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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Dec 02. 2022

어색한 속초 1

2022년 10월 29일 ~ 30일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에 자연스레 서로의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가끔 하게 됐다. 아내가 성당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일을 할 때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 상당히 친했고 지금도 서로 연락을 하며 간간히 서로의 가족들과도 함께 여행을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행이라고 대단할 건 없고 하루 정도 숙소를 잡아 편하게 마시고 먹고 노는 정도였다.



 순서가 명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여러분 이런 순서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잊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고 순서가 뒤죽박죽일 수도 있는 겁니다. 중요한 건 완벽하진 않지만 함께 무언 갈 했다는 것만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으면 되고 더 중요한 건 지금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이 있을 텐데 그중에 한 두 가지 일 잊었다고 서로 눈에 쌍심지를 켜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괜히 에너지 낭비하지 맙시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며 에너지 쓸 일은 차고 넘칩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함께 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사귀고 그냥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인지 아내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서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어린이집 동료의 가족들과 저녁 약속에 함께 한 게 제일 먼저였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뒤에 같이 여행을 가자고 했는데 내가 당시에 주말에도 일을 하고 있어서 아내만 간 적이 있다. 아내가 동료들과 신나게 노는 사진을 보내줘서 일하면서 본 기억이 있다.



 아내의 동료들과 첫 만남인 저녁부터 이야기하면 세 번째 모임이 될 텐데 아내와 결혼을 한 뒤에 속초로 부부동반(크~ 내 삶에 부부동반이라는 단어를 쓸 줄이야.)뿐만 아니라 아이가 있는 집은 아이들까지 함께 1박 2일로 여행을 갔다. 역시 주말에 일을 하고 있었으나 또 빠질 수 없어서(무엇보다 내가 함께 하고 싶었다.) 미리 일을 빼고 함께 갔다. 모임의 가장 큰 J언니(아내의 지인이기에 호칭을 아내 기준으로 쓰도록 하겠다. 그리고 나도 왠지 그냥 J언니라고 부르는 게 이상하게 좋고 편하다.)의 남편 직장 덕에 속초에 아주 저렴하게 숙소를 얻을 수 있어 목적지는 그냥 속초로 결정이 났다.



 저녁 모임 이후에 처음으로 만나는 거고 또 숙소에서 하루 묶는 일정이라 다소 어색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만 J언니 내외를 제외하면 아내와 동료 그리고 남편들 모두 동갑이거나 한 두어 살 정도만 차이가 나서 서로 견딜만한 어색함을 유지했다.(말이 그래서 그렇지 나이들이 어느 정도 찼기에 어색한데 어색하지 않았다.) 기억에 의하면 메인 요리이면서 안주는 게찜이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게찜을 준비해 오는 J언니의 정성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어느 모임이나 사람들을 잘 챙기는 사람이 있는데 J언니 내외가 그랬다. 모임의 든든한 큰 언니/오빠/누나/형 같은 부부였다.



 특별히 대단할 건 없는 모임이지만 재미있었다. 가족별로 알아서 숙소에 약속한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해 저녁 겸 술자리 겸 음식과 안주들을 준비하고 술 마시면서 웃고 떠들고 간만에 봤으니 그간의 소식들을 주고받고 농담도 하는 그런 자리였다. 아이들도 간간히 봐서 그런지 부모들이 챙겨주는 음식이며 간식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스스럼없이 저들끼리 웃고 먹으며 게임도 하면서 자연스레 놀았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술도 한두 잔 들어가 거나해지면 맨 정신(?) 일 땐 아무래도 아내들에 의해 모인 남편들이기에 어색했던 남자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부둥켜안고 호형호제를 시작했다. 이제 막 결혼을 한 내가 결혼식에서 축가를 다른 사람이 불러줘서 그게 아쉽다고 하니 여지없이 노래를 시켜 생목으로 노래도 부르고 놀았다. 그 장면은 영상으로 박제돼 아직도 잊을 만하면 플레이되곤 한다.



 그렇게 늦게까지 아쉬운 마음에 남아 있는 안주거리들과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이면 남편들은 정신이 돌아오면서 다시 조금은 어색해졌다. 술도 덜 깨고 잠자리가 바뀌어 몸도 개운치 않고 어색한 기운에 서먹서먹해하면서 또 해장은 한다고 다 같이 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을 먹으며 어제 먹다 남은 안주도 주워 먹고 멋쩍게 웃어 가며 숙소를 정리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부랴부랴 준비한다고 해도 가족도 많고 아이들도 있고 하다 보니 여차 저차 체크아웃 시간을 꼬박 채워 겨우 늦지 않게 나가게 됐다. 점심을 다 같이 먹었는지 주변 가까운 관광지를 한 두어 곳 더 돌았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아마 그랬거나 바로 집으로 갔거나 했을 것이다.



 자그마치 4년 전의 일이었다. 1년에 한 번 까지는 아니어도 그보다는 자주 만나길 서로 기대하며 헤어졌는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결국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야 다시 모이게 됐다. 총 여섯 가족인데 네 가족은 모두 청주에 살고 있어 중간에 아내들끼리는 몇 번 만나긴 했지만 가족이 다 같이 모인 건 4년 만이었다. 그 마저도 한 집은 일이 있어 결국 오질 못했다.



 장소는 역시 속초의 같은 숙소였다.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가족별로 알아서 대략적으로 약속한 시간에 맞춰 숙소에 모이기로 했다. 숙소엔 저녁 전에만 도착하면 돼서 가는 길에 제천의 배론 성지를 들르기로 했다. 둘이 아닌 셋이 된 우리 가족은 당연하게도 이전보다 많은 짐을 챙기고, 아직 장거리 이동은 부담인 아이의 상황 등을 고려해 여러 가지를 준비하다 보니 예정보다 출발 시간이 조금 지체됐다. 일단은 원래 계획대로 가보자 했는데 아무래도 약속 시간이 넘어갈 듯하여 고속도로 타고 가는 길에 점심은 휴게소에서 해결하고 차라리 속초에 조금 빠르게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자고 아내와 의견을 조율했다.



 결정을 했으니 움직이면 됐다. 이전보다 나이가 조금 들어 장거리 운행이 살짝 버거운 감이 있어 은근한 부담을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청주에서 속초까지 시쳇말로 때려 밟아도 3시간 거리다. 성향 상 때려 밟지는 않기 때문에 3시간이 넘게 걸릴 것이고 휴게소까지 들를라 치면 4시간, 어쩌면 5시간에 육박하는 시간을 고속도로에 꼼짝없이 갇혀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폐소 공포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달려가면 결국엔 도달할 거란 명확한 기대를 바탕으로 버티면서 차를 끌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먹고 결과적으론 숙소에 약속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하게 됐다. 배론 성지를 들렀으면 분명히 늦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다른 가족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조금은 늦는다고 했다. 이럴 거면 배론 성지에 들렀다 올 걸 그랬나 하는 약간의 후회를 했지만 다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차를 끌고 주변을 둘러보며 거북이처럼 어슬렁거렸는데 딱히 갈 곳이 없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이 전에 없었던 ‘대관람차’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4년 전에도 같은 숙소를 잡았었는데 그때는 분명히 없었던 관람차가 떡 하니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위용을 뽐내며 천천히 돌고 있었다. 저렇게 큰 소위 ‘랜드마크’라고 불릴 만한 게 세워졌으니 사람 찾기는 쉽겠다하는 생각을 하며 아내와 뭘 할까 이야기를 했다. 남아 있는 시간이 애매해 멀리 갈 수도 없고 해서 괜찮은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둘러보며 눈에 들어온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들어가 사람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다른 가족들도 속속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문제는 숙소 열쇠를 갖고 있는 J언니 부부가 메인 요리 준비로 조금 늦어진다는 것이었다. 결국 도착한 가족들은 우리가 자리 잡고 있는 카페로 다 모이게 됐다. 다들 운전하고 오는 길에 커피를 많이 마셔서 더 마시기 힘들다 해서 커피 주문은 하질 않았다. 가장 먼저 도착한 우리 부부 커피 두 잔만 테이블에 놓여 있는데 다른 가족들이 계속 들어오면서 더 이상 추가 주문 없이 앉아 있기 힘들어 우선 카페를 나가기로 했다. 마침 카페가 바로 바닷가 앞에 위치해 있어 J언니 부부가 도착할 때까지 우리가 술을 마시러 놀러 온 거지만 그 장소가 바다라는 걸 환기시키듯이 바닷가를 둘러보고 거닐며 수다를 떨었다.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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