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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코스

3주 차

by 이야기하는 늑대


교육 장소가 바뀌었다. 다행히 지역까진 바뀌지 않았다. 1, 2주 차 교육을 받았던 장소가 다소 협소하긴 했었다. 교육생과 강사 그리고 코치진 모두해서 30여 명이 넘는 인원이 복작복작하기엔 다소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그 덕에 보다 친밀감이 높아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친밀감은 친밀감이고 교육 장소로서의 공간은 또 공간이었다.



바뀐 교육 장소는 이전 장소보다 넓었다. 무엇보다 이전 교육 장소는 강의를 진행하는 공간이 꺾여 있어 조금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새로운 교육 장소는 거의 정사각형 모양으로 트여 있어 보다 개방감이 높았다. 물론 이전 교육 장소에서의 교육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교육의 내용이 좋다면 사실 장소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소가 주는 이점이란 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넓은 장소에서 교육을 받는 맛이 더 나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여하튼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3주 차 교육이 시작됐다. 1부는 중요한 내용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중요한 몇 가지 원칙을 보다 확실하게 기억하기 위해 쉬운 단어와 이미지를 엮어 재미있게 율동도 하고 원칙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이런 식으로 영어 단어를 외우는 법을 책으로 내 대박이 난 교재가 있는데 왜 대박이 났는지 알 것 같은 순간이었다. 가벼운 율동을 통해 몸으로 익히고 쉬운 단어를 말하고 들으며 청각에 저장하고 연상되는 이미지를 통해 가상의 장면을 시각으로 전환하면서 다소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원칙을 재미있게 익힐 수 있는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 이후에 개인적으로 매 주차 교육의 메인이라고 생각하는 2부 교육인 개별 발표가 진행됐다. 어린 시절의 사건과 그 사건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그래서 난 그 사건의 경험을 내 삶에 어떻게 적용했는지 등을 2분 안에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의 사건이라... 기억하는 사건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이 더 많을 텐데 그중에 어떤 사건을 발표의 소재로 삼으면 좋을까 하고 지난주 내내 고민했다. 5살 때 인가 엄마가 마당에서 집주인과 뭘 하는 동안에 날아가는 나비를 따라 밖으로 나가 길을 잃어 온 동네가 뒤집어진 이야기를 할까? 눈에 다소 문제가 있어 초등학교 때 눈 수술을 해서 한 달 내내 한쪽 눈을 반창고로 가리고 산 이야기나 중학교 때 장난치다 코뼈가 으스러져 수술을 하고 역시 한 달 내내 코를 반창고로 보호하듯이 붙이고 다닌 이야기를 할까? 어린 시절부터 덩치가 작지 않아 육상부나 축구부 등의 운동부에 불려 다닌 이야기를 할까? 아니면 첫 음주의 시작인 중학교 3학년 시절에 술 마신 이야기를 할까? 공부를 내내 잘하다 고2 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공부에 손을 놓기 시작해 고1, 2 때 보다 더 신나게 논 고3 때 이야기를 할까? 수능 보기 일주일 전까지 친구들과 신나게 술을 마시고 꽐라가 나서 싸구려 여인숙에 짐처럼 처 박혀 잠든 이야기를 할까? 고등학교 몇 학년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마음에 안 드는 놈이 있어 두고 보다 선빵을 날려 찍어 눌러 버리려다 넘어져 오지게 밟혀 눈 밑이 찢어진 이야기를 할까?.....



여러 가지를 고민하다 뇌리를 스치는 하나의 상태가 생각났다. 내 삶의 80% 이상을 차지한 가난이라는 그림자가 생각났다. 그래, 이거다! 다른 이야기들은 이 가난이라는 상태에 비하면 그저 해프닝일 뿐이었다. 가난으로 발생한 일도 참 많았다. 아주 정말 진짜 대표적인 일만 한 두어 가지 나열해도 밤새 술을 마시며 울고불고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지지리 궁상도 적당해야 사람들이 안쓰럽게 봐주는 거지 과하면 그야말로 민폐다. 딱히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많고 많은 가난과 관련된 이야기 중에 너무 어리지도 너무 나이가 많지도 않은 시절의 이야기를 했다. 요지는 이거였다. 그런 무수히 많은 가난에 의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사건과 기억들로 인해 살아야 한다는 생존의 의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해서 성인이 된 이후로 그런 생존 의지를 바탕으로 나름 삶을 잘 버티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발표를 했다. 지난 글에서 어쩌다 보니 발표를 나름 잘하는 방법에 대해 감히 글을 쓴 바람에 가장 먼저 발표를 했다. 사실 그래서 가장 먼저 발표를 하라고 누구도 등을 떠밀진 않았지만 딱히 전문적이지도 않은 이야기를 떠든 죄(?)에 대한 책임감으로 나도 모르게 제일 먼저 발표해야겠다고 생각한 거 같다.



다른 교육생 분들의 발표도 모두 좋았다. 내용뿐만 아니라 발표를 하는 방식도 나쁘지 않았고 개성이 넘쳐나는 그야말로 다채로운 발표의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발표 도중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먹이며 발표를 겨우 마무리한 분의 내용과 상황이 가장 인상 깊었다. 다소 냉혹할 수 있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어떤 아픔도 없을 거 같은 분들이 이런 자리에서 간혹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우는 경우가 있는데 그 순간 내 마음은 미소를 머금는다. 그러면서 혼자 되뇐다. ‘울어도 됩니다.’



누군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면서 저렇게 우는 걸 탐탁지 않게 볼 수도 있다. 뭐 그들의 생각도 이해는 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는 사람을 뭐라고 할 수도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을 역시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문제다. 많은 것들을 충분히 공유하고 있는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며 우는 건 어쩌면 너무 쉬운 일일 수도 있다.(물론 이 역시 친하기에 오히려 더 감추고 덮는 경우도 있지만)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불특정 한 다수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며 우는 건 어찌 보면 푼수 같거나 주책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오히려 이제는 그 누구 앞에서도 털어낼 수 있는 이제 정말 지나 간 아픔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해서 오히려 그런 과정을 통해 소위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다친 상처를 아문 흉터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잘 모르는 사람이 우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울음을 이해한다면 그 아픔은 이제 털어도 되는 아픔입니다. 그러니 울어 버리세요. 털어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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