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1 / 약을 바꾸다.
5월 12일 새벽 공황 발작이 일어난 이후 나는 일상생활이 힘들어졌다.
공황 장애 약을 그대로 복용하고 있었지만, 마치 약을 복용하지 않았을 때처럼 손이 떨리고 이윽고 온몸이 떨리고 숨도 얕고 잦아졌다.
한마디로 증상이 매우 악화됐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과 약속한 다음 진료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조금 더 기다려보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황이라는 깊은 바닷속에서 소리 없이 빠져들어 숨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산소통 없이 깊고 깊은 바다로 잠겨들어가고 있었다. 고민이 짧진 않았다. 약속된 진료보다 앞당겨서 진료를 보러 간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겐 스스로의 증상 악화를 자각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을 실천해야하는 일이었으니깐 말이다.
그렇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만큼 심각해지는 공황 증상들에 5월 18일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평소엔 병원을 오전에 들렸지만 이날은 다른 일정 때문에 오후에 들렸다. 처음으로 본 오후의 병원은 굉장히 조용했다. 어쩌면 최근 병원 리뷰 평가에 적힌 나쁜 리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이 부족하고 간호사 선생님들의 불친절이 병을 키운다는 말에 당사자가 아닌 내가 상처받을 만큼 칼날 같은 말들이었다. 그 의사 선생님은 내게 숨통이 트이게 해주셨고, 간호사 선생님은 내가 가장 원하던 "좋아질 수 있다"라는 말을 해준 유일한 의료진들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더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게 내가 내게 다정함을 건네줬던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다정함이었다.
그리고 짧은 대기 줄 덕에 지금껏 중 가장 빠르게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그건 내게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공황 증상이 심해진 뒤 나는 내 일상을 기록하고 증상을 기록하는 걸 게을리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어떤 증상을 겪고 있는지 메모할 만큼 객관적인 증상 구분이 안됐다.
그저 모든게 힘들었고 모든 일에 힘이 빠져나갔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의 평소와 같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라는 말에 나는 눈썹과 어깨를 축 늘어 틀인 채 두서없는 말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나의 첫마디는 "공황 발작이 일어났어요."였다.
그 말을 서두로 공황 발작 이후로 느껴지는 공황에 대한 불안감 그로 인한 불안과 우울감 그리고 약을 먹어도 잠잠해지지 않는 공황 증상들을 나열했다. 불과 저번 진료에는 증상이 나아지고 있고 궁금한 점이 있다며 구체적인 사항들을 적어왔던 내가 거짓말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축 처진 건 내 어깨뿐만이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도 눈썹을 축 늘어 틀이시곤 또다시 바뀔 내 미래를 말해주셨다.
"약을 바꿔야겠네요."
그리고 키보드에서 손을 뗀 의사 선생님은 내 눈을 바라보시면서 앞으로를 설명해 주셨다.
"발작이 없으셨다면 지금 약을 그대로 복용하셔도 되셨을 텐데, 약을 좀 더 강하게 바꿔야겠어요. 이번 약은 진짜로 졸리실 거예요. 일상생활에 지장이 느껴지실 만큼 졸리고 기력도 없어지실 거예요."
최근까지 먹던 약에 이제서야 졸음을 이겨낼 수 있게 됐던 내겐 슬픈 소식이었지만 이젠 크게 상관없었다. 그냥 벗어나고 싶었다. 이 끝도 답도 없어 보이는 공황으로부터.
이런 내 감정이 나는 스스로 우울감 또는 우울증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 질문했다.
"선생님 제가 요새 너무 우울하고 쳐지는데 이건 우울증인 걸까요?"
내 질문에 선생님은 "그렇다고 볼 순 없다"라고 대답했다.
신경 안정제가 주는 부작용인 무기력감이 우울감과 혼동되는 경우가 잦다는 말씀이 이어졌다. 신경 안정제 때문에 무언가를 할 기력을 잃고 거기서 오는 불쾌감과 우울감이 우울증과 혼돈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것 또한 약에 적응되면 구분할 수 있고 느껴지지 않는 감정이라 하셨다.
나는 만성적인 우울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청량한 하늘의 푸름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깊은 새벽의 푸름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 생각은 내가 처음 브런치 작가명을 정할 때에도 적용됐다. 내 본명 또는 이름에서 착안한 다른 작명들도 많았지만 푸른 일기장이란 이름을 지은 이유는 나의 불완전한 푸름이 청량한 푸름으로 바뀌는 그날까지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이 아직 우울증이라 완전히 판단을 내리지 않으신 지금의 나는 정말 말 그대로 달이 지지도 해가 뜨지도 않은 애매한 푸름 그 자체일 것 이다.
나는 아직 미완성의 사람이다.
많은 양의 약을 처방받고 그 약을 들고 병원을 나설 때 든든함을 느끼는 불완전한 인간. 그게 나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르른 날을 찾아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내일은 공황 장애를 진단받고 처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2시간가량 밀폐된 차량으로 이동하고 사람이 많은 곳을 스스로 찾아간다. 물론 의사 선생님께 괜찮을지 상의했고 괜찮다는 답변 또한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긴장은 된다.
또 동시에 설렌다!
내일 가는 여행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러 가는 여행이다.
나는 정신적인 아픔으로 육체적인 고통까지 겪고 있지만 좋아하는 것들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론 더 공황 일기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나의 사랑에 대한 일기들도 남겨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얼른 약에 익숙해져야겠지만 말이다.
어제도 약을 먹고 저녁 5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내리 잠들어버렸으니 시간은 조금 걸릴 것 같다.
그래도 내 일기를 봐주시는 분들은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앞으로 써 내려갈 점점 청량해져갈 푸른 일기들과 나의 사랑이 담긴 다정한 이야기들을 말이다.
항상 읽어주신 흔적 남겨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흔적이 제게, 제가 걷는 이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더해주고 계세요.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