 모인 듯 한 모습으로 가족 나름의 아침 준비를 했다. 잠이 덜 깬 채로 몽롱한 눈빛으로 반쯤 누워 TV를 보는 사람, 언제 일어났는지 말끔하게 씻고 화장까지 하고 있는 사람, 아이를 챙기는 부모, 말을 안 듣고 도망 다니며 뒹굴 거리는 아이들, 치우기 시작하는 사람, 어제 먹다 남긴 안주를 아침 삼아 주워 먹는 사람, 옆에서 라면 먹는 사람 등등등. 누군 가만히 있고 또 누군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거대한 하나의 유기체처럼 전체적으로 결국엔 해야 할 걸 하면서 지저분한 것들도 치우고 체크아웃 시간에 말끔하게 정리된 숙소를 뒤로 하고 나왔다.


 점심을 다 같이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곤드레 돌솥 밥을 잘하는 곳이 있다고 하여 미리 예약을 잡고 움직였다. 인원이 많다 보니 예약은 필수였다. 차를 타고 10여분 정도 이동하니 동네 골목 어귀쯤에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옛날 주택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주택인데 식당으로 개조한 것 같았다. 이런 식당들이 흔히 그렇듯이 벽면 여기저기에 방송에 나왔다는 걸 홍보하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예약을 하고 가서 자리를 잡자마자 반찬과 곤드레 밥이 나오기 시작했다. 따뜻한 밥과 정갈하고 깔끔한 반찬들이 입맛을 돋웠다.



 다들 식당 잘 잡았다고 예약한 사람을 칭찬하며 맛있게 먹고 나왔다. 비싼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요즘 물가가 워낙 사악해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사실 잘 이해가 안 간다. 물가가 계속 올라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건지 그런 시류에 모르는 척 쓸려 은근히 올린 건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냥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데 성격이 못 돼 먹어서 나도 모르게 꼴리는 배알 역시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고 따지거나 뭘 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요즘 밥값 너무 비싸!!!)


 식당에서 나오는 길에 식당 앞의 정경이 옛날 동네 골목의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아내들끼리만 자리를 잡고 앉아 사진을 한 장 찍고 움직였다. 이제 각자 차에 타기 전에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다음 모임은 언제 할 거냐는 대답을 바라지 않은 물음과 언제고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보자 하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며 서로의 차로 향했다.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됐다. 청주까지 쉼 없이 달려가도 3시간이다. 밤새 놀아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채로 3시간을 달려간다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분명히 졸릴 것이다.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 들어 고속도로를 달린 지 채 1시간이 되지 않아 너무 졸려 졸음 쉼터에 차를 대고 잠시 잠을 청했다. 그 와중에 잠든 아이가 깨어나 아이를 달래고 어르고 하다 조금 늦어지기도 했다. 어~ 하다 보니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 너무 늦어지면 아이 배고프니 휴게소에 들러 아예 저녁을 먹고 가자고 해서 휴게소를 들렀으나 아이가 먹을 만한 게 마땅치 않아 두 곳의 휴게소를 배회하며 시간만 허비하다 결국 거의 6시간이 다 돼 청주에 도착했다.


 아내와 나는 피곤하기도 하고 적당히 한 끼 넘겨도 그만이지만 자라는 아이는 그럴 수 없어 청주 도착 직전에 동네 돈가스 가게에 포장 주문을 해 놓고 찾으러 갔다. 가게에 들어서니 우리 돈가스 포장을 끝으로 마감을 했는지 가게 불은 거의 다 꺼져 있고 카운터 근처 자리 하나에 직원이 포장된 돈가스를 옆에 두고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돈가스 찾으러 왔다고 하니 포장된 돈가스를 그냥 주기에 계산은 됐냐고 물어보니 됐다고 다소 어눌하게 대답을 했다. 자세히 보니 외국인 알바였다.



 알고 보니 아내가 배달 앱을 통해 계산까지 이미 다 해 놓은 상태였다. 난 아직 배달 앱 사용이 익숙지 않고 잘 쓰지도 않아 포장이니까 당연히 음식을 받으면서 계산을 해야지 했던 건데 그 부분이 외국인 알바와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서로 어물어물하며 돈가스를 주고받다 그만 놓쳐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 순간 누가 들어도 과한 목소리로 재빠르게 알바가 소리를 지르듯이 죄송하단 말을 했다. 난 아니라고 같이 놓친 건데 괜찮다고 알바를 나름 안심시켰고 그 와중에 알바는 떨어트린 돈가스를 다시 주워 올려 내용물을 확인하고 문제 있는 부분을 수습해서 다시 잘 포장해서 줬다.



 문득 사장이 교육을 빡세게 시켰나? 아니면 못 된 손님을 만났나? 저렇게 죄송하다고 할 건 아닌데 뭐 해 줄 수 있는 건 없고 아무렇지 않다고 괜찮다고 말해주듯이 인사를 밝게 하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방금 가게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듯이 이야기를 했다. 집에 도착해 짐을 내리고 급한 대로 대충 옷만 갈아입고 우선 아이 밥을 먹였다. 성인 기준의 1인분 돈가스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아내와 나도 함께 나눠 먹었다.



 먹으면서 다음엔 속초가 아니라 청주에서 조금은 가까운 곳에 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의 가족이 청주에 다 있는데 굳이 속초를 간 이유는 관광지로 여행을 간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J언니 남편 직장 덕에 숙소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 간 건데 생각을 해 보니 가는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다음에는 가능하다면 숙소 비용을 조금 내도 청주에서 조금 가까운 곳으로 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여행의 끝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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