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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Dec 03. 2023

양육감정 - 포기

https://groro.co.kr/story/6990



 양육일기를 쓰려는 건 아니다. 그런데 결국 양육일기가 될 것 같다. 다만 아이를 키워 가는 과정의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보다 아빠로서 혹은 아빠 이전에 개인으로서의 감정 변화에 조금 더 주목해 보는 그런 글이 되길 바라며 시작해 본다.



 실은 양육을 하며 생기는 그리고 변해가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조차 쓰고 싶지 않았다. 힘들긴 한데 아이 키우는 게 무슨 벼슬도 아니고 낳았으면 부모로서 힘들어도 키우는 게 당연한 거지 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여러 감정들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듯 머리와 가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경험을 자주 하다 보니 꼴에 글을 조금 쓰고 있다고 가만히 있기가 힘들어졌다. 다시 말해 그런 감정들을 글로 털어 낼 순간이 온 것이다.



 우선 아이를 낳기 이전보다 이전인 결혼 전으로 가 봐야 할 것 같다. 아내와 만나 결혼하고 세상 귀엽고 예쁜 딸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고 있지만 난 명확하게 결혼을 포기했었다. 그런데 표현을 이렇게 해서 그렇지 결혼을 포기한 게 뭐 엄청나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당시의 내 상황이 그랬다. 결혼을 하기 힘든 상황, 힘든 상황이면 포기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30대 초반까지는 막연하지만 결혼을 할 줄 알았다. 평균을 내는 게 조금 우습긴 하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니 보통 빠르면 20대 중후반, 통상적으론 30대 초반, 늦어지면 30대 중후반이면 결혼을 하던 시절이었다. 대단한 능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30대 초반에 하던 일을 그만두기 전까진 여차 저차 결혼을 언젠가는 하지 않겠어? 아니 해야지?! 뭐 이랬던 거 같다.



 다만 순리를 따르고 싶었다. 한 가지 내가 말하는 순리는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사람 만나 적당한 시기에 적당히 아이 한 둘 낳고 사는 뭐 그런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개개인의 인생이라는 흐름 속에 본인이 원하는 대로 결정하는 걸 말하는 거다. 즉, 내가 결혼하기 싫어서 안 하면 그게 순리인 것이다. 당연히 결혼을 하고 난 뒤에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 갖지 않으면 그 역시 순리인 것이다. 해서 30대 초반 당시의 내가 생각하는 순리로서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데 언젠가는 하지 않겠어?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백수 생활을 조금 한 뒤 이래 저래 바리스타로서 커피 일을 시작하면서 결혼을 포기했다. 바리스타는 혹은 커피 일을 하는 사람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다만 내가 그랬다는 이야기다. 흙수저인데 배움도 그리 깊지 못해 지잡대 출신이었다. 더 나아가 이렇다 할 기술도 뭐도 없었다. 그저 4년제 대학 졸업 간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적당히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 사람이 30대 초반에(일반적으로 30대 초반이면 결혼을 생각하는 시절이었음을 다시 상기시켜 본다.) 갑자기 일을 그만뒀고 백수로 조금 지내다 찾은 일이 대학교 때 기억이 좋았던 커피 일이다. 다시 한번 커피 일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문제는 커피 일이 돈이 그렇게 되진 않는다는 거였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당시에 카페를 차려 사장이 되지 않는 이상 카페에서 매니저급이랍시고 일을 해 봐야 한 달 급여가 150~180만 원 정도 선이었다.



 현실적으로 나 혼자 몸 건사하는 건 문제가 아닌 돈이었지만 누군갈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나름 여유 있게 생활할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물론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뿐더러 혹여 그런 사람을 만난다 할지라도 고생이 될 게 뻔할 텐데 그 부분을 사랑이라고 하는 말랑말랑한 감정으로 대충 눙치고 싶진 않았다.



 관련해서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유명한 말이 있다. ‘가난이 앞문을 열고 들어오면 사랑은 뒷문을 열고 나간다고...’ 명언이다. 가슴 아프지만 명언이다. 너무 정확한 표현이라 소름이 돋을 정도다. 결혼은 삶은 밥을 먹어야 하는데 사랑이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밥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을 버티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론 굶는 상황을 이겨낼 순 없다. 그래서 그냥 포기했다. ‘그래, 지금 내 상황에 결혼은 언감생심이지. 어차피 해도 그만 안 해도(못 하는) 그만이었잖아. 나중에 나이차면 엄마나 모시고 살지 뭐.’ 이런 마음이었다.



 이번 글과는 결이 다르지만 돌아 생각해 보면 결혼을 포기한 30대 이전인 20대 때 웃기지도 않게 나중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어떤 이름을 지을까 고민한 적도 있다. 나름 원칙도 세웠다. 남녀를 떠나 이름이 괜찮으면 나쁠 게 없기 때문에 멋지거나 예쁜 이름이 최우선이었다. 더불어 가급적이면 한글 이름으로 지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굳이 한자 이름 써서 나중에 아이가 조금이라도 귀찮은 일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았다. 추가적으로 외자도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이름을 생각해 봤다. 지금에 와서 딱히 기억나는 건 없지만 그때 세운 나름의 원칙을 바탕으로 지금 딸아이의 이름을 짓긴 했다. 한글 이름인데 외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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