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황 일기10

23.06.27 / 어쩌면 마지막이 될

by 정윤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어느새 장마가 찾아왔습니다.

혼자 쓰는 일기에 익명의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건 역시 느낌이 이상하네요. 하지만 저의 일기를 읽어주시고 좋아요로 용기를 주신 분들께 꼭 안부를 묻고 싶었습니다. 장마란 그런 시기니깐요. 아름다운 수국이 피어나고 나무가 푸른 잎을 반짝이지만 동시에 쏟아지는 물줄기에 모든 걸 흘려 내려보내고 싶어지는 시기니깐요.

그래서 괜히 여쭤보게 되네요. 잘 지내셨나요?

안부를 여쭈었으니 제 안부를 말씀드리는 게 도리겠지요.

저는 물속 깊이 잠긴 채 지냈습니다. 산소통도 없이 물속 깊이, 깊이 잠겨 들어갔습니다.

사실 지금 이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저는 제 상태에 대해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태생적으로 긍정적이지 못 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공황 장애를 진단받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며 행동하면 금방 극복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아니 바랬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 바램의 일환 중 공황 장애 관련된 서적 읽기가 유독 힘들던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운 의학 전문 용어 때문에 독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보니 그 책엔 그다지 어려운 의학적 용어가 없었습니다. 대신 끊임없이 긍정적으로 환자를 응원하는 저자 선생님의 응원이 담겨있었습니다. 제가 독해하지 못한 것은 그 끝없는 긍정이었습니다.

스스로 되뇌는 긍정적인 사고, 타인이 불어 넣어주는 긍정적인 응원 그 모든 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역효과를 내며 튕겨져 나가는 아주 깊은 물속에 잠겨있는 기분이 듭니다.

내일은 또 다시 병원에 방문하는 날입니다.

내일은 평소와 다르게 여유롭게 병원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여유로운 시간대 병원에 방문해 의사 선생님께 긴 이야기를 털어놔야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익숙해진 신경 안정제가 더 이상 시도 때도 없이 저를 수마로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이야기, 하지만 익숙해져 버린 신경 안정제는 더 이상 호흡곤란에 도움을 주지 못 하고 불규칙하게 또다시 찾아오는 호흡곤란은 저를 공황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마치 끝없는 수마에 빠져들었던 건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잠들지 못하는 긴 밤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 등 의사 선생님께 전해야 할 이야기가 아주 많습니다. 또한 물속 깊이 잠겨있어 저도 제대로 바라보기 힘든 제 상태를 이야기하려면 아마도 많은 시간이 소요될 거니깐요.

아마 내일 긴 진료시간이 끝나면 진단명이 더 추가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일기의 이름도 바꾸어야 되겠지요?

어떤 이름으로 다시 일기를 쓰게 될지 아니 애당초 다시 일기를 쓸 수 있을지. 다시 일기를 쓸 힘을 얻을 순 있을지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 파도조차 느껴지지 않으니깐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고요합니다. 그 고요함이 저를 옥죄여오고 있습니다.

고요함의 옥죄임은 저 스스로를 무능하게 느껴지게 만들고 끝없는 수면 아래로 저를 데려가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바랄 뿐입니다.

이왕 태생적으로 긍정적이지 못 한 사람이라면, 평생 물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기질이라면 적어도 수면 밖이 느껴지는 곳까지 올라가고 싶습니다.

더 이상 힘들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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