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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May 28. 2024

#groro, 만났다육

https://groro.co.kr/story/10340



 지난해부터 눈에 들어온 지역 행사가 하나 있다. ‘생명문화도시 청주, 농업을 만나다.’라는 부제를 가진 도시농업 페스티벌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청주는 생명, 문화 이 부분을 도시 특색으로 삼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거 같다. 올해 14회째를 맞이하는 청주청원생명축제도 그렇고 담배를 만들던 공장인 연초제조창을 문화제조창으로 탈바꿈시켜 여러 문화행사 및 공예비엔날레도 격년으로 치르는 거 보면 지향점이 명확한 거 같다. 의도한 건지 모르겠지만 문화제조창 바로 옆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들어선 것도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절묘하다. 도시 이름에 맑다는 뜻의 한자淸가 들어가고 직지의 고장이라 그런가 싶은 생각을 해 보면 틀리지 않은 방향성 같다.



 뭐 여하튼 한 두어 번씩은 가보고 참여해 본 장소 혹은 행사 및 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도시농업 페스티벌’은 올해 처음으로 가 봤다. 사실 페스티벌 자체보다는 행사장 전역에 넓게 자리하고 있는 유채꽃 밭이 유명하다고 해서 한 두해 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올해는 마음먹고 한 번 가 봤다. 상당구청 주변의 넓은 부지에 다양한 주제의 부스들이 마련돼 있었다.



 지역 농산물부터 시작해서 농산물을 가공한 식품들을 파는 곳,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는 다양한 나무들과 화초 그리고 채소들, 이런 행사장이면 늘 보이는 플리마켓 등등등. 여러 체험행사 중에 눈에 띈 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아이들과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화분 만들기 체험이었다. 딸아이가 아직은 어려 아이들 대상 화분 만들기에 참여하긴 조금 어려웠고 성인들이 참여하는 화분 만들기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그야말로 주최 측에서 준비한 재료로 화분에 흙을 채우고 식물을 심어 가져가는 행사였고 다른 하나는 테이크아웃 컵을 가져가면 식물을 하나씩 심어 주는 행사였다. 결정적으로 두 행사 모두 줄이 너무 길어 기다리기 힘들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식물을 조금 키우는 입장에서 괜스레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



 마술 공연도 있었는데 재미있게 봤다. 비가 오는 행사 마지막 날 갔는데 다음 해에는 조금 더 미리 알아보고 참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유채꽃 밭을 봤는데 행사장 일부에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에 조성해 놓은 것도 예뻤지만 행사장을 끼고도는 무심천변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조성된 유채꽃 밭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행사장에 들어서면서 작은 팸플릿을 하나 받아 들었는데 준비돼 있는 40여 가지 주제의 포인트 중에 주요 포인트인 5곳을 둘러보고 스탬프를 찍어 오면 사은품을 준다는 말에 눈이 멀어 열심히 찍었다. 같이 다니는 아내와 아이가 조금 힘들어했지만 천천히 둘러보라고 하면서 여기저기 비 오는 날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 가 스탬프를 다 찍었다. 오래간만에 초등학교 시절에 소풍 가면 하는 보물찾기 느낌도 들고 해서 행사 마지막 날 참여한 아쉬움과 비 오는 날의 찝찝함이 다 가시는 듯했다.



 아내가 이제 됐냐고 물어보기에 됐다고 나가는 길에 받아 가면 된다고 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행사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갑자기 비가 많이 오기 시작해 부랴부랴 사은품을 받으러 갔다. 과연 사은품이 무엇일까? 분명히 예쁜 쓰레기일 텐데... 얼마나 예쁜 쓰레기인지 보자 하는 마음을 부여잡고 나보다 한참 어린 진행요원에게 가서 엿 바꿔 달라 듯이 스탬프 찍은 팸플릿을 들이밀었다. 와! 다 찍어 오셨네요하는 밝은 반응과 함께 아주 작은 종이 상자 하나를 줬다. 어! 너무 작은데?


 이게 뭐예요? 하고 물으니 작은 다육이가 들어 있는 작은 화분이라고 했다. 이게 화분이라고? 열어 보니 화분이랄 것도 없는 플라스틱 케이스가 있었고 그 안에 코르크에 뿌리를 내린 정말 아이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다육이가 있었다. 허 참... 이건 딱히 쓸모는 없는데 예쁜 쓰레기라고 하기엔... 내가 식물하고 연이 닿기는 닿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5월 초의 일이었는데 불과 얼마 전이지만 글 쓰는 것도 식물 키우는 것도 상당히 심드렁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비 오는 날 그야말로 먼지 나게 뛰어다니면서 스탬프를 찍어 받은 선물이 식물이라니! 그것도 한 번도 키워 본 적 없는 다육이라니!


 이건 뭐 운명까지는 아니고 인연은 확실하단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작은 상자 겉면에 있는 설명을 따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화분 같지도 않은 화분에 다육이를 잘 조립(?)했다. 조립(정말 조립이 맞다.)을 해 놓고 보니 아니 그런데 식물이면 더 자라는 거 아닌가? 다육이가 보통 작기는 하지만 이 플라스틱은 너무 작은데 더 크면 어쩌지? 더 클 수 있는데 이 플라스틱에 갇혀 더 이상 못 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봉하고 일주일 뒤에 물을 주라고 해서 일주일간 고민을 하다 플라스틱을 쪼개서 다육이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그로로 표 화분에 흙을 담고 옮겨 심었다.


 그제야 막힌 속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최소한 이 정도 화분엔 심어 놔야지 더 이상 안 자라고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크기가 성장의 끝이라고 해도 뿌리를 딛고 있는 흙은 땅은 조금 더 넓어야 하지 않겠어 하는 마음으로 정리를 했다. 물을 많이 주면 안 될 거 같아 분무기로 살짝 화분의 흙 표면만 적셔 줬다. 처음엔 실내에 뒀었는데 햇빛 좀 많이 받으라고 옥상으로 옮겨 뒀다. 아직은 처음의 크기 그대로인 거 같지만 무럭무럭 자라길 바라며 매일 옥상에 올라가 나름 상태를 확인 중이다.


 물은 한 달에 한 번 주라는데 오늘 일을 나갔다 온 사이에 비가 와서 물을 많이 먹었을 텐데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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