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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l 05. 2021

'must'와 'wish'

 내 꿈은 선생님이었다. 선생先生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한자 그대로 해석해 보면 ‘먼저 세상에 나온’이란 뜻이다. 비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만 선생이 아니다. 부모, 선배, 동료, 모두가 어떤 의미로는 선생이 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나보다 세상에 뒤에 나온 사람도 선생이 될 수 있다. 세 명이 함께 걸으면 그중에 스승이 있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있을 정도다.     

 


 나는 그런 선생 중에 의미를 조금 축소해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교단에 서는 선생님. 교편을 잡는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의지의 박약과 노력의 부족으로 이루지 못했다. 이런저런 일을 했다. 등 떠밀려 한 일도 있고, 원해서 한 일도 있었다. 학습지 선생님을 해 봤고, 커피 강사도 해 봤다. 그리고 지금은 수학 과외교사 일을 하고 있다. 부족하지만 어릴 적의 꿈과 어느 정도는 맞닿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다. 나는 소위 말해 ‘사교육’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학창 시절에 특별한 사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으며, 학습자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면 사교육 없이도 충분히 학습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이다.     

 


 그런 내가 사교육 한 복판에 서 있다. 대학시절에 흔히 하는 과외 아르바이트 한 번 해 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간혹 ‘너도 과외 알바 해 봐’하는 소리에 ‘내가 무슨 과외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으나 사범대를 가지 못한 상황의 부족함이 가슴을 눌렀고, 아무나 사람 가르치면 안 된다는 고지식함이 발목을 잡아 ‘아르바이트’가 주는 가벼운 마음으로 선뜻 과외 알바를 할 수가 없었다. 과외를 업業으로 삼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느덧 1년 전이다. 지금 하고 있는 과외를 내려놓고 싶다고 생각했다. 업業이 된 과외가 하기 싫어졌다. 질렸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해야만 하는 ‘must’ 한 일인데 하기 싫어지니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장 그만 둘 용기도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아내가 출산준비 중이었기에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한층 커지는 시기였다.     

 


 그래도 방법은 찾아야 했다. 방법을 찾지 못하면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해 오던 일, 10여 년간 해 오던 일이니 인이 박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고, 돈도 적잖이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한 번 돌아 서니 도저히 눈길이 가지 않았다. 그저 그만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하는 ‘wish’를 생각하게 됐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꿈꿔 왔던 선생님 중에서도 역사 선생님, 가수, 외교관, 정치가 등 정말 다양한 꿈이 있었다. 변명이라면 할 말 없지만 지금에서야 이루려니 보통이 아닌 일들이다. 그러다 문득 열거한 꿈들의 공통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약간의 억지스러운 끼워 맞추기가 있긴 하지만, 전문용어로 ‘의미부여’라고 퉁치기로 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과목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같은 과목이라고 해도 이 선생님과 저 선생님의 가르치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 그건 선생님마다 가치관이 다르기에 해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큰 틀에선 같은 이야기를 하겠지만 소소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가수가 노래하는 것도 그렇다. 각자의 노래를 부를 수도 있지만, 유명한 다른 사람의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역시 이 가수와 저 가수가 다른 감성으로 부를 수 있다. 말 그대로 가수마다 감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살아온 삶이 다르고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외교관과 정치가는 더 할 것이다. 외교관과 정치가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사안을 볼 것이다. 결국 하는 일은 다르지만, 나를 표현하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과목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것이고, 가수는 노래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것이고, 외교관과 정치가는 국익과 정치성향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진짜 원하는 즉, ‘wish’ 한 일은 어떠한 형태로든 나를 표현하는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 하고 있는 과외 역시 계속할 수 있지만, 이미 질릴 대로 질려 버려 더 이상 하기 싫어졌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나를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처음으로 떠 올린 게 ‘유튜브’였다. 유튜브는 개인방송국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무엇을 잘 먹는지, 어떤 영화를 또는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등 나에 대한 모든 것들을 보여 줄 수 있는 플랫폼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너무 많은 개성을 표출하기에 이 만한 도구도 없는 것 같다.     

 


 가열 차게 유튜브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영상 한 두어 개 올리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10개 정도의 영상을 올리고 멈췄다. 내가 올린 영상이지만 너무 재미가 없었다. 후에 노래하는 영상을 올릴 수 있을 때까지 잠정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다음으로 생각한, 나를 표현할 방법이 바로 ‘글쓰기’였다. 작가가 되는 것이 제2의 인생의 시작이라고 거창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녔다. 다행히도 1년이 지난 이 시점까지 과연 ‘글’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 갈 열심히 쓰고는 있다. 처음 한 달 정도는 일기 쓰듯이 매일 썼다. 그리고 얼마 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쓰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사람 마음이 이렇다. 그렇게 고민을 한 끝에 작정하고 시작한 일인데 한 달 만에 흐지부지되다니.     

 


 다행히 올해 초부터 좋은 기회를 통해 매주 최소한 하나의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최근 40여 일은 매일 글을 쓰고 있다. ‘wish’ 한 일이 제대로 ‘바람’을 탄 격이다. 이 기세를 몰아 365일 매일 글쓰기에 도전해 보려 한다. 물론 1년 동안 매일 글을 쓴다고 삶에 어마 무시한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 기대할 만큼 어리진 않다. 아마도 예상하건대 1년 뒤에도 ‘must’한 일인 과외를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다짐이 무뎌지지 않는다면 일기인지, 글인지, 지면 낭비 일지 뭔지 모를 무언가가 365개 이상은 쓰여 있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1년 뒤에 분명히 느끼는 바는 있을 것이다. 느끼는 바를 바탕으로 다음 1년, 또 다음 1년 이어 나아가다 보면,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그 나이 즈음에 뭐가 만들어져도 만들어질 것 같다. ‘must’와 ‘wish'의 이 불안하면서도 기대되는 동거를 부여잡고 갈 수 있는 힘을 제발 내라고 스스로에게 기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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