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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Aug 04. 2021

가난하게 살았어. 1.

 우리 집은 가난했다. 물론 찢어지게 가난하진 않았다. 그래서 가난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정말 가난한 분들께(정확히는 나보다 가난한 분들께)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가난과 고통에 비하면 내 그것은 새 발의 피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써 보려 한다. 사람은 간사해서 그들의 가난은 내 가난이 아니고,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가난은 내 가난이기에 내가 느낀 나의 가난으로써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기억이 나는 어린 시절부터 더듬어 보려 한다. 얼마 전 까지도 그랬지만 늘 세 들어 살았다. 우리 집, 내 집이 없었다. 방 한 칸의 셋방. 그럼에도 지금 이야기하려는 어린 시절에 세 들어 살 던 집은 나름 행복했다. 없이 산 집이었지만 주인집과 정말 사이가 좋았다.     

 


 요즘엔 보기 힘들지만 예전엔 대부분이 주택에 살았다. 골목이 있는 동네의 1층짜리 주택 혹은 2층짜리 주택에 주인집과 셋방살이하는 가족이 많았다. 우리가 살던 집은 1층짜리 주택이었다. 철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크지 않은 마당에 작은 정원이 있었다. 거의 바로 앞에 주인집의 현관이 보였고, 작은 정원을 가로질러가면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나왔다. 계단 밑엔 보통 화장실이 있었다.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벽을 타고 난 길을 따라 가면 셋방의 문이 나오는 그런 구조였다.     

 


 내가 살던 집도 그랬는데 주인집과 정말 가족처럼 지냈다. 주인집에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누나들이 살았다.(거의 이모나 고모뻘이었다. 실제로 이모라고 불렀다.) 언제나 항상 친동생처럼 친조카처럼 챙겨 줬다. 시간 나는 대로 놀아 주고 맛있는 것도 해주고 그랬다. 주인집이었지만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더 고마웠던 건 이렇다 할 학원이나 선행 학습 등이 변변치 않던 시절에 초등학교(난 국민학교 출신 세대다.) 가기 전에 한글까지 가르쳐 줬다. 무료로 과외를 받은 셈이다. 그 정도로 돈독하게 지냈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덕선이네, 정환이네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명확히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였지만 분명히 가족이었다. 시대가 그랬다.     

 


 어느 날 엄마는 어린 나와 동생을 집에 재워 두고 밖에 마실을 나갔다. 마실 이래 봐야 주인집 아주머니랑 동네 옆집 정도 가는 수준이었다. 조금 더운 여름날이어서 문을 열어 두고 나갔다. 어린아이 둘이 자고 있었지만 내 나이가 예닐곱 살 정도는 됐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그때는 대문이고 현관이고 다 열어 두고 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마실 나갔다 돌아온 엄마가 우리가 자는 주변을 보고 화들짝 놀라 우리를 깨웠다. 왜 그런 가 했더니 우리가 깔고 자던 이불에 신발 자국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아이들 둘만 재워 두고 문까지 열어 두고, 잠시 마실 나갔다 온 사이에 도둑이 든 것이다. 아이들에게 혹여나 해코지나 하지 않았나 하는 마음에 우리부터 들춰 확인했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다는 걸 확인 후에 정신을 차리고 방 안을 둘러보니 다락문이 열려 있더란다.(요즘엔 다락 있는 집이 없다. 잡동사니 던져 놓기에 참 좋은 방안에 복층 형태로 있던 창고 같은 공간이다.) 다락에 올라가 확인해 보니 쌀을 훔쳐 갔다고 한다. 우리 아무 탈 없으면 됐다고, 오죽했으면 쌀을 훔쳐갔겠냐고 신고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둑이 들었음에도 그 시대가 주는 아련함이 있는 것 같다. 주인집과 말 그대로 가족처럼 지내던 시절, 어린아이 둘을 재워 두고 날이 덥다곤 하지만 문을 열어 두고 마실 갈 수 있던 시절, 도둑이 들었지만 자고 있는 아이들 깰 새라(물론 아이들이 깨면 일이 커지니 그랬겠지만….) 다른 것도 아닌 쌀만 훔쳐 가던 시절의 가난은 지나고 나니 따뜻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조금은 더웠던 낮 4시 정도에 깔고 자던 이불 위의 도둑 발자국이 기억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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