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황 일기6

23.05.22 / 공황 판정 이후 첫 여행

by 정윤

오늘은 미세먼지가 나쁘고 소나기가 예보된 흔히 말하는 나쁜 날이었다.

하지만 내겐 역사적인 날이었다!

오늘 난 공황 장애를 진단을 받은 이후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일치기였고 왕복 4시간가량의 그렇게 길지 않은 이동거리였지만 내게는 큰 다짐이 필요한 결정이었다.

흔히들 공황 장애에는 광장 공포증과 밀폐된 공간에 대한 불안감이 극도로 강해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런한 공포감과 불안감을 느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공황 장애를 겪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살지 않았던 것처럼 증상은 언제 어떤 식으로 발현할지 모르니 조금 걱정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 처방받은 비상약을 꼬옥 챙기고 나는 오랜만의 여행길을 떠났다.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이 나의 여행의 시작을 반겼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미세먼지가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는 나의 설렘을 막을 순 없었다.

그렇게 내가 향한 여행지는 [하동 세계 차 엑스포]였다.

나는 유치원 시절 유치원의 특강으로 다도를 접한 뒤 꾸준히 차를 좋아했다. 하지만 깊은 지식은 없었고 그저 차를 좋아할 뿐인 일반인이었다. 그래서 처음 TV에서 [하동 세계 차 엑스포]에 대한 광고를 봤을 때 가고 싶다고 흘려 말했던 것을 어머니가 듣고 표를 구해오셔서 함께 가게 되었다. 최근 약기운에 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축 늘어져있는 내가 안쓰러운 마음에 나섰던 일이었던 것 같다.

평일이지만 그럼에도 차가 많다는 소식에 아침 일찍 출발한 어머니와 나는 엑스포가 개방하기도 전인 오전 9시 40분가량에 도착했다. 입장을 기다리는 20분 동안 여러 단체 손님들과 일반인 관람객들의 웃는 얼굴들 기대하는 모습들에서 내가 지금 행복이 가득한 공간이 왔다는 사실에 차 엑스포에 대한 기대감과 주변에서 오는 행복감에 기분이 따스했다.

이윽고 10시 개장 시간이 되고 들어간 [하동 세계 차 엑스포]에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가득했다. 오랜만의 여행 그리고 엑스포에 신이 난 나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숨도 막히지 않았고 불안하지도 않았다.

즐거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여기저기 가득한 공간이라니. 심지어 내가 좋아하지만 잘 모르는 나의 애정에 대해 지식을 전파해 주는 다정한 이야기들도 가득했다.

차 박물관에선 차에 대한 오래된 역사들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예를 들어 옛날엔 시집가는 딸의 함에 차 씨앗을 가득 담아 보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땅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차 나무처럼 시가에 뿌리를 깊게 내려 잘 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현대인인 나의 시선에선 조금 섭섭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가정에서의 안정을 바랐던 조상들의 다정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더 다정한 따스한 이야기는 뜻밖의 장소에서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체험 부스였다.

처음엔 꽃 블렌딩 차를 만들러 갔다. 그곳에서 열심히 좋아하는 꽃을 멋모르고 집어넣으며 만족할 때 부스 사장님이 옆 부스를 추천해 주셨다. 옆 부스의 차 맛이 아주 좋으니 꼭 들러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엄마와 나는 블렌딩한 꽃 차를 들고 곧바로 옆 부스로 향했다.

옆 부스의 체험은 총 두 가지였다.

하나는 찻잔을 꾸미는 것이었고, 하나는 차 시음이었는데 그걸 몰랐던 우리는 찻잔 꾸미기를 받고 부스를 잘 못 들린 줄 알았다. 하지만 꾸미기에 자신이 없어 진작에 포기를 선언하자 부스 사장님이 다정하게 "그럼 차를 마셔보시겠어요?"라고 말을 건네주셨다. 나는 신이 나 "네!"라고 대답했고 곧바로 둥그런 찻상에 앉게 됐다.

그 찻상에서 건네받은 차는 너무나 단아하고 우아했고 사장님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너무나 다정했다.

뜨겁지 않고 따스하게 몸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시켜주는 차와 같은 순간이었다.

사장님은 값비싼 차를 턱턱 건네주셨다. 거기에 대해 감사 인사를 건네자 오히려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맛있게 먹어주고 맛있다는 말을 해준 것이 오히려 고맙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나는 최선을 다해 차 맛을 표현했고 덕분에 차를 더 깊게 음미하게 됐다. 누군가의 다정한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오히려 성장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또 이어서 사장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정말 인상 깊었다. 자신도 찻집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듣는데 내 스스로가 알맹이가 있는 사람이면 된다는 말씀이셨다. 스스로 확신이 있고 알맹이 자기 자신이 있는 사람은 타인의 이야기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이셨다.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흔들리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은 너무 많은 바람이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다음 생엔 돌로 태어나기도 싫다. 돌도 바람에 풍화되잖아"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나보다 더 많은 풍파를 겪으셨을 나이대의 사장님의 단단한 말씀에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사람은 사실 생각보다 대단하지 못해서 말 한마디에 많은 것을 배우진 못 한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저 말은 아마 앞으로 나의 풍파에 계속해서 함께하며 따라오고 일으켜 세워줄 말이 되어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평소엔 약기운을 깨고 조금이라도 깨끗한 정신으로 일기를 남기려 애쓰는데... 그래서 조금 흐름이 어색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은 사장님의 이 말씀을 꼭 오늘 남기고 싶어 늦은 시각에라도 일기를 남긴다.

나 스스로 나를 알고 내 중심을 잡고 나의 알맹이 나를 지킨다면 휩쓸려갈 일은 없다.

또한 누군가의 다정함을 감사한다면 나도 성장할 수 있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것은 포기하지 말자.

결국 이 늦은 시각에도 글을, 일기를 남기는 것은 내가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을, 글을 쓰는 것을 그만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뜻이니깐 이 글쓰기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말자.

나의 알맹이 글쓰기를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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