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로팟, 비상이다!

by 이야기하는 늑대

https://groro.co.kr/story/4568



2023년 7월 27일


‘긴급체포’

아내에게 톡이 왔다. 사진과 함께. 3장의 사진엔 동일 인물이 찍혀 있었다. 범행현장에서 찍힌 사진이다. 빼도 박도 못하는 명확한 증거 사진이다. 다행히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사진을 찍고 검거한 거 같다. 사진에 보이는 현장은 다소 망가져 있는 듯했다. 일단 사진으로 밖에 확인할 수 없어 보다 정확한 상황은 직접 보고 수습 여부를 판단해야 될 거 같았다. 일을 마치고 늦게 들어오니 범인은 엄마를 꼭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죄를 물어야 하는데 자고 있기도 했고 너무 귀여워 더 이상 죄를 물어볼 의욕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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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범인은 딸이다. 30개월 된 딸. 진짜 눈에 넣으면 아프겠지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거 같은 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될 것 같은 딸.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부모의 모든 걸 따라 하려고 한다. 특히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 30개월 정도 된 아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딸아이는 아직 어린이집을 가지 않고 있다. 그러니 세상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오롯이 부모를 따라 하는 것 밖에 없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차릴 때 아내와 합의 하에 TV를 두지 않았다. 그래서 딸아이는 아직 TV를 보지 않는다. 아니 볼 수가 없다. 스마트 폰이나 노트북을 통한 영상도 가급적이면 보여 주지 않으려고 한다. 영상을 접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세대라 막을 순 없지만 노출을 최대한 늦추려고 하는 나름의 노력이다. 그래서 딸아이는 배울 수 있는 존재가 이래저래 엄마, 아빠 밖에 없다. 가끔은 놀라울 정도로 따라 한다.



그런 딸아이 눈에 아빠가 시도 때도 없이 베란다에 쭈구리고 앉아 작은 초록이 들에게 물을 주고 가끔은 모종삽으로 흙을 고르는 모습이 영 재밌어 보였던 거 같다. 그 와중에 기특하게도 선은 지킬 줄 알아 엄마, 아빠가 이건 하는 거 아니야 하면 그 내용을 그대로 따라 말하면서 하지 않는 편이다. 물을 주면서 초록이 들을 관리할 때면 늘 옆으로 와 세상 귀여운 목소리로 아빠 뭐 하는 거야 하고 물으면 별님이들 물 준다고 대답하면서 만지는 거 아니야 만지면 별님이 들이 아파할 수 있으니 눈으로만 보는 거야 하고 이야기를 해 줬다. 그럼 또 알았다는 듯이 만지는 거 아니고 눈으로만 보는 거야 하고 따라 말하면서 반짝이는 눈으로 별님이 들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 날만큼은 영 궁금했는지 아빠는 일하러 나가고 엄마가 뭐 하는 사이에 작은 손으로 분무기와 모종삽을 들고 별님이 들을 아빠처럼 관리해 주려 했다. 물론 직전에 엄마에게 들통이 나 잡혀 버리고 말았지만... 증거 사진과 함께. 다행히 별님이 들에게도 별 탈은 없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모종삽에 의해 별님이들 일부가 다칠 수도 있었는데 그 직전에 엄마에게 잡혀 별님이 들과 딸아이는 서로 원만하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아이가 조금씩 커 가면서 더욱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된다고 느끼고 있다. 이쯤 되면 가급적 피해야 하지만 아내와 큰 소리 내지 않으며 싸울 수도 있게 된다. 더 웃긴 건 서로 따져 가며 큰 소리 내지 않고 신나게 싸우면서도 아이가 뭘 물어보면 웃으면서 대답할 수 있는 경지에 까지 이른다. 아들러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을 원인과 결과로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화가 날만한 상황(원인)에 의해 화가 나는 게(결과) 아니라 그저 화를 내고 싶어서 낸다는 이론을 이야기하는 사람인데 책을 읽을 때 머리로만 이해되는 부분이 마음으로 이해되는 순간이다.



여하튼 별님이 들의 이상한 상황에서의 1차 비상 상황은 그렇게 정리가 됐다. 이후로 딸아이는 일탈은 한 번으로 족하다는 듯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별님이 들을 눈으로만 바라봤다. 문제는 그다음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생했다. 아니 오히려 정상적인(?) 문제 상황이 발생했다. 문제 상황이 정상적이라는 건 식물을 키우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의미의 문제를 말한다. 다름 아닌 보이지 않던 벌레가 보이기 시작했다. 식물을 씨앗부터 키워 보는 거나 벌레가 생기는 걸 보는 것도 처음이라 잘 모르지만 최초로 눈에 걸린 건 아주 작은 벌레들이었다. 얼핏 보면 벌레인지 거뭇한 먼지가 묻어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가만히 잘 보면 움직이기에 벌레인 줄 아는 거지 지나치면서 보면 알아보기 힘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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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몰라서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잘 모르면 또 용감하다고 벌레가 이렇게 작고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대충 넘겨 버리고 말았다. 더불어 별님이 들을 키운다고 생긴 벌레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물을 주러 갔는데 어! 꽤 큰 날벌레가 별님이 잎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이거 뭐지? 먼지 같은 작은 벌레가 이렇게 커진 걸까? 색이 다른데... 성체가 되면서 달라지는 걸까? 아! 맞다! 사진을 찍어야지 하는데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순간 저 날아가 버린 날벌레처럼 별님이 들도 모두 날아가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스쳤다. 식물을 키우는 과정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한 두 가지밖에 없는 초보 식집사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기도를 할 수밖에. 사진이라도 찍었으면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어! 하는 사이에 날아가 버렸으니. 그저 식물과 관계없는 날벌레가 계절이 여름이니 방충망 틈바구니를 통해 들어온 거였으면 좋겠다 하는 기도만 며칠을 했다.



며칠을 다소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할 수 있는 일인 물을 열심히 줬다. 그 와중에 자라는 속도가 조금 차이가 나 영양제를 주지 않은 화분에도 영양제를 마저 줬다. 성장속도가 더뎠던 그래서 영양제를 준 화분의 별님이 들이 그렇지 않은 화분의 별님이 들을 앞지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는데 별님이 들은 영양제 덕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예의 그 더딘 속도로 천천히 잘 자라 줬다. 다행히 그 날벌레는 식물을 좀 먹는 종류의 벌레가 아닌 우연히 날아든 불청객이었던 거 같다. 하필이면 별님이 잎에 앉아 있어서 괜한 두려움에 사로 잡혔던 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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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은 딸아이에 의한 1차 비상 상황.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다른 많은 식집사 분들의 벌레 관련 글을 보다 보니 지레 겁먹었던, 별님이 들에게는 비상이 아니었지만 나에겐 비상이었던 상황이 모두 종료되고 별님이 들은 현재 꽃을 피우기 위해 비상飛上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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