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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분갈이

by 이야기하는 늑대

https://groro.co.kr/story/12357



드디어 미루고 미뤘던 대망의 1차 분갈이를 완료했다. 일식이가 자라 올라올 때 나중에 분갈이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이식이가 불쑥 커져 일식이를 넘어서면서 어! 조만간 분갈이해야 되겠는데 하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아직 미루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삼식이가 혹시 자라 올라 올라나 기대를 하는 도중 생각지도 못한 사식이가 안녕! 하고 인사하기에 이제 더 이상 분갈이를 미룰 수 없구나 싶어 화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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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면밀하고 꼼꼼하게 여기저기 다니면서 알아본 건 아니다. 아내가 생필품을 사러 다이소에 갈 때면 같이 따라가서 그저 곁가지로 대충 훑어보며 이 정도 화분이면 되겠다 하는 정도로 준비했다. 이후로 한 두어 번 더 따라다니다 저 정도 화분이면 되겠다 싶어 가격까지 확인했다. 다이소답게 1,000~3,000원을 넘지 않았다. 아주 나이스했다.(이런 표현이 바른 표현은 아니지만 그냥 쓰고 싶어 씁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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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음을 먹고 사고자 하는 화분까지 다 확인을 하고도 분갈이를 미뤘다. 그렇다. 난 뭘 잘 미룬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미뤘던 모든 일들을 바로바로 했다면 아마 난 성공을 해도 진즉에 했을 것이다. 그런데 뭐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어쩌나...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 더 미루려다 혹시 흙 속이 전부 뿌리로 뒤엉켜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다른 식물의 분갈이를 미루고 미루다 기존 화분 흙 속이 온통 뿌리로 뒤엉켜 있던 걸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기억이 스치자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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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치면 좁아터진 집구석에서 발을 다리를 접고 몸을 웅크리고 겨우 잠을 청하는 꼴인데 평생 못 살아서 작고 좁은 집을 전전했던 스스로의 과거를 되짚어 볼 때 안 될 일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다이소에 군인이 돌격하듯이 화분을 사러 갔다. 애초에 다이소에서 괜찮은 화분을 바란 건 아니었다. 그런데 가격만 나이스하고 딱히 마음에 드는 화분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눈이 높은 것도 아닌데 영 마음에 차는 게 없었다. 크기도 어중간하고 색깔도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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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 이거면 됐다 싶은 걸 겨우 집어 들다가 기존의 화분과 거의 같은 모양과 기능을 갖추고 있는 화분을 뒤늦게 발견했다. 색도 뭐도 예쁜 구석은 거의 없었지만 어차피 처음에 집어 든 화분도 이거다 싶은 화분은 아니었기에 그럼 차라리 기능적인 측면만 보자 하고 통기성을 우선시해서 만들어진 플라스틱 화분을 집어 들었다. 더불어 처음엔 그로로가 준 집에 남아 있는 흙으로 적당히 채우려 했는데 새로 산 화분 크기가 생각보다 있어 부족할 거 같아 ‘관엽에 좋은’이라는 표현이 붙은 배양토도 함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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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하루 더 미루고 다음 날 아침, 그러니까 어제 토요일에 드디어 분갈이를 했다. 분갈이는 순식간이다. 미뤘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끝났다. 30분도 안 걸린 거 같다. 그렇다. 매사 미루던 일은 막상 시작하면 순식간에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늘 미룬다. 구제불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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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와 옷을 다 갈아입고 방바닥에 신문을 깔고 분갈이를 시작하다 아차! 밖에 있는 모종삽을 안 들고 온 걸 생각했다. 나가기 귀찮은데... 손으로 대충 꺼뭉이가 원래 살고 있던 화분을 조물조물하다 안 되겠다 싶어 나가지는 않고 나무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나무젓가락으로 흙과 화분 사이를 푹푹 쑤셔 가며 틈을 만들어 꺼뭉이를 들어 옮겨 심었다. 내가 끊어 먹은 게 아니라면 생각보다 뿌리가 풍성하고 길게 뻗어 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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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남아 있던 그로로를 통해 받은 흙을 깔고 새로 사 온 관엽에 좋은! 배양토로 보충을 하고 기존 화분의 흙을 담아 고르게 펴준 뒤 꺼뭉이를 자리 잡았다. 가운데로 잘 몰아서 흙으로 주변을 채우며 지지해 주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며 다져 나갔다. 분갈이하는 도중 혹시 꺼뭉이가 힘들까 싶어 이전에 주고 남아있던 영양제도 마저 줬다. 어느 정도 됐다 싶을 때 토끼들도 이사를 시키고 마지막으로 역시 분무기로 물을 흠뻑 주고 다시 베란다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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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베란다 턱에 올리기엔 이제 화분이 조금 컸다. 아직 올라가긴 하는데 왔다 갔다 하는 곳이라 자칫 실수로 화분을 엎을까 걱정이 됐다. 일단 둘 곳이 마땅치 않아 두기로 했다. 어차피 날이 더 추워지면 다시 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때까지 원래 자리에 두면서 분갈이한 화분에 잘 안착하기를 바라며 마무리했다. 벌써부터 다음 분갈이에 대한 귀찮음이 몰려와 이왕 하는 거 그냥 더 큰 화분에 할 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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