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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Dec 11. 2022

이기적 효도 2

 이 정도만 해도 나이가 찬 아들을 충분히 챙겨주는 건데 더 나아가 잊을 만하면 한 두어 번 씩 밖에서 밥을 사주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럼 나는 또 싸가지 없게 되받는다. ‘엄마, 요즘이 무슨 먹을 거 없어 배곯는 시절도 아니고 뭐 그렇게 밥을 먹었냐고 묻고 챙겨. 적당한 때 그냥 아무렇게나 먹어도 영양분이 남아도는 시대야. 요즘 애들은 보릿고개라는 단어도 모른다고 그런 시대에 맨날 밥, 밥, 밥, 알아서 먹을 테니 그만 신경 쓰고 엄마 친구들하고 맛있는 거나 사 먹어.’



 이 한 두 마디에 포기하면 엄마가 아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들이 성을 내거나 말거나 잊을 만하면 늘 언제나 항상 밥은 먹고 다니냐고 사다 놓은 것들 챙겨 먹으라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나와서 먹자고 늘 이야기한다. 나도 나지만 참 엄마도 엄마다. 그 엄마에 그 아들이라고 하는 표현이 더 맞으려나? 모르겠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결혼을 포기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적인 부분이 안정적이지 않았다. 사랑만으로 모든 걸 이겨낼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라는 걸 알아 버린 뒤라 사랑이라는 독이든 사과 같은 단어로 서로가 서로에게 족쇄를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깔끔하게 결혼을 포기했었다.



 혼자 사는 거야 어떻게든 살아지긴 할 테니 나중에 나이가 차면 엄마나 모시고 살지 뭐 이런 마음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은 아니었어도 나름 자유롭고 괜찮은 삶이었다. 딱 먹고살 만큼 일하면서 하고 싶은 게임하고 영화 보고 가끔 책이나 보면서 니나노~ 돈은 많지 않았지만 요즘 사람들이 바라마지 않는 한량에 버금가는 삶이었다.



 좋으면서 미안하면서 투덜거리는 돈이 많지 않은 한량 생활을 하다 문득 엄마가 왜 그렇게 밥을 먹자고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도 바보가 아니니까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긴 하지만 지금의 시대가 그때와는 천지차이라는 걸 모를 리 없다. 더욱이 외가는 잘 살면 잘 살았지 가난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밥을 챙기고 먹자고 하는 이유가 뭘까? 부모가 보기엔 칠십 노인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자주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답은 생각보다 너무 뻔했다. 엄마가 직접적으로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지만 그저 아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거였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 사람이 아니니 아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밥을 먹었냐고 챙기는 것이었으리라. 그래 그렇구나. 밥 먹자고 하면 특별히 바쁜 일이 없다면 그냥 먹으면 되는 거구나. 돈도 엄마가 내겠다는 걸 굳이 말릴 필요가 없는 거구나. 그렇게 아들의 밥을 챙기고 밥을 사주면서 엄마 스스로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는 거 겠구나 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해석을 해 버렸다.



 살뜰하게 먼저 엄마에게 밥을 먹자고 연락하고 내가 사 주는 게 맞겠지만 그런 괜찮은 아들놈이 아니라서 그렇게는 잘 못 하겠으니 그냥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되겠구나. 엄마가 좋아하는 메뉴를 골라도 그냥 먹으면 되겠구나. 그래, 어린 시절에 가끔 시장에 같이 가면 엄마가 좋아하는 보리밥을 먹자고 하면 그렇게 싫다고 했는데 내가 이제 할 수 있는 건 이왕 먹을 거 보리밥 먹자고 하면 되는 거구나. 또 엄마가 좋아하는 칼국수 먹자고 하면 군말 없이 맛있게 잘 먹으면 되는 거구나 하는 저 편한 대로 효도를 결정지어버렸다.



 그리고 난 예상과는 다르게 결혼을 했다. 이제 더 이상 혼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엄마가 우렁각시처럼 찾아와 맛있는 음식과 간식을 채워 줄 수는 없다. 결혼을 해도 아들 집이니 자주 찾아와 얼마든지 그럴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싶겠지만 그전에 엄마 스스로 ‘시’ 자가 들어가는 건 이러니 저러니 해도 며느리한테 부담이라고 선을 그어 버렸다. 그래서 이제 내가 찾아간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결혼을 해서 그런 건가, 나이가 더 차서 그런 건가? 하고 이제 드디어 효도를 하는구나 하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현재 엄마는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데 동생의 딸, 그러니까 나에겐 조카의 학습을 조금 봐주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고 있는데 가는 길에 엄마가 차려 주는 밥을 맛있게 먹고 수업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음으로써 나는 늘 그렇듯이 이기적인 효도를 한다. 평소에는 밥을 잘 먹지 않지만 그 날 만큼은 잔뜩 먹는다. 챙겨 주는 엄마 마음을 위해 그러는 건지 그냥 내가 먹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살짝 헷갈리지만 전자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다음 주에도 가서 밥을 먹고 조카 수업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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