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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Dec 11. 2022

이기적 효도 1

 우선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은 제목 그대로 상당히 이기적인 글이다. 일단 난 효도를 못한다. 정확히 안 한다. 그러면서 늘 마음만 아파한다. 마음이 아픈 게 싫으면 효도를 하면 될 텐데 그게 또 안 된다. 그래서 이 글은 부모에 대한 효도라는 부분을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기적으로 다루게 된다.



 효도라는 단어를 쓰는 데 뭔가 걸리는 부분이 있다. 단어 자체가 뭐랄까 조금 올드해 보이기도 하고, 구시대의 유물 같기도 하다. 21세기에 효도라니… 그저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낳아 주고 키워준 미우나 고우나 부모라는 정확히는 엄마에 대한 싸가지 없는 아들의 마음 정도라고 표현하고 싶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고 가정의 분위기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보통 딸에 대한 아빠의 마음이 보다 애틋하듯이 아들에 대한 엄마의 마음이 조금 더 열렬한 것 같다. 아니 일반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엄마와 나에게만 국한시켜 보도록 하겠다. 엄마는 아들인 나에 대한 사랑이 열렬한 양반이고 난 딸에 대한 사랑과 마음이 애틋한 사람이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결혼하기 전에 몇 년간 혼자 살았다. 독립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쓸 만한 삶은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에 의해 독립을 당한 것이기 때문에 독립이란 단어가 딱 맞아떨어지는 삶은 아니었다. ‘혼자 살았다.’라는 부분만 놓고 본다면 독립은 분명하고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내 삶을 시시콜콜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보통은 독립을 해 혼자 살고 있는 삶이라고 누가 물어보면 대답은 하는 수준으로 살았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부모들의 무한한 걱정.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에서 저 유명한 ‘밥은 먹고 다니냐?’의 대사를 부모에게서 늘 듣게 된다. 물론 난 살인자는 아니기 때문에 극 중에서 살인자가 거의 확실한 용의자 같은 눈빛과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그저 무심한 표정과 눈빛으로 여물을 씹는 소 같은 반응을 보일 뿐이다.



 내가 그렇게 무심하게 반응하듯 엄마 역시 개의치 않고 한 걱정하면서 잊을 만하면 아들이 일하러 나간 새에 들러 이거 저거 먹을거리들을 사다 놓는다. 밥이야 말도 잘하는 밥솥이 다 해주니까 큰 문제가 없는데 반찬을 하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 부분을 아주 그냥 기가 막히게 파악하고 있는 엄마는 반찬을 그것도 아들이 좋아할 만한 반찬만 골라서 냉장고에 가득가득 채워 놓는다.



 어디 그뿐이랴. 초딩 입맛인 아들의 취향을 너무나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엄마는 군것질거리도 아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만 사다 놓는다. 여기서 멈추면 엄마가 아니다. 술 많이 마시지 말라고 하지만 또 술 좋아하는 거 아니까 맥주까지 풀세트로 채워 놓는다. 집에 들렀다 간다고 특별히 미리 기별이나 연락을 하지 않기에 일을 마치고 아무 생각 없이 집에 들어와 물이나 마시자고 연 냉장고가 꽉꽉 채워져 있으면 바로 그날은 혼자만의 회식 날이 된다.



 그 옛날 아들을 걱정해 모주母酒를 만들었던 전라도 부모들의 마음 그대로다. 웃긴 건 우리 엄마는 경상도 사람이다. 아! 지역감정을 부추길 생각은 없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지역감정은 정치인들이 지들 밥그릇 챙겨 먹으려고 있지도 않은 걸 만들어 낸 결과물이니 제발 좀 휘둘리지 않기를…



 이때 이 아들이란 놈이 얼마나 싸가지가 없냐면 가끔 지가 싫어하는 음식이 채워져 있으면 엄마에게 역정을 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음식이 해물탕이다? 아주 의아할 것이다. 사람마다 기호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해물탕 하면 다들 좋아한다. 나 역시 좋아한다. 이게 뭔 개소리야! 정확하게는 해물탕에 들어 있는 게를 싫어한다. 아니 게도 좋아한다. 아니 자꾸 뭔 개소리냐니까!



 게를 발라 먹는 게 귀찮아도 너무너무 귀찮다. 게가 무슨 맛인지 알고 맛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발라 먹는 게 너무 귀찮다. 발라 먹다 보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게 딱지를 내가 이렇게 게걸스럽게 발라 먹어야 하나 하는 현타가 아주 씨게 온다.



 그래서 난 게를 안 먹는다. 누가 발라주면 잘 먹는데 또 완벽한 이기주의를 표방하는 쓰레기 같은 인간은 아니라서 누가 발라주길 바라지도 않고 발라 놓은 걸 얄밉게 주워 먹지도 않는다. 그 와중에 아들 챙기겠다고 해물탕을 끓였을 엄마를 생각하면 또 안 먹을 수도 없다. 그래서 게는 싫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도대체 왜 해 주는 거냐며 승질을 내면서 먹는다. 가끔은 이게 아들이라는 인간인가 싶은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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