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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l 14. 2023

베테랑 톨게이터

 https://groro.co.kr/story/4290



 말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말을 잘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기도 하다. 재능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이런 성향을, 하고 싶은 일로 연결시키기 위해 나름 노력을 했다. 그 일은 어떠한 형태로든 사람들 앞에 서서 떠드는 일이다.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나름의 노력이라 부족했는지 원하는 대로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하는 일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공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 교단에 서는 선생님이 아닌 학교 밖에서 아이들의 집을 찾아가는 사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선생님이다. 이상하게 돌려 말했는데 과외 선생이다. 개인 과외 선생은 아니고 교육회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 과외 선생이다.



 많은 교육회사가 있는데 지금 회사를 선택한 조금 남다른 이유는 강사가 될 수 있는 길도 제시해 주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회사와 처음 함께 할 때의 포부는 일을 많이 해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매니저가 되는 거였고 두 번째가 강사로 성장하는 거였다. 잘하지는 못 했지만 나이가 조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체력은 있어 다른 사람과 비교해 늦지 않게 매니저가 됐다. 매니저가 된 지 어느덧 3년이 넘었다.



 매니저가 되기 이전부터 강사 혹은 강의에 관심이 많아 회사에서 진행하는 모든 교육은 다 참여했다. 이 부분은 그 누구보다 잘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받는 교육에 멈추지 않고 회사에서 진행하는 일선 학교에 찾아가 학생들 대상으로 무료로 강의해 주는 사회공헌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함께 했다. 다만 주말에 시간을 내야 했는데 당시 기본 업무라 할 수 있는 수업이 주말에 더 많아 그 부분이 부담스러워 어쩔 수 없이 정리했다.



 그렇게 매니저가 되기 이전부터 강의나 강사 관련해서 직접 교육도 열심히 받고 일정 부분 강사 혹은 강사를 지원하는 형태로 함께 하기도 했다. 매니저가 되고 몇 개월 뒤, 일이 하기 싫어졌다. 슬럼프라면 슬럼프일 수 있는데 일을 때려치우고 싶었다. 학생을 가르친 시간도 오래고 지겹기도 하고 선생으로서 실력이 부족했는지 특별한 발전이 없는 학생들 보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그런 상황을 타개하고 또 다른 길을 찾기 위해 이러저러 교육이 있으면 물불을 안 가리고 참여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 앞에 이야기한 사회공헌프로그램과 다르게 학교에 전문 강의를 나가는 부서에 보조강사로 등록을 하기도 했다. 등록을 하긴 했으나 실제 강의에 참여하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노력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 노력이란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일단 보통 강의가 서울경기권에 있는 학교에서 많이 진행됐다. 내가 사는 곳은 청주이기 때문에 강의가 있는 날이면 새벽부터 준비하고 나가야 했다. 더 문제는 그렇게 다녀와서 오후엔 기존 업무라 할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하루 종일 일을 해야 되는 상황이 싫어 미루고 미루고 미뤘다.



 꽤 오랜 시간을 보조강사로 등록만 한 채 미뤘다. 이렇게 미루다 결국 흐지부지 끝나겠구나 싶은 순간 동시에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손톱만큼이라도 긍정적이면서 발전적인 생각이 든 그 순간을 놓치면 정말 그만 둘 거 같았다. 그래서 바로 잡아 채 강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의 일이었다.



 이후로 매월 따라다닐 수 있는 강의는 다 따라다녔다. 힘들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배고픔과 졸음운전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건빵을 우걱우걱 씹으며 다녔다. 보통 서울경기권에 있는 학교에 많이 갔고 가끔은 내가 사는 지역인 청주와 가까운 충청권도 한 두어 번 그리고 전라도에도 한 번 간 적이 있었다. 정강사가 되기 위한 보조강사로서의 자격요건인 강의 참관 시간을 채워야 해서 열심히 따라다녔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나 하는 현타를 매 번 맞이해야 했다.



 1년 정도 따라다니다 보니 요건인 참관 시간은 다 채우게 됐다. 시간만 다 채우면 바로 정강사의 자격으로 강의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서두에 이야기했지만 말하는 걸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다. 이런 성향을 십분 활용해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려웠고 두려웠고 부담스러웠다. 대상이 학생들이어서 더 그랬던 거 같다.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에겐 별스럽지 않은 말도 자칫 오해를 살 수 있고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다시 미뤘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강의 ppt를 만들어야 했는데 이 부분이 내 성향과 참 맞지 않았다. 머릿속에 모든 내용을 다 담고 있는 그래서 툭 건드리면 어떠한 내용이라도 술술 나올 수 있는 ppt 따위는 필요 없는 강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부족했기에 ppt가 필요했지만 그걸 만드는 게 싫었다. 귀찮았고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영 오글거렸다. 조금 더 부연하자면 ppt의 그 요상한 효과들이 싫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준비가 안 된 상태이기 때문에 강의를 나갈 순 없었다. 그래서 미뤘다. 궤변 같은 변명을 늘어놓자면 준비 안 된 강사에 의해 피해를 볼 학생들을 위해서 미뤘다. 그렇게 또 몇 개월이 흘렀다. 다시 한번 아... 이렇게 정강사 요건까지 다 갖춰 놓고도 결국엔 용두사미로 끝나겠구나 싶은 나날을 보내는 어느 날 담당 부서 부장님께 연락이 왔다. 강의 나가보지 않겠냐고?



 갑자기 연락한 이유는 정강사 중에 한 명이 부득이한 일이 생겨 급하게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대행이다. 전문용어로 ‘땜빵’ 혹은 ‘빵꾸를 때운다.’ 뭐 이런 상황이었다. 순간 영화 ‘강철비’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극 중에서도 한 인물이 갑자기 강사 자리가 빈 강의는 채울 수 있겠냐는 부탁 전화를 받는 장면이었는데 대사가 ‘아, 예 뭐 우리가 또 땜빵, 대행, 빵꾸. 뭐 이런 거 전문 아닙니까. 괜찮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대충 이랬다.



 할 수 있었다. 아니 순간 하지 않으면 등 떠밀린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정말 용두사미로 끝날 거 같았다. 역시 ppt는 준비가 돼 있지 않았지만 하면 되는 문제였다. 하기로 했고 ppt를 준비했고(역시 사람은 상황에 의해서건 사람에 의해서건 간에 다소간의 압박이 주어지면 못 할 일이 없다.) 강의를 마쳤다. 결과는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잘한 거 같은 느낌 50, 못 한 거 같은 확신 50...



 서울경기권의 많은 학교를 다니는 강의엔 휴대폰이 필수다. 다른 이유보다는 내비게이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에도 내비게이션이 있지만 업데이트를 오만 년 전에 받고 안 받아서 자동차 내비를 믿고 달리면 산을 뚫거나 강 위를 달릴 판이었다. 주행 도중 보통 고속도로를 달리기 때문에 내비가 필요하긴 했지만 내비를 그렇게 자주 볼 일은 없었다. 하지만 경기권에 접어들면서 서울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면 신경이 곤두서면서 내비를 계속 보게 됐다.



 무슨 톨게이트가 그렇게 많은지... 서울을 지나쳐 그 위로 올라가는 날이면 톨게이트를 한 4곳은 통과하는 거 같았다. 그때마다 달리는 속도를 줄이고 돈을 내고 하느라 시간을 더 잡아먹었다. 이쯤 되면 하이패스를 이용할 만도 한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라져 가는 아날로그적인 상황을 잡고 있으려고 하는 묘한 성격에 의해 꾸역꾸역 직접 돈을 내거나 카드 결제를 했다.



 보통은 영수증을 받지 않는데 한 번 받아 봤다. 한 장인가 두 장은 받지 못한 거 같은데 강의 마치고 돌아와 세어 보니 8장이었다. 허 참... 순간 경기도에 살면서 자차로 서울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매일 이렇게 다니는 건가 싶었다. 청주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나와 같지는 않겠지만 참 힘들겠다 싶었다. 이번에 확인을 해 보고 싶은 마음에 영수증을 전부 받았는데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환경을 생각해 받진 않겠지만 이 영수증이 한 800장 정도 되면 정말 베테랑 강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그쯤 되면 하이패스를 사용하겠지? 베테랑 강사라는 조금은 부담스러울 수 있는 꿈을 대신해 그 길로 가는 베테랑 톨게이터가 되기 위해 톨게이트 단골이 되고자 다짐을 해 본다.


https://m.oheadline.com/articles/lD8PQ4ARnIlLsPAl-tHj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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