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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Sep 21. 2024

어떤 걸 바랐나요?

https://groro.co.kr/story/11963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바란 게 몇 가지가 있다. 쓰기 시작하면서 바란 건지 그걸 바라서 글을 쓰기 시작한 건지는 닭과 달걀의 관계라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바란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그 몇 가지들의 우선순위도 가리기 조금 애매하다.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엮여 있는 바람들이기 때문에 특별한 순서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나열해 보겠다.



 첫 번째는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냥 웃음만 나오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그야말로 글을 처음 쓰는 초짜의 무모한 바람이었다. 다행인 건 이런 어처구니없는 바람을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현실로 끌어내렸다는 점이다.



 주워들은 이야기로는 우리나라에서만 한 달인가 일 년에 3만여 권이 책이 나온다고 했다. 한 달에 3만 권이면 더 바랄 수 없는 꿈이고 일 년에 3만 권이라고 해도 가 닿지 못할 꿈이다. 여하튼 3만여 권의 책 중에 순위권에 들어야 된다는 건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로또 1등 당첨에 버금가는 일 같다. 물론 로또 1등 당첨의 수학적인 확률보단 높겠지만 심리적으론 거의 비슷한 거 같다.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한 자격 요건을 생각해 볼 때 내 글은 단 하나도 충족되는 게 없다. 우선 재미가 별로 없다. 인간이란 종족은 그게 무어든 재미있으면 일단 관심을 갖게 마련인데 재미가 없으니 여기서 이미 베스트셀러는 아웃이다. 그렇다고 이렇다 하게 의미나 감동이 있는 것도 아니다. 뭐랄까, 시쳇말로 되지도 않는 진지 빠는 걸 싫어해서... 일상 속의 고찰考察이니 단상斷想이니 소고小考니 이딴 거 자체(저런 단어들도 싫다.)를 싫어한다. 그런가 하면 말 그대로 담담한 일상을 담아내느냐? 그것도 아니다. 중간중간 뭔가 조금 독특한 내용, 튀고 싶은 내용을 담아내려는 작위적인 행태가 담백한 담담함마저도 잡아먹곤 한다. 전문적인 내용을 쓰는 것도 아니고, 이래저래 따져 보면 볼수록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내용을 전혀 쓰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일이 없다.



 두 번째는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싶었다. 역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글을 쓴 지 만으로 4년이 넘었는데 아직 그 일을 하고 있다. 오히려 조금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조만간 일하는 곳을 옮길 계획도 갖고 있다. 첫 번째 바람과 연동되는 부분인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면 일을 그만두고 단어 그대로 전업 작가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뭐 앞에서 구구절절 설명했듯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일은 요원하니 전업 작가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평이하게 표현하면 좋은 취미정도고 조금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야기하면 투잡 정도가 될 거 같다. 즉, 웬만해선 일을 때려치울 일이 없을 거란 이야기다. 열심히 일하면서 글도 쓰고 뭐 운이 닿으면 책도 내고 소가 뒷걸음치다 뭐라도 잡듯이 혹여 책이 팔릴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 정도로 적당히 정리했다.



 세 번째는 어찌 보면 가장 의미 있는 바람이기도 한데 바로 나를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다. 내 속에 들어 찬 나에 대한 이야기들,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들 그리고 소화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다 끄집어 내 보고 싶었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게 혹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 마음이 컸는지 글을 쓰기 시작한 초반에 그야말로 쏟아 내듯이 내 이야기를 썼다.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40년 넘게 살아온 인생인데 할 이야기가 없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신나게 써 내려갔다.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딱히 쓸 이야기도 없고 이게 글을 쓰는 건지 일기를 쓰는 건지 점점 애매해졌다. 일기도 글이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글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길을 잃어버렸다고 해야 되나? 글 쓰는 걸 거의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다.



 대충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거 같다. 뭐 이런저런 상황에 의해 아직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처음 바랐던 것들이 상당히 퇴색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당분간 계속 글을 쓸 예정이긴 하다. 그 당분간이 바로 당장 내일 까지 일수도 있고 내년 일수도 있고 평생 일수도 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끝을 특별히 생각하지 않고 이제 그만 됐다 하는 순간까지 쓰려고 하는데, 지금 이 마음이 어쩌면 글을 쓰면서 가장 바랐던 상황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그만 쓸까?

>>그만 써. 뭐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 아니야. 그래도 달에 돈 10만 원은 나와.

>>오~ 그래도 헛짓은 아닌가 보다.

> 그렇지. 그런데 헛짓은 아닌 거 같은데 헛짓 같고 그래.

>>그게 뭔 소리여?

>그냥 그렇다고.

>>헛짓이면 헛짓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냥 그런 게 어딨어.

>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칼로 딱 잘라지디?

>>하이고, 철학자 나셨네. 그래서 글 나부랭이 쓴다고 꼴값 떠는구나!

> 뭐 기분은 별로인데 딱히 틀린 말은 아니야.

쥐뿔 개뿔 뭐 아무것도 없는 거 같은데 또 있는 거 같고

그걸 잡아 보고 싶은데 도구로 글을 써먹는다고 해야 되나?

그런데 도구를 잡은 내가 부족한 건지

도구로 잡은 글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뭐가 잘 안 되네.

그래서 더 내려놓지 못하는 거 같기도 하고...

>>아서라. 그만 때려치워라.

> 아니야,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그 혹시가 사람 잡는 거여.

> 괜찮아, 하던 일을 접은 것도 아니고

당장 먹고사는 데 문제도 없어.

그래서 제대로 글을 못 쓰는 건가 싶기도 한데,

그렇다고 제대로 들이대기엔 무섭고 뭐 그래.

>>대충 뭔 말인지 알겠다. 여하튼 열심히는 사는 거지?

>아 그럼! 열심히 하던 일하고 글도 쓰고 그렇게 살고 있어.

다만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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