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로팟,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by 이야기하는 늑대

https://groro.co.kr/story/5181



2023년 8월 18일


요즘 삶이 조금 팍팍하다. 최악은 아닌데 마지막 보루는 아직 남겨 두고 있는데 그럼에도 답답하다. 불안하기도 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무언 갈 뚫어 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에너지가 많이 분산돼 있다. 분산시킨 이유는 있다. 나름 필요와 의지에 의해 에너지를 분산시켰다. 하지만 잘 한 건지 계속 고민이 되는 요즘이다. 벌려 놓은 게 많아 추슬러 한 점으로 집중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욕심이기도 하다. 다 할 수 있을 거야 하는 무식한 용기인데 그것도 용기라고 버티고 있다.



문득 요즘 유행하는 과학용어 하나가 생각났다. 엔트로피... 잘 모르는데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맞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설거지하면서 심심하니까 과학 유튜브를 본 게 전부라 대충 그렇게 흘려들었다. 과학이라는 관점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게 긍정적인 건지 부정적인 건지 아니면 긍부정을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건지 뭐 하나 확실하게 아는 게 없다. 그럼에도 그냥 왠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건 좋은 일일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일을 벌이는 건 다양한 방향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해 그 총합이 늘어나는 건지 아니면 총합은 변함없이 일정한데 벌려 놓아서 오히려 하나하나의 줄기에 쓰이는 에너지가 부족해 이도 저도 안 되는 건지 과학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 하는 이상한 생각도 해 봤다. 물어볼 수 있다면 똑똑한 과학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이런 의문이 나름 의미가 있는 건지 전혀 쌩뚱맞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



길을 알 수 없으니 뭐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과해 별 생각을 다 하는 거 같다.



벌려 놓은 일 중에 글쓰기가 있고 식물 키우기도 있다. 글을 쓰다 이벤트가 있어 식물도 키우게 됐다. 의외로 내 삶 속에 깊게 들어왔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어 한다고 하긴 하는데 영 정신 사납고 이렇게 또 뭐 하나가 갈라져 에너지가 분산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일련의 이벤트 과정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씨앗부터 식물을 키워 꽃을 피워 보는 건데 이제나 저제나 언제 꽃이 나올까 그야말로 오매불망 기다렸다. 혼자 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다른 분들의 진행 과정도 글을 통해 확인해 왔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불변의 진리 때문인지 다른 분들의 식물은 꽃을 잘도 피우는데 내가 돌봐주는 녀석들은 영 더뎠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휴가로 잠시 집을 비웠음에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잘 자라면 된 건데 부족한 사람이라 또 욕심을 부리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그리 과한 욕심은 아니다. 꽃을 피우는 식물이기에 언젠가는 꽃을 피우긴 할 텐데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이 과하다면 이 세상 과하지 않은 게 어디 있으랴. 열심히는 하는데 뭐가 잘 안 되는 혹은 이만큼 하는 데 그에 합당한 결과가 잘 나오지 않는 내 삶이 투영된 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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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큼의 노력을 들였다고 100이 그대로 나오지 않는 게 세상의 이치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또 다른 일이라 그 괴리에 허덕이는 스스로가 답답하다. 그런 답답함에 꽃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커진 것 같다. 하지만 DNA는 강력했다. 더디고 더뎌 과연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꽃이 피기는 필까 싶었는데 드디어 폈다. 수줍게 자줏빛 꽃이 고개를 들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개화인데 오히려 덤덤했다. 피긴 피는구나... 어쩌면 당연한 일을 눈으로 확인한 것뿐 이어서 더 그랬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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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 자체를 못한 씨앗도 있고 같은 식집사가 동일한 환경에서 똑같이 물을 주고 보살폈음에도 상대적으로 작고 느리게 자라는 녀석도 있었다. 그 와중에 다행인 건 발아에 성공한 녀석들은 조금 작아도 죽지 않고 꾸역꾸역 잘 자라 줬다는 점이다. 화분이 좁아져 2차 분갈이를 생각할 즈음에 휴가를 가게 됐고 휴가기간 동안 돌봐주지 못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동시에 잘 들여다보니 꽃망울이 보여 휴가 후에 죽지 않는다면 꽃을 피우겠구나 하고 기대했다. 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죽지는 않았지만 아쉽게도 휴가 가기 전에 인사한 꽃망울은 시간이 정지한 듯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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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 정말 꽃이 안 피려나 싶을 때 빼꼼 하고 자줏빛 꽃이 고개를 들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른 화분의 꽃망울은 점점 흰색을 띠기 시작하더니 고개를 들 준비를 했다. 자줏빛 꽃은 나름 만개했지만 흰색 꽃은 활짝 피지는 못 했다. 그래도 괜찮다. 결국엔 꽃이 폈으니... 아니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녀석들도 괜찮다.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고 설령 결국 꽃을 피우지 못한다 한들 살아있는 생명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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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총 11개의 씨앗을 심은 거 같다. 그중에 3개는 싹을 틔우지 못하고 흙이 돼 버렸다. 싹을 틔운 녀석들은 천천히 자기 모습을 찾아갔다. 그리고 두 녀석이 꽃을 피웠다. 기특하다. 꽃을 피운 녀석들뿐만 아니라 꽃을 피우지 못한 녀석들, 심지어 싹조차 틔우지 못한 씨앗들까지 기특하다. 결과는 다르고 상대적으로 다소 부족할 수 있지만 저마다 자기의 위치에서 나름의 노력을 했을 테니... 아쉬운 결과는 결과대로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다면 다음을 기약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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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도 기특한 거겠지? 많이 부족하지만 그런 거겠지? 답답하고 불안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만의 속도로 결국 꽃을 피우겠지? 그 꽃이 만개하지 않더라도 결과를 냈으니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겠지? 끝끝내 꽃을 피워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초록의 줄기와 잎만으로도 얼마든지 세상의 아름다움에 한몫하는 거겠지? 화려한 꽃이 되고 싶지만 세상 모두가 울긋불긋 화려한 꽃이라면 아름답기보다는 어지러울 테니 그런 어지러움을 보완해 줄 초록도 필요하겠지? 뭐가 됐든 의미는 있겠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 가슴엔 분명히 언젠가 틔울 싹과 자라날 줄기와 펼쳐 낼 잎 그리고 그리고 꽃이 있을 테니 두려워 말고 오늘 볼 수 있는 해를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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