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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Nov 27. 2023

재능충 vs 노력충

1 부

https://groro.co.kr/story/6854



 성공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겁니다. 그중에 비중이 큰 재능과 노력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더 나아가 개천에서 용이 나기 힘든, 노력만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내기 힘든 요즘. 그래서 꼰대 본인들은 노력을 해서 됐는데 요즘 것들은 노력을 하지 않아 문제라고 하는 요즘. 성공이라는 결과를 이야기할 때 재능과 노력이라는 두 가지 관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거 같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꼰대도 MZ도 아닌 중간에 끼인 세대의 눈으로 나름 풀어 보겠습니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1979년생인 저는 베이비부머 세대와 MZ세대에 적당히 걸쳐 아니 끼어 있는 세대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베이비부머 세대의 수직적인 조직의 관료주의적인 시대를 거쳐 수평적이면서 개인의 개성과 자유 그리고 권리 등을 강조하는 시대로 넘어오는 과정을 겪고 있는 세대라는 소리입니다.



 거쳐 온 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아주 비근한 예로 대학교 시절에 알바를 할 때 최저시급 등의 개념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법적으로 최저시급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그저 일하는 곳의 사장님이 주면 주는 대로 받는 시절이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기억에 의하면 시간당 2,500원 정도 받았던 거 같습니다. 근 20여 년 전 이기 때문에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봐야 하겠지만 중요한 건 법정 최저시급이란 개념을 몰랐다는 겁니다. 지금도 최저시급을 후려치는 일부 악덕업주가 있지만 현재의 관점으로는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불과 20여 년 전엔 일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조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 왔다면 그냥 그런 줄 알고 따랐던 세대를 거쳐 어! 이거 아닌 거 같은데? 하고 고개를 처 들기 시작하는 세대로 넘어왔습니다. 조직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따라왔던 수직적인 시대엔 그저 열심히 노력을 해서 조직에 맞추면 그만이었습니다. 재능이 있건 없건 간에 열심히 노력해서 조직이 바라는 평균에 맞추면 되는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는 일정 부분 노력을 하면 뭔가 되는 그런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성장기에 있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일할 사람이 없으면 없었지, 일자리가 부족하진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듣기로는 대학교만 나와도 취업은 거의 그냥 프리패스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조직이 바라는 평균에만 맞추면 혹은 그 평균을 조금만 상회하면 되는 시대엔 노력을 하면 이렇다 할 재능이 없어도 어느 정도 노력만 하면 먹고사는 데 큰 지장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없는 사람들끼리 만나 단칸방부터 시작해 일을 열심히 해 돈을 모아 집안의 경제력을 대표적으로 표현해 주는 집의 크기를 조금씩 키워 가는 게 가능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풍선 같이 부풀어 오르는 그런 시대의 정점을 국가부도라는 상황으로 처 맞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시대가 바뀌어 그야말로 무한 경쟁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공교롭게도 세상은 저성장의 늪으로 슬슬 밀려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노력만으로 모든 걸 해 낼 수 있는 시대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저의 20대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런 감이 없는 사람입니다. 시대가 변해가고 있음에도 뻔히 늪으로 빠져 들어 목이 차오르고 있음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저 하던 대로 살았습니다. 지금까지... 바로 노력을 하면 모든 걸 해 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과가 좋지 않으면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또 노력을 했습니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 보긴 해 봤어?(고 정주영)’ 등등의 명언인지 뭔지 모를 말에 휘둘려 오롯이 내 노력이 부족해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름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 나름이 부족하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여하튼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면 재능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긴 합니다. 그래서 별 재주도 없는 거 같은데 글을 통해 무언가 해 볼 수 있을까 싶어 3년 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3년을 썼으니 앞으로 7년을 더 써서 10년을 채우면 과연 뭐가 될까? 분명히 시작은 그런 생각으로 했습니다. 아직도 그런 생각이 완전히 바뀐 건 아닙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될까? 책을 낼 수 있을까? 내면 팔리기는 할까? 아니 그보다 이런 시답잖은 신변잡기 말고 소설은 써 볼 수 있을까?



 신변잡기야 늘 떠들 듯이 ‘적극적인 일기’를 쓴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면 얼마든지 쓸 수 있을 거 같은데(약간의, 아니 상당한 귀차니즘만 이겨낸다면...) 소설은 정말 쓸 수 있을까? 그야말로 전문적인 분야를 쓰지 않는다면 소설을 써야 소위 ‘글밥’을 먹고살 수 있을 거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7년을 더 써 10년을 채운다 할지라도 과연 소설을 즉, 만들어 낸 이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을 쓰는 공식 같은 게 있어 배우면 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배워 쓰면 뻔한 이야기만 쓸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럼 팔릴까? 물론 인간들이 해 온 이야기의 주요 소재는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데 뻔한 이야기라도 공식에 잘 맞춰 쓰면 혹은 공식을 조금만 비틀면 되는 거 아닐까?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과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책을 한창 읽을 때 10권, 15권 되는 장편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읽으면서 늘 경이로웠습니다. 도대체 이 길고 긴 이야기를 어떻게 쓰는 거지? 이게 과연 노력으로 되는 일일까? 영화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런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는 거지? 얽히고설키고 나오는지도 모르게 나온 사건과 인물이 중간 혹은 마지막 아니면 결정적인 순간에 튀어나오는 기가 막힌 연결을 보고 있으면 재미있는 건 둘째치고 저런 생각을 어떻게 해서 연결을 시키는 걸까? 처음부터 모든 요소가 다 머릿속에 있는 걸까? 아니면 큰 틀만 잡아 놓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 그때그때 정리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가능한 건가 싶습니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수학교육과나 수학과나 수학과 비슷한 그 어떤 과도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저 공과대학을 졸업했을 뿐입니다. 아니 애초에 수학을 가르치면서 먹고 살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꿈 중에 하나가 선생이긴 했습니다. 과목이 역사였다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꿈 중에 선생이 있었고 과목은 역사였는데 여차저차 실패하고 지금 생각해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과를 선택하고 적당히 점수에 맞춰 공과대학을 갔습니다. 대학교는 그야말로 적당히 때우면서 평균평점 정도 받으면서 졸업을 했습니다. 4년제 대학교 졸업이라는 간판을 딴 거라고 이야기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웃기지도 않게 이러저러 직업을 거쳐 현재 8년 넘게 현장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중위권 수준의 친구들 정도는 고등학교 3학년까지 수업을 할 수 있습니다. 시작은 초등학생부터 가르쳤습니다. 그 이전에 유아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만 그 부분은 그렇게 큰 영향을 준 거 같지 않아 논외로 두고 여하튼 본격적으로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 처음 만난 학생이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어머님과 학생에게 정말 죄송하고 미안하지만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듯이 준비해서 수업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게 무엇이든 처음은 있는 법이니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약간의 변명 아닌 변명을 해 보자면 사교육 시장의 많은 선생님들이 그렇게 시작합니다. 물론 돈을 받고 수업을 하는 거기 때문에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것처럼 수업을 해야 되기 때문에 열심히 준비해서 수업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매일 공부하면서 수업을 했습니다. 차근차근 만나는 학생들의 학년을 올려가면서 1년 정도 지나니 웬만한 학생들은 무리 없이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시간이 2년, 3년 흘러가면서 8년을 넘어 9년을 향해가는 이 시점이 되니 정말 웬만한 학생들 아닌 다음에야 다 수업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과정을 빌어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얼마 전까지 선생님이 증거다! 하면 된다! 한 권을 풀어 안 되면 두 권을 풀고 두 권을 풀어도 안 되면 세 권을 풀겠다는 마음가짐과 실천이면 누구나 수학을 잘할 수 있다고 아이들을 지도하고 조언하고 어르고 달래고 윽박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지도편달을 달게 받아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다 하고 문제도 많이 풀고 그야말로 성실해서 이마에 성실이라는 단어가 새겨질 거 같은 학생들 중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 경우를 상당히 많이 봤습니다. 하라는 대로 안 하고 숙제도 안 하면 차라리 안 해서 그런가 보다 할 텐데 정말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결과가 안 나오면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 속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면 될 거라는 믿음으로 더 열심히 수업을 진행하고 숙제도 내고 했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안 되는 친구들은 안 되는 걸 많이 봤습니다.



 이때부터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력으로 안 되는 건가? 그럼 나는 뭐지? 나도 수학과 관련된 전공과를 졸업하지도 않았고 수학선생이 될 거라곤(사교육 선생이지만) 전혀 상상도 못 했다가 여차저차 흘러 먹고살기 위해 수학선생질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금 웃긴 지점이 있습니다. 앞에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원래 꿈은 역사 선생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뭐에 홀렸는지 이과를 선택했습니다. 선택의 결과로 별 수 없이 공대를 갔고 대충 학점이나 따고 졸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돌고 돌아 딱히 원하지도 않았던 수학을 하필이면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할 때 영어를 선택해 가르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문과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이라고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생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였다고 생각한 고등학교 때의 이과 선택과 같은 선택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경험이 없어 하루살이처럼 공부를 하면서 가르쳤다고는 하지만 특별한 문제가 생기진 않았습니다. 물론 간혹 모르는 문제가 나와 곤혹스러웠던 적은 있었습니다만 곧잘 해결해 왔습니다. 그게 임기응변이든 무언가 번뜩인 거든 간에 별 탈 없이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고 시간이 꽤 흘러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지금은 별 무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몰랐는데 문과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는 수학에 약간의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의도적이었는지 무의식의 발로였는지 모르겠지만 지속적으로 수학을 선택해 왔다는 점이 최근에 노력과 시간을 통해 이뤄냈다고 생각해서 수학적 재능이 없다고 착각을 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결과론적으론 노력보다 재능이 성공에 더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닐까 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기 시작했습니다.



2부로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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