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여지없이 새해가 또 밝았다. 어김없다, 여지없다는 다소 긍정도 부정도 아닌 느낌의 단어를 쓰기엔 밝아오는 새해가 너무나도 감사하지만 오만하고 간사한 나란 인간은 또 그런 표현을 쓰게 된다. 여하튼 그런 새해가 다시금 밝았다. 붉은말의 해라고 한다. 어느 색의 무슨 띠이건 그 의미가 남다르지 않을까. 의미야 가져다 붙이면 그만이다. 올해는 열정적으로 달리면 되는 뭐 그런 해인 거 같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난 새해라고 특별히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지가 꽤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돌아보면 연초에 세운 계획의 99%는 무엇이었는지 조차 기억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실천한 게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계획을 새해가 시작되는 은근히 기분 좋은 시기에 에너지를 써 가며 세울 필요가 없음을 경험을 통해 몸소 확인했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거 같다.
그런데 올해의 시작은 조금 달랐다. 더 달랐던 점은 의도와 다르게 나름 계획을 세우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이번 주의 시작은 아직 2025년이었는데 주말인 지금은 2026년이다. 그날이 그날 같지만 분명히 해가 바뀌었고 기분이 조금 이상한 건 또 어쩔 수가 없다.) 말에 휴대폰을 만지다가 교보문고에서 진행하는 ‘겨울의 필사단’이라는 이벤트 광고를 봤다. 이거 뭐지 하고 눌러 이리저리 둘러보다 그냥 신청을 했다. 그리고 뭐에 홀리듯 필사를 하기 위한 책도 2025년 마지막 날에 샀다.
책을 산 이 부분도 상당히 놀라운 점이다. 결혼을 하고 얼마 뒤부터 책을 사서 모으지 않기로 했다. 나는 책을 사서 보는 것과 그 책을 마치 전리품처럼 책장에 꽂아 두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아내가 책이 너무 많다고 한 번 보고 보지도 않는 책 뭐 그리 많이 꽂아 두냐고 정리 좀 하자고 해서 나름 열띤(?) 논의 끝에 어느 정도 정리를 했고 더 이상 책을 사지 않기로 했다.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그때그때 도서관에서 빌려 보기로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지금 그야말로 농담조로 백만 년 만에 책을 샀기 때문이다. 그것도 필사책을...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름 글을 쓴다고 활동하는 브런치에서 역시 새해를 맞아 ‘독서 챌린지’라는 걸 시작한다는 공지를 봤다. 이번에도 그냥 둘러보다 신청을 했다.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 정확히 파악하지도 않고 그냥 신청을 했다. 독서 챌린지니까 분명히 책을 읽는 거겠지만 어떤 책을 어떻게 읽고 그걸 뭐 어떻게 확인하고 다 읽으면 무슨 보상이 있다는 것도 대충 보고 신청을 했다.
그냥 어~ 어~ 하면서 신청한 이벤트인 필사와 독서를 신청한 이후로 새해가 밝았고 이제 겨우 이틀째지만(두 이벤트 모두 공교롭게도 시작일이 1월 2일이었다.) 모두 아직은(이제 겨우 이틀째다. ㅋ) 실천 중이다. 얼마나 갈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한 달은 확실히 실천할 거 같다. 두 이벤트 모두 1월 한 달을 지켜보고 잘하는 사람은 추첨을 통해 소정의 상품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욕이 있는 세속적이고 통속적인 나란 사람은 이런 거에 약하다. 해서 약간 퀘스트 하는 마음으로(한 때 게임을 어마무시하게 많이 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일퀘스트하는 기분으로 하면 될 거 같다.) 1월 한 달은 분명히 실천해 낼 거 같다.
새해 계획을 안 세운 지 한참 된 내가, 책을 안 산지 몇 년이 된 내가 어쩌다 보니 책을 사서 필사를 한다는 새해 계획 세움을 당해 버렸다. 더불어 최근 아주 극심한 독서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는데(사실 읽기 싫어 안 읽는 건데 가뭄에 시달린 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 독서 챌린지도 시작했다. 물론 독서 챌린지를 위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렸다.
의도와 상관없이 어쩌다 보니 혹은 반강제적으로 어찌어찌 엮여 못 이기는 척 딸려 가는 걸 은근히 좋아하는 성향이다. 그러니까 바랐던 건 아니지만 눈을 떠 보니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면 꽉 부여잡고 달려가는 걸 좋아한다. 잘은 모르지만 하나의 산을 호령하는 왕인 호랑이가 달리는 경우는 둘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그냥 시원하게 달리거나 아니면 먹이를 쫒거나 다시 말해 그 끝이 나쁠 경우는 거의 없을 거기 때문에 내 의도나 의지와 상관이 없어도 부여잡는 게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 거라고 나름 확신한다. 그러니 잘 붙들고 달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