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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Dec 15. 2023

아무것도 없다.

https://groro.co.kr/story/7148



 내년 2024년 8월이면 글을 쓴 지 4년이 된다. 뭐 이래 저래 글을 쓰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써 올리고 있다. 이전의 다양한 글에 내가 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지겹도록 써 놔서 다시 반복해 이야기하기가 귀찮을 정도다. 뭐 창작이라는 게 결국 자기 복제 도중에 튀어나오는 돌연변이 하나 팔아먹는 거라서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해도 크게 상관없지만 그저 지금 쓰는 글에선 하고 싶지가 않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귀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문은 늘 해도 지겹지가 않다. 글을 왜 쓰지? 책을 팔아먹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이긴 한데... 전업 작가라는 게 어디 쉽나? 유시민 작가 정도는 돼야 그나마 책을 팔아먹고 살 수 있을 거 같은데, 다른 유명한 작가들도 많은데 최근에 그 뭐냐 과학 읽는 문과 남자인가 뭔가 책을 낸 거 같아 생각이 나 예로 들어 봤다.



 그렇다면 책을 얼마나 팔아먹어야 보통 직장인들처럼 먹고살 수 있을까? 능력 좋은 사람들도 많고 세상이 하 수상해 도깨비 같은 사람들이 돈을 어마무시하게 버는 시대지만 대충 괜찮은 직장인 평균 급여는 300~500만 원 정도가 될 거다. 더 적게 버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더 많이 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설명하기 편한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하지만 객관성은 결여될 수도 있는 예를 들어 이야기해 본다.(워낙 불편러들이 많은 세상이라 이런 거 하나하나 부연해야 되는 게 너무 짜증 난다. 언젠가 모 유튜버가 영상에서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라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아니, 그런데 내가 이야기하는 게 그게 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 이런 전제를 달아야 하는 것도 웃긴 거 같아.’하는데 너무 공감이 됐다.)



 여하튼 300만 원으로 계산을 해 보자. 보통 책 한 권의 인세가 천 원 정도라고 한다. 300만 원을 천 원으로 나누면 따라란~ 3천 권 팔아먹으면 된다. 깔끔하다. 숫자도 좋고, 3천 권! 매달 3천 권을 팔면 글로만 일반 직장인처럼 살 수 있다. 아 하하하하하하, 매달 3천 권의 책을 판다는 게 그게 가능한 건가 싶다. 1년에 3~5만 권 정도의 책이 나온다는데 그 경쟁을 뚫고 매달 3천 권을 팔아치우려면 역시 유시민 작가 정도는 돼야 한다는 생각이 과히 틀린 거 같지 않다. 물론 그 정도 책을 팔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작가라면 책 판매 이외에 강의 혹은 유튜브 등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3천 권은 고사하고 천 권 정도만 매달 팔아도 아마 전국적으론 몰라도 지역에선 여기저기 불려 다닐 것이다.



 그래서 내가 책을 내는 걸 머뭇거리는 거 같다. 브런치 기준 써 올린 글 꼭지만 해도 400개가 넘는다. 그중에 아주 짧은 글을 제외해도 300개는 넘을 것이다. 그 300여 개의 돌멩이들을 잘 추스르면 책 하나 나오는 건 문제가 아닐 거 같은데 팔리는 건 너무나도 명확하게 문제가 될 거 같아 머뭇거리는 것도 아니고 반포기를 했다. 글을 쓰는 언젠가는 책을 내긴 내겠지만 아니 내 봐야 하겠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내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고 배우는 것도 많고 사람일 모른다고 책이 어쩌면 팔릴 수도 있다.



 다 좋다. 충분히 그럴 법한 기대일 수 있는데 여기서 한 가지 그놈의 의미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보고 싶다. 우리는 ‘의미 있는’ 어쩌고 저쩌고를 참 좋아한다. 나 역시 의미 좋아한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도 분명히 어떤 의미가 있었다. 보다 정확히는 의미를 찾겠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인간인가? 내가 어떤 인간인지 글쓰기를 통해 그 의미를 찾자, 뭐 대충 이런... 아니면 이런 것도 있었던 거 같다. 나를 제대로 알면 이 세상에 내가 제대로 쓰일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 되겠구나.



 그렇게 3년 넘게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글을 쓰면 쓸수록 그 대단한 의미는 점점 녹슬어 가기 시작했다. 왜 녹이 슬었을까? 녹이라고 하는 건 보통 쇠가 부식해서 생기는 건데 쇠가 부식하는 이유는 쇠로 만들어진 어떤 도구를 잘 쓰지 않기 때문이다. 잘 써도 너무 오래되면 녹이 슬기도 하지만 오래 써서 생기는 녹은 그야말로 의미가 있다. 오래 써서 생긴 시간의 흔적이라는 나름 괜찮은 의미의 결과다. 하지만 쓰지 않아 생기는 녹은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다. 지금 내 글이 그런 거 같다.



 이상한 건 녹이 슬어 간다는 이야기도 녹이 슬어 별로인 거 같은 글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녹이 슬었다는 건 정말 오래돼서 그런 거 말고는 써야 될 걸 쓰지 않아 그런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쓰지 않은 걸까? 생각해 보면 마음인 거 같다. 어떤 마음? 역시 우리가 좋아하는 초심인 처음 글을 쓸 때의 그 되지도 않는 의미 어쩌고 저쩌고 하는 있어 보이는 그 마음이 녹이 슨 것 같다.



 그런데 아직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쓸 거 같다. 함께 하는 분들이 있어 그분들의 힘을 받아 꾸역꾸역 쓰고 있는 부분도 있는데 그거 하나만 가지고 나름 오래 동안,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 단위로 지속적으로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더더욱 녹까지 슬었는데...



 그럼 뭘까? 남는 건 하나다. 그냥 욕구, 욕망이다. 글을 쓰고 싶은 욕망. 더 정확히는 먹고살기 위한 일이 지금 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서의 욕구. 찰리 채플린이 한 말이 있다. 왜 자꾸 인생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냐고, 인생은 그저 욕망이다. 대충 이런 내용인데 한 두 겹 덮어 놓은 의미라는 거 말고 정말 내가 진짜로 원하는 욕망 혹은 욕구 같은 걸 표출하면서 산다면 모두가 지금보단 행복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당연히 인간으로서 선을 넘는 욕구나 욕망은 분명히 제한해야 한다. 동물보다 딱히 나을 건 없지만 그런 욕구까지 허락하면 정말 동물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남의 걸 훔치거나 탐하는 욕구, 타인의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하는 욕구 그리고 스스로를 어떠한 형태로든 학대하는 욕망은 전문적인 용어로다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전문적인 용어가 나왔다는 건 이 지점에선 진지하단 소리다.



 지금까지 글을 쓴 나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쓰고 싶은 욕망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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