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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Nov 19. 2023

겨울엔 아파트가 최고!!!

https://groro.co.kr/story/6695



 가난했다. 늘 가난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의 경제적인 형편이 괜찮았던 적은 없었다. 오죽하면 결혼하면서 은행 빚을 땡겨 사긴 했지만(그마저도 지역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집을 사고 받아 든 재산세 고지서가 반가울 정도였다. 지금은 안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나 하고 생각하지만 처음으로 받아 든 내 집 아파트에 대한 세금, 재산세 고지서가 믿기지 않겠지만 감격스러웠다.



 어린 시절부터 20대 후반까지 계속 단독주택에 속해 있는 작은 방에 세를 들어 살았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전월세를 왔다 갔다 한 거 같다. 20대 후반에서부터 기억이 닿는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다섯 번 정도 이사를 한 거 같다. 물론 다 세를 들어 산 집이었다.



 그중에 마지막 집이 그나마 제일 큰 집이었다. 세를 들어 살면서도 조금씩 집의 크기를 키워 왔다. 그야말로 단칸방을 시작으로 두 번째도 단칸방 세 번째는 방 2개 그리고 네 번째는 지금 생각하면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인가 싶을 정도로 스러져 가는 집이었는데 여하튼 방 3개 마지막으로 20대의 거의 전부를 보낸 집 역시 방 3개였고 그나마 사람이 사는 집 같았다. 또 다른 특징은 앞의 집과 다르게 2층에 세를 들어 살았다. 어차피 세를 들어 사는 거라 큰 의미는 없지만 여하튼 다른 점이었다.



 동생이 20대 중반에 결혼을 해서 나갈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동생이 결혼을 한 이후로 뭐 있지도 않은 가세가 이러저러 말하기 창피한 상황에 의해 급격하게 기울었다. 쥐뿔개뿔 없이 세 들어 사는 집에 빨간 압류딱지가 붙었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처음엔 전세로 계약을 했으나 전세보증금도 들어 먹고 월세로 돌아간 시점이기도 했다.



 여차저차 그 집에 20대 후반의 나는 혼자 남게 됐다. 더 자세한 건 가난하게 살아온 삶이라는 주제로 다른 글에서 쓸 예정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나중에 언젠가는 해당 내용을 쓰게 되면 찾아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는데 뭐 언제 쓸지 모르니 알아서들 하시길 바라는 바다. 여하튼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닌데 당시의 삶이 참 그래서 생각을 하면 이렇게 나도 모르게 풀어 버리는 경향이 있으니 이해해 주길 바라는 바다.



 뭘 자꾸 이리 바란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당시에 살던 주택은 주택답게(?) 겨울에 참 추웠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이 글의 요지다. 즉, 이 글은 이제 시작이란 소리다. 그런데 걱정하지 마시길 타자보다 빠르게 머릿속을 내달리는 내용을 보니 짧게 끝날 거 같다. 잡설은 이만하고 겨울에 참 추웠다. 전세였던 집이 월세로 돌았고 혼자 남은 내가 월세를 내야 되는 상황에서 돈을 아껴야 해서 더 추웠다.



 일단 자는 건 오히려 괜찮았다. 코가 시리긴 했지만 전기장판 하나면 자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기름보단 전기가 더 저렴한데 이 부분을 적극 활용해 전기장판을 쓰면 자는 건 그냥저냥 견딜 만했다. 아니 견딜 만한 수준이 아니라 따뜻하게 잘 잘 수 있었다. 쉬는 날엔 가급적 전기장판을 떠나지 않았으며 집 안이 밖인지 밖이 집 안인지 헷갈릴 정도로 두꺼운 옷을 입고 생활했다. 오히려 밖에서는 활동을 해서 그런 건지 추위를 잘 안 타서 그런 건지 겨울에도 그렇게 크게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겨울이라고 커다랗고 두꺼운 옷을 입는 걸 꺼려하는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지금도 그렇다.)



 대충 감이 왔겠지만 이런 삶의 배경엔 기름보일러를 쓰는 옛날 집이라 겨울 내내 따뜻하게 보일러를 때기엔 기름 값이 너무 무서웠다. 자는 건 전기장판과 실내라고 쓰고 실외 같은 집 안을 왔다 갔다 할 땐 두꺼운 옷을 입으면 돼서 적당히 견딜 만했지만 진짜 고역은 차가운 물이었다. 보일러가 돌아야 뜨거운 물이 나오는데 기름 값이 무서워 보일러는 돌리지 않고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버티다 보니 제일 문제가 물에서 발생했다.



 매일 입고 나가는 셔츠를 빠는 것부터 시작해서 세수하고 샤워하는 게 그야말로 지옥 같았다. 손이 시리고 머리가 빠개질 거 같은 그 차가움, 몸이 덜덜 떨리다 못해 이가 다 빠질 거 같은 그 시원함(?). 집의 구조가 일반 아파트 같지 않아 세탁기를 놓기가 상당히 애매했다. 요즘 많이들 쓰는 크고 높은 드럼세탁기가 아닌 통돌이 세탁기였음에도 자리를 잡기가 영 힘들었다.



 용변을 보고 샤워를 할 수 있는 공간밖에 나오지 않는 화장실엔 아예 들어갈 자리가 없었고 아주 이상하게도 신발장이 있는 곳에 겨우 세탁기를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세탁기를 자리 잡았음에도 쓸 수는 없었다. 세탁기를 쓰기 위해선 물이 필요한데 신발장이 있는 집 입구에 수도가 있을 리 만무하고 작은 집이지만 안 쪽에 있는 화장실의 수도를 끌어 오기엔 추가적인 호스를 연결하고 하는 과정이 여간 번거롭고 귀찮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엔 과감하게 맨손으로(지금도 집에서 설거지를 전담하는데 답답해서 고무장갑을 쓰지 않는다.) 셔츠를 찬 물을 이용해 손빨래를 했다. 그 왜 사극 같은 거 보면 평민들이 겨울에 개울 같은 데서 얼음을 깨고 차갑다 못해 얼은 손을 호호 불며 빨래하는 딱 그 모습으로 셔츠를 빨았다. 결국엔 손이 떨어져 나갈 거 같아 버티고 버티다 신발장에 있는 세탁기에 호스를 연결해 빨래를 했다.



 호스만 연결하면 될 일인데 안 했던 번거롭다고 한 이유는 연결부위가 뭔 문제가 있었는지 물이 샜다. 그 새는 물을 막고 호스를 연결해 쓰는 게 너무 짜증 나 무식하지만 손빨래를 한 건데 너무 차가워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호스의 연결 부위를 걸레로 싸매고 새어 나오는 물을 짜가면서 세탁기를 사용했다.



 세수나 머리를 감는 건 ‘헙헙’하면서 참아가며 할 수 있었지만 샤워는 그게 도저히 안 돼 물을 끓여 얌전하게 앉아 바가지로 사부작사부작 물을 끼얹으며 샤워를 했다. 그렇게 살았다. 지나고 나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살만했다. 버틸 만했다. 견딜 만했다. 그런데 진짜 문제가 터져 버리고 말았다.



 한 겨울 아마 기억에 의하면 크리스마스 직전인가 직후인가 싶은데 기름을 아낀다고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보일러가 결국 얼어 터지고 만 것이다... 하... 우리 집도 아닌데... 수리비용은 어쩌지... 기름 값을 아끼려고 그야말로 ‘쌩쑈’를 하면서 살았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 버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 허망함,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그 추운 겨울날을 벌벌 떨며 버틴 것인가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리비용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 마음이 덜 쓰라렸다.



 고치자마자 기름 한 드럼을 바로 넣었다. 그리고 그간의 삶을 나름 보상받는 의미로 하루 정도 종일 보일러를 땠다. 따뜻했다. 역시 돈이 좋았다. 물론 이후론 보일러님이 얼어 터지지 않을 정도로만 찔끔찔끔 가동했다. 20대 후반까지 내내 주택에 세를 들어 살았는데 가장 추웠던 겨울이었다.



 이후로 엄마의 지인을 통해 여차저차 작은 혼자 살기에 딱 좋은 크기의 아파트에 살 수 있게 됐다. 역시 내 집은 아니었다. 다만 주택이 아닌 처음으로 살아 보게 된 아파트라는 점이 기대가 됐다. 드라마 같은 걸 보면 아파트에 사는 주인공들이 겨울인데 집에서 반팔을 입고 생활하는 게 정말 가능한 건가 확인해 보고 싶었고 그 확인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중앙 집중 형태의 난방을 하는 아파트였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따뜻하진 않았지만 보일러가 터지는 것도 모르고 벌벌 떨며 살아온 나에겐 천국이었다. 하의는 긴 바지를 입었지만 상의는 반팔을 입어도 별 무리가 없는 걸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그럼에도 전기장판의 효용 가치는 높아 사용을 계속했다. 엉성한 구조의 주택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갖추어진 화장실의 수도를 틀면 바로 뜨거운 물이 나오다는 점과 베란다에 세탁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세탁기가 자리 잡고 자기 본연의 역할을 아무렇지 않게 수행하는 그러니까 내가 손을 호호 불어 가면 빨래를 할 필요가 없는 그 상황이 꿈만 같았다.



 그렇게 그 아파트에서 7년여를 혼자 살다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지금 아파트, 내 아파트의 방에 앉아 아직 겨울은 아니지만 예년보다 상대적으로 추운 이 가을날 반팔을 입고 글을 쓰고 있다. 겨울을 나기엔 아파트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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