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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Dec 08. 2023

청주 1등 시민

https://groro.co.kr/story/7051



 난 청주 시민이다. 청주 토박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청주에서 태어나고 40대를 넘어선 지금까지 살고 있다. 기본적으로 청주를 벗어 난 적이 없다. 말이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라고 했는데 말도 사람도 아닌 청주 토박이라 그런가 어디로도 보내지지 않았다.



 맑은 고을인 청주가 좋다. 싫을 수가 없다. 평생을 살아오고 있고 어쩌면 별다른 일이 없으면 남은 생도 청주에서 살 거기 때문에 청주를 싫어하면 삶 자체가 피폐해질 수 있다. 물론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면 되지만 딱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사람 일 모른다고 하지만 또한 쉽게 예상되는 게 사람 일이기도 하다.



 적당히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조용한 도시, 청주. 살기 나름 괜찮은 청주. 다소 부족한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많지만) 그럭저럭 살만한 도시 청주. 인구 85만의 작지 않은 지역 도시 중에 하나인 청주. 광역시를 꿈꾸지만 쉽지 않아 특례시를 노리는 청주. 그런 청주가 좋다.



 그렇다고 해서 청주 시민으로서 청주를 위해 특별히 무언 갈 해 본 적은 없다. 아니 뭘 하고 말고를 떠나 대다수의 시민은 그렇게 살 것이다. 시가 뭘 하든 말든, 조금 더 정확히는 시가 시민인 나에게 뭘 해주든 말든 그냥 살아왔으니 살뿐이다. 나라에 사는 국민이라고 별다를 건 없다. 물론 시민으로서 삶의 영위를 위한 다방면에 걸친 기본적인 지원은 있지만 그건 뭐 시를 이루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인 시민에게 시가 당연히 해야 될 일이니 특별히 논할 만한 부분이 아니다.



 다만 시를 위해 무언 갈 하고 안 하고를 떠나 내가 살고 있는 시가 조금 더 나은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또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가 잘 되길 그래서 다른 곳도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시가 살기 좋은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뭘 해 보고 싶지만 딱히 방법을 몰라 그냥 살아왔을 수도 있다.



 물론 지금도 시를 위해 뭐 이렇다 하게 하고 있는 건 없다. 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 자체가 많은 걸 하고 있는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건 그거고 뭔가 조금 더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보다는 갈증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웃기지도 않게 그런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내 삶 속에서 찾아왔다. 다름 아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시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이 뭐가 더 없을까 찾다 보니 결과적으로 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찾게 됐다. 사실 시작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와 목적 그리고 잿밥에 눈이 더 간 부분이 크다.



 청주시가 시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청주시선이란 홈페이지가 있다. 그 홈페이지에 만 14세 이상 청주시민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시민패널로 가입할 수 있다. 시민패널은 무엇이냐 아니 그전에 청주시선은 무엇이냐? 청주시가 진행하는 여러 가지 사업을 시민들에게 물어보는 홈페이지이고 패널은 그에 답하는 보다 적극적인 시민들을 일컫는다.



 여차저차 청주시선 시민패널로 가입하게 됐다. 다양한 설문을 패널들에게 요청하는데 그냥 요청하진 않는다. 짧은 시간 몇 가지의 질문을 담고 있는 설문에 응해주면 3천 원에서 5천 원 상당의 지역화폐인 청주페이를 주거나 편의점 혹은 다양한 매장(커피, 햄버거, 빵)에서 쓸 수 있는 이용권을 준다.



 그렇다. 청주 발전이고 나발이고 이 잿밥에 눈이 멀어 귀찮음을 감수하고 나름 열심히 설문에 응했다. 물론 설문에 응한 모든 패널에게 주는 건 아니고 당첨을 통해 일부 패널에게만 준다. 그런데 이게 또 지역에서 이런 걸 진행하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진 않기 때문에 은근 당첨 확률이 높은 편이다. 실제로 당첨이 된 경우가 은근히 있었고 대단한 건 아니지만 가족들과 동네 산책하면서 쏠쏠하게 이용하기도 했다. 참고로 아내도 청주시민이고 비슷한 이유로 시민패널로 활동했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청주시민으로서 청주시가 발전하는 데 있어 일말의 도움 혹은 참여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는 행위였다. 어찌 됐든 그 과정에서 내 시간을 들여 의견을 냈기 때문에 약간의 보상을 받을 수도 있는 그런 건데 결과적으로 참여 빈도가 조금 높았던 거 같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설문을 응하는 과정에서 잿밥에 눈이 멀었다고는 하나 근본적으로 청주 토박이로서 청주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의 발로가 있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왕 하는 거 내가 사는 청주를 넘어 내 아이가 사는 청주가 될 테니 답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심사숙고를 한 거 같다. 특히 설문 과정 중에 주관식으로 물어보는 질문이 있는데 대충 넘기질 않고 나름 성심성의껏 답을 했다.


 그런 결과로 생각지도 못했는데 시민패널 활동을 열심히 해 줬다고 시장표창을 준다는 연락이 왔다. 어! 이거 뭐지? 표창인데 시장표창이라고... 내가 뭘 대단한 걸 한 게 아닌데, 청주시가 발전하면 좋겠다는 마음도 분명 있었지만 사실 잿밥에 눈이 더 멀었던 게 더 큰데... 괜스레 민망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단독표창이 아니라 40명 중에 하나라는 점이 민망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패널로 활동하는 시민이 18,693명이고 그중에 나름 적극적으로 활동한 40명에게 표창을 준다는 거였다. 관련해서 시 공무원이 따로 연락을 하고 찾아와 사전 인터뷰까지 진행했다. 사전 인터뷰라고 해서 대단할 건 없고 이러저러한 결과로 표창을 받으시게 됐는데 행사가 어떻게 진행이 될 예정이고 행사 진행 과정 중에 시장님에게 질문을 하실 건데 어떤 내용으로 질문을 하실 건지 시가 어떤 부분을 더 신경을 써야 하는지 등을 물어보는 자리였다.


 평소에 생각하는 청주시가 조금 더 신경 썼으면 하는 점 그리고 청주가 발전하려면 이런 부분은 조금 더 노력해 주세요 하는 부분을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이런 사전 인터뷰를 표창을 받는 40명에게 모두 진행했고 가장 많이 나온 질문과 시에 바라는 부분을 취합해서 6개 정도의 질문을 만들었는데 그중에 하나의 질문을 행사 도중에 시장님에게 해 줄 수 있냐는 부탁까지 받았다. 뭐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꺼려하는 성향은 아니라 이왕 표창받는 거 조금 더 기억에 남는 일정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행사는 문화제조창에서 진행이 됐다. 참고로 문화제조창은 원래 담배를 만들던 연초제조창이었다. 쉽게 말하면 담배공장이었는데 2004년 운영을 중지하고 해당 부지는 그대로 문화복합공간인 문화제조창으로 탈바꿈했다. 연초 그러니까 담배를 만들던 공장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공장으로 바뀐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도 문화제조창에 바로 인접해 있고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치러지는 곳이기도 하다.


 행사는 1시간 정도 진행이 됐다. 시립국악단에서 약간의 축하공연도 해 주고 표창을 받고 사전 인터뷰를 통해 취합한 질문을 하면서 나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시장님과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단체사진도 찍고 개별 사진도 찍고 나오는 길에 소정의 기념품까지 받아 들었다.


 기념품은 별 다른 건 없었다. 지역에서 만들어 파는 비누, 직지를 기반으로 디자인된 명함 케이스, 에코백, 담요 그리고 직지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책자 같은데 직지처럼 생긴 책 등이었다. 사실 따지면 다 예쁜 쓰레기들이기도 한데 비누는 이미 다 썼고 명함 케이스는 딸아이의 장난감이 됐다. 담요는 아직 쓰지 않았고 에코백은 가방을 모아 둔 곳에 고이 모셔졌다. 어떻게 보면 예쁜 쓰레기 중에 쓰레기가 직지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직지모양의 책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는 남다르게 마음으로 들어왔다. 해서 책장에 잘 꽂아 두었다.


 시민패널로 활동한 게 올해가 처음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 보다 이전에 패널로 가입해 여러 설문에 응했고 잿밥도 몇 번 받아먹었다. 다만 그 과정 속에서 나도 모르게 시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 투영이 됐는지 대단할 건 없지만 시에서 주는 표창까지 받게 됐다. 내년에도 표창을 줄지 관련한 비슷한 행사를 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시도 조금 더 확대할 거라는 계획은 갖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표창도 표창이지만 시를 위해 내가 무언 갈 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더 좋았던 거 같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보다 열심히 참여해 내년에도 있을 관련 행사에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청주시민으로서 불철주야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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