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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Dec 20. 2023

36개월의 영예

https://groro.co.kr/story/7179



 다음 주 목요일이면 딸아이가 세 돌을 맞이한다. 36개월. 많은 혜택이 끝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식당이고 놀이공원이고 어디고 간에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36개월 전까지는 무료다. 아이가 늘 36개월 이전으로 남아 있을 수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안 되지만, 더 나아가 잘 자라주고 있음이 감사하지만 사라지는 무료 혜택이 아쉬운 것 또한 사실이다.


 저녁에 일이 있어 점심에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생일 파티 겸 식사를 하기로 했다. 코로나 한복판에 태어나서 첫돌잔치를 집에서 가족들과 소소하게 치른 게 내내 마음에 걸려 두 돌 때도 그랬고 다가오는 세 돌 때도 부모님 모시고 축하하면서 밥을 먹기로 했다. 부모님들이야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하시는데 건강하게 세 살 생일을 맞이하는 식사자리는 더없이 기뻐하실 자리다.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도 의미 있는 날이다. 아내와 나는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이로 만났다. 사내커플로 시작해 자연스레 맞벌이 부부가 됐다. 나이가 꽤 찬 상황에서 결혼을 해 부모님들은 내심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갖기 바라셨지만 양가 부모님 모두 그런 부분을 직접적으로 내색하시는 분들을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겼다. 아이를 갖기 이전부터 만약에 아이가 생기면 일단은 엄마가 되는 아내가 일을 정리하고 아이와 함께 하기로 합의 아닌 합의를 했다. 딱히 합의랄 것도 없었다. 해당 사안에 대해 서로 생각하는 바가 비슷해 굳이 합의라는 단어를 썼지만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내는 임신을 하고 차츰 일을 줄여 나갔고 출산을 하기 전에 모두 정리했다. 아이는 태어났고 조리원에 2주 정도 있었던 거 같은데 그때 내 몸무게도 근 10Kg 정도가 빠졌다. 조리원에서 아빠가 된 남편이 할 일은 딱히 없는데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살이 빠졌다. 평생 살아오면서 단기간 내에 가장 많은 살이 빠진 시기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깔끔하게 원상복구가 된 상태다.


 조리원에서 퇴소해 집으로 오는 그날 얼마나 두렵던지... 겨우 내 팔뚝만 한 아이의 기저귀 가는 것조차 혹여 잘못될까 싶어 부들부들 떨며 갈던 당시엔 신 같은 존재인 조리원 선생님 한 분을 납치해 가고 싶을 정도로 두려웠다. 그렇게 집에서 정신없이 아이를 키워가면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무렵 아내와 슬슬 기간을 정하기 시작했다.


 모유 수유를 했는데 언제까지 할 것이며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 그러니까 보육시설엔 언제 보낼 것이며 아내 일은 언제 시작할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우선 모유 수유 부분은 전적으로 아내의 의견에 따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유하는 과정 자체의 힘들고 어려운 점과 추후에 여성으로서의 외형적인 부분에 대한 일정 부분을 포기해야 되는 결정을 남자인 내가 의견이랍시고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내는 목표를 세웠다. 24개월 간 모유 수유를 하겠다고... 아이가 자라면서 중간에 이유식을 병행하며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와 양을 차츰 늘려갔지만 거의 정확히 처음 목표한 대로 24개월간 수유를 했다. 초기에 어려움이 있어 모유 수유 센터도 다니고 소아과에 갈 일이 생기면 선생님에게(자주 가는 소아과의 선생님이 마침 여의사였고 선생님 역시 오래간 모유 수유를 한 분이었다.) 조언도 구해가며 여차저차 수유를 했다.


 단유를 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밤 수유를 끊어 내는 거였다. 잠드는 걸 어려워하는 아이의 밤 수유를 끊는 건 정말 서로 못할 짓이었다. 수유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엄마 품에 안겨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그나마 편안하게 잠이 드는 아이였는데 그걸 할 수 없으니 울고불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러면 또 엄마는 마음이 아프니 일단 오늘 하루만 하는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수유를 하게 되는데 지켜볼 수밖에 없는 마음이 참 힘들었다. 하지만 아내 마음은 오죽할까 싶어 바라보기 힘든 마음을 티 내기는 더 힘들었다. 하지만 결국엔 단유에 성공했다.(성공했다는 표현이 딱히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또 짠해서...)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곰돌이의 도움을 받아 밤 수유를 정리하는 부분이 다소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단유를 했다.


 다음으로 해결해야 될 부분은 아이도 아이지만 우리 부부를 위해서라도 보육시설의 도움을 언제부터 받을지에 대한 결정이었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부부는 일단 합의한 부분이 있었다. 최소한 12개월, 넉넉히 24개월 정도는 우리 부부가 특히 엄마인 아내가 아이를 집에서 보육하기로 한 것이다.


 빨리 보내는 분들은 정말 빨리 보내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닌 거 같고 가치관의 문제인 거 같다. 그 가치관이란 측면에서 우리 부부는 조금 더 집에서 키우기로 한 것이다. 물론 밖에서 일을 하는 나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은 아내가 더 힘든 건 사실이었지만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일반 직장인들의 패턴과 조금 달라 상대적으로 많은 부분을 도와줄 수 있었다.


 우선 점심 이후에 출근을 하다 보니 병원부터 시작해서 아이와 함께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오전에 일정을 잡아 아내와 나 그리고 아이 이렇게 세 가족이 거의 100% 같이 움직였다. 주요 활동은 병원, 문화센터, 요리체험이었다.


 자라는 아이는 그냥 열이 난다. 자주 난다. 그래서 병원에 간다. 그냥 간다. 뭐 이리 매번 진료를 받고 약을 먹고 하는데 뭐가 잘 떨어지지도 않고 재발하고 그냥 병원에 간다. 필수예방 접종도 있고 하다 보니 일정시기까지는 거의 주기적으로 병원에 간 거 같다.


 사는 곳이 마침 백화점과 걸어서 10분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문화센터에 가기가 수월했다. 24개월 전후로 어린이 집에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함과 동시에 문화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일정이라 그렇게 부담되진 않았다. 정확하진 않지만 21개월 이후에 다니기 시작한 거 같고 아직도 다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요리체험은 장난감을 빌려 주는 센터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걸 선착순 신청을 통해 참여했다. 전반적인 퀄리티가 좋아 선착순 신청 경쟁이 상당히 치열해 아내가 유명가수 공연 티켓 예매하듯 달려들어 겨우 따내곤 했다.


 더불어 주말과 평일에도 시간만 나면 아이와 함께 여기저기 다녔다. 마땅히 갈 곳이 없으면 동네 산책이라도 나갔다. 산책하면서 아파트 놀이터도 다니고 미끄럼틀, 시소, 그네 등을 타고 태워 주며 놀곤 했다. 베카, 키카도 한 서 너 번 간 거 같다.


 그러면서 이제는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에 보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얼마 전에 ‘처음학교로’를 통해 유치원 지원을 했고 나름 알아본 바에 의해 원하는 유치원에 갈 수 있게 됐다. 내년 3월인데 여러모로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고 두렵기도 하다.


 마침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이 2023년 12월 16일 새벽 5시 정도인데 몇 시간 뒤 면 가기로 한 유치원에 미리 방문해 인사도 하고 체육복 등도 정하러 가야 한다. 그야말로 36개월을 꽉 채워 가정보육을 했다. 유치원에 정식으로 가는 시점은 내년 3월이기 때문에 아직 2개월 정도가 더 남아 있다.


 이제는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말도 통하고 아직은 어르고 달래는 게 먹히는 시기이기도 해서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해 그냥저냥 보고 있는데 그간 아빠인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지지고 볶고 보낸 아내에게 본인의 피와 살 그리고 시간을 내어 준 영광스러운 영예를 보내는 바다.


 ‘고마워요. 예쁜 딸아이 잘 낳아 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데 탈 없이 건강하고 밝게 잘 키워 줘서, 앞으로 우리 세 가족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게 잘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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