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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l 12. 2023

오늘도 커피빈

 https://groro.co.kr/story/4262

 

 

 어제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오전 강의가 있는 날이다. 강의는 보통 서울경기권의 학교에 가서 진행한다. 어제는 주로 가는 지역 중에서 가장 먼 파주라인에 있는 학교다. 파주라인이라 함은 파주를 기준으로 동서로 가로지르는 내가 정한 선이다. 그 밑이 서울라인 그리고 그 아래가 평택라인이다. 즉, 내가 사는 청주에서 평택라인이 제일 가깝고 그다음이 서울라인, 가장 먼 라인이 파주라인인데 어제는 목적지가 고양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2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해 강의를 했다. 강의는 보통 오전에 끝나고 다시 2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청주로 내려왔다. 오전에 강의가 있는 날은 오후에 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본업인 아이들 수업을 하러 다시 나가야 한다. 강의가 있는 날은 이렇게 하루 종일 일을 한다. 힘들다. 운전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이 보내는 신호는 강렬해진다. 무엇보다 다리가 쑤신다...



 그런 일정을 보낸 다음 날인 오늘은 쉬고 싶은 마음이 더 굴뚝같아진다. 그런데 오늘은 아이 요리 활동이 있는 날이다. 며칠 전에 다녀왔던 거 같은데 또 간단다. 벌써 2주가 흘렀다는 이야기다. 역시 시간은 빠르다. 고민을 하다 조금 쉬고 싶은데 아이랑 둘이 다녀오면 안 되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오전에 일이 없는 직업이라 아내가 임신했을 때, 산부인과부터 시작해 아이가 아플 때 병원 그리고 오전에 있는 아이의 여러 체험활동 등에 늘 같이 갔다. 아내가 알았다고 쉬라고 했다.



 아이의 간단한 아침 준비를 해 주는데 불현듯 나 없이 가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런 건지 다들 그런 건지 가끔 이렇게 불현듯 혹여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마음 한가득 들어찰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니야, 아니야.’ 하며 머리를 가로젓는다. 안타까운 건 그럴수록 안 좋은 생각은 더 강렬해진다.



 아내에게 다시 이야기했다. 그냥 같이 가자고 했다. 아내가 그냥 쉬지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기에 저번처럼 밑에 커피빈에서 글이나 쓰지 뭐 그러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커피빈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저번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오늘은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보통은 ‘얼죽아’를 고수하는 편인데 최근 목이 조금 상한 거 같아 계절 관계없이 따뜻한 음료를 곧잘 시킨다. 다만 오늘은 어제의 피곤함을 조금 날리고 싶은 마음에 시원한 ‘아아’를 시켰다.



 생각해 보니 잊고 있었는데 난 커피빈과 인연이 있다. 물론 커피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30대 초반에 하던 일을 정리하고 백수로 지내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대학교 시절에 좋은 기억이 있었던, 업으로 삼아 보고자 했던 커피 일을 떠올렸다. 이왕 할 거 제대로 해보자 해서 지금도 잘 나가지만 당시에도 잘 나갔던 스타벅스 그리고 지금은 업계에서 상당히 밀려 있지만 그때는 스타벅스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 거 같았던 커피빈에 바리스타로 지원했다.



 지원할 당시 이미 나이가 30대 초반이었다. 20대가 주로 일을 하는 카페업계라 큰 기대는 없었지만 커피 일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름 간절한 마음을 담아 지원했다. 다른 곳보다 스타벅스나 커피빈을 선택한 이유는 대형 프랜차이즈고 기본적으로 매장을 가맹이 아닌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어서 카페 업무 전반을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커피 공부 자체는 어차피 내가 해야 되는 거니까 특별한 고려 사항은 아니었다.



 입사지원서는 누구나 써서 지원할 수 있었지만 일을 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를 스타벅스는 확실하게 보여 줬다. 입사지원서를 상당히 많이 써서 보냈는데 단 한 번도 연락이 오질 않았다. 그에 반해 커피빈은 입사지원서를 넣으면 연락이 왔다. 1차 서류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서울에 올라오라는 연락이었다.



 처음엔 너무 기쁜 마음으로 올라갔다. 면접은, 말하는 건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번을 올라갔다. 결과는 다 떨어졌다. 화가 났다. 그렇게 다 떨어뜨릴 거면 왜 자꾸 오라고 하지? 나이가 문제였던 거 같은데 서류로 나이를 확인할 수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불러올리지? 면접은 항상 잘 봤다. 면접자 대부분이 20대 초반 사회 초년생들이었다. 그중에 30대 초반인 나는 그야말로 군계일학이었다. 나이도 제일 많아 보통은 질문이 집중됐고 어떤 질문을 받아도 그 어떤 망설임이나 거리낌 없이 술술 대답을 했다. 그렇게 면접을 기분 좋게 보았는데 늘 떨어졌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사람 가지고 노는 건가 싶었다.



 그야말로 뇌피셜이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직접 보고 확인해 보고자 했던 커피빈이었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조금 많아 부담스러웠는지 안 되겠다 싶어 떨어뜨린 게 아닌 가 했다. 어쩌면 잘 봤다고 잘 떠들었다고 생각한 면접이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렇게 커피빈과는 인연이 끊어졌다. 간간이 보이는 커피빈 매장을 보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세월이 흘러 스타벅스에 밀려 버린 커피빈 매장은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렇게 완전히 잊혀져 가나 싶었다.



 그런데 아이 요리 활동을 하는 동안에 마땅히 기다릴 곳이 없어 동일 건물 1층에 있는 커피빈에 와 버렸다. 지난 요리 활동에 이어 오늘이 두 번째다. 다른 글에서 밝힌 바 있지만 카페에서 글을 쓰면 좋은데 커피 값이 다소 아까워 카페에서 자주 글을 쓰진 않았다. 일을 보는 도중 시간이 뜨는 날 한 두어 번, 역시 다른 곳에서 아이 요리 활동이 있었을 때 또 한 두어 번, 기다릴 곳이 마땅치 않아 카페에서 글을 써 본 경험이 다였다. 2주 전 요리 활동을 할 때도 기다릴 곳이 마땅치 않아 커피빈에서 글을 썼다.



 그날은 조금 남달랐다. 다소 인연이 있지만 커피빈이 대단한 카페도 아니고 커피 값이 엄청 싼 것도 아니다. 완벽한 자의가 아닌 상황에 의해 자의 반, 타의 반 자리를 잡고 글을 쓴 건데 뭐랄까 그냥 기분이 좋았다. 더 정확히는 이전까지는 굳이 카페에 가서 커피 값을 지불하고 글을 쓸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그날은 그 커피 값이 아깝지 않았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10여 년 전의 기억이 결과적으론 좋은 추억으로 남은 건지 그때의 아쉬움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긍정적인 감정으로 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그냥 좋았다.



 어제의 일정에 의해 다소 피곤했음에도 오늘 커피빈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거 보니 좋았던 기분이 일시적인 건 아닌 거 같다.(물론 쉬려다 괜한 불안한 마음에 온 거긴 하지만 그 불안함에 커피빈에서 글 써야지 하는 기분 좋은 기대도 조금 있었다.) 아이의 요리 활동이 당분간 지속될 예정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도 2주 간격으로 커피빈에 자리를 잡고 글을 쓰겠다는 이야기다.



 이래저래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많이 받아 언제부턴가 스타벅스는 기프티콘이 생기면 가는 곳으로 변했다. 그렇게 자주 갔음에도 스타벅스 회원이 돼서 적립을 받고 뭐 이러진 않았다. 그런데 오늘 주문을 하는 와중에 직원의 적립하겠냐는 물음에 적립을 어떻게 하는 건지 다시 물었다. 앱을 깔고 뭐 어쩌고저쩌고 답을 듣고 자리에 앉아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아마도 다음엔 앱을 깔고 적립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기다렸다.



 커피가 나왔다.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빨대가 눈에 들어왔다. 보라색 빨대다. 주변을 둘러보니 팔고 있는 머그나 텀블러 등 커피 관련 집기도 다 보라색이다. 커피빈 메인컬러가 보라색인 거 같다. 아내가 보라색을 좋아한다. 보라색 그거 뭐 특별한 색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연관을 짓고 있는 거 보니 아마도 단골이 되려나 보다.



 커피빈, 2주 뒤에 보자.


https://m.oheadline.com/articles/gpePdUfNJmRKT_9VFjbE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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