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데일 카네기 코스

4주 차

by 이야기하는 늑대

비가 왔다. 오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아닌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비가 아닌 지금 봄 이에요 하고 속삭이는 비가 왔다. 부슬부슬, 보슬보슬.



교육 장소가 또 바뀌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정말 많은 교육을 받아 왔지만 이렇게 교육 장소가 자주 바뀌는 교육은 또 처음이었다. 다소 번거롭긴 한데 신기하게 은근 기대가 됐다. 다음 교육 장소는 어디가 될까 하는 이상한 기대를 하면서 차를 운전했다. 교육 장소가 다시 바뀌었다는 공지가 있었을 때 그럼 수료는 ‘성심당’에서 하는 거냐고 농담 삼아 되물었다. 교육 장소가 대전인데 대전은 돌고 돌아 성심당으로 통하는 동네니까... 진짜 수료식을 성심당에서 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ㅋ



교육은 매주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됐다. 1부는 주로 강의를 듣는 편이고 2부는 교육생 전원이 발표를 했다. 이번 주에도 마찬가지였는데 2부의 발표 주제는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증진한 경험과 그 과정을 카네기의 원칙을 어떻게 활용하고 적용했는지 공유했다. 난 다리가 아픈 엄마와의 관계 증진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관계를 증진한 이야기를 했다. 그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가까울 거 같은 가족이 오히려 많이 소원했구나 싶었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거 같은 믿음 때문에 자꾸 뒤로 미룬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1부엔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안 혹은 걱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룹 별 발표를 가볍게 하기도 했다. 내가 느끼는 불안은 정말 일상적인 불안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드는 불안. 그렇게 큰 불안과 걱정은 아니다. 신발 속을 굴러다니며 은근히 불편하게 하는 작은 돌멩이 같은, 새 옷을 입었는데 자꾸 몸 어딘가를 간질이는 잘 보이지 않는 실밥 같은, 하루 종일 딱히 신발을 벗을 일이 없음에도 양말의 작은 구멍이 신경 쓰이는 정도의 사소한 불안과 걱정이 매일 끈덕지게 들러붙는다. 그리 크지 않은 불안과 걱정이라 감정적으로 오는 영향도 그렇게 크지 않다. 복싱으로 치면 계속해서 가벼운 잽을 툭툭 맞는 정도? 그래서 더 문제다. 당장 크지 않으니 해소할 생각도 않고 그냥 끌어안고 산다. 하지만 그로 인한 감정의 앙금은 분명히 쌓이고 있다. 아주 작은 입자의 진흙이 켜켜이 쌓인 진흙탕물이라고 해야 될까? 누구고 언제고 살짝만 건드리기만 하면 가라앉아 있는 진흙이 잔뜩 올라 와 뿌옇게 되는 그런 흙탕물.



딱히 해결 방법이 없다. 그저 털고(부르르르) 일어서는 수밖에. 걱정이 되는 만큼 오늘을 살면 된다. 어제 무언가 안 한 거 같으면 오늘 하면 되고 오늘 혹여 다시 까먹고 못했다면 내일 하면 된다. 시간이 무한하진 않지만 그래서 그렇게 별스럽지 않게 오늘 못한 걸 내일로 넘기면 안 되지만 그렇게라도 잊지 않고 해내는 게 어딘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유튜브의 무서운 알고리즘이 얼마 전에 자주 듣던 노래(?) 하나를 추천해 줬다. 불교의 경전 중에 하나인 반야심경般若心經이었다. 조금 설명이 필요할 듯한데 반야심경은 일단 노래는 아니다. 더불어 난 불교신자도 아니다. 다만 굳이 꼭 종교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불교를 선택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긴 하다. 그래서 불교적인 무언가가 은근히 친근하다. 그리고 내가 듣는 노래로서의 반야심경은 요즘 감성에 맞게 부담 없이 들을 수 있게 잘 각색한 버전이다. 모르고 들으면 흔한 K-pop 같다.



가사라고 해야 될지 경문經文이라고 해야 될지 애매하지만 여하튼 이런 내용이 있다.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


조금 부연을 하면 ‘가자. 가자. 넘어 가자. 그게 무어든 불안이든 걱정이든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 혹은 행복을 이루자.’ 대충 이렇게 해석 아니 받아들이며 자주 들었다. 그걸 무서울 만큼 똑똑한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기억을 해서 지금 이 순간 다시 들으라고 안내해 줬다. 불교라고 하는 특정 종교의 경전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니 종교적인 깨달음이라고 국한할 수도 있지만 내가 알기로 불교는 그런 종교는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석가모니 부처님만 깨달을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누구나 깨달을 수 있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그런 깨달음이다. 보다 정확히는 누구나 마음속에 부처가 있는데 아직 깨닫지 못해서 끄집어내지 못했을 뿐이다. 개개인이 모두 부처가 될 수 있으니 깨달음의 의미도 천차만별이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불안해하는 내가 그런 불안함을 말끔히 없애 버리면 나 역시 그 순간은 부처가 되는 것이다. 물론 불교를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 솔직히 신빙성은 없지만 짧고 무식한 견해로 난 그렇게 이해했다. 그래도 괜찮을 거 같았다. 마음으로부터 믿지도 않는 종교지만 그냥 그렇게 내 멋대로 해석해도 왠지 부처님은 온화하게 웃으며 그래 그 말도 맞다 이래주실 거 같았다.



오늘도 넘어 가자. 따지고 보면 늘 따라붙는 불안인데 솔직히 친숙하기도 하다.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


https://www.youtube.com/watch?v=g4xh9MBT8_8&list=RDg4xh9MBT8_8&start_radio=1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