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7 / 새로운 정신과
안녕하세요.
아주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반년이 넘도록 비워뒀던 제 공간에 다시 글을 적어 내려 갈려하니 가벼운 일기라고 생각해도 문장 끝에 망설임이 맺힙니다.
저는 지난 2023년 5월 1일 공황장애를 진단받았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우울증을 함께 진단받았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암과 같은 치명적인 불치병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게는 그 두 병을 동시에 진단받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일기를 다시 되짚어 읽어보면 당시의 당혹스러움이 잘 느껴집니다.
제가 그 사실에 충격을 받은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가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만성적인 우울에 시달리는 조금은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제 스스로가 정신적으로 나약하단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것도 모두 시간이 흘러 뒤늦게 그땐 그랬던 것 같다고 어림짐작할 뿐인 이야기지만 말이죠.
그런데 알고 보니 저는 정신적으로 강인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매우 취약한 사람이었죠. 너무나도 취약했습니다. 많은 트라우마들을 간직한 예민한 성정은 공황장애와 우울증에게 아주 좋은 식사거리였습니다. 제 공황장애와 우울증은 제 트라우마와 예민함을 먹고 무럭무럭 성장했습니다.
그 결과가 현재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현재는 거기에 덧대어 수면장애도 생겼습니다.
공황장애 진단 초기, 여러 방면으로 병을 공부하며 금방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과거의 제가 현재의 저를 본다면 아마 현실을 부정하지 않을까요? 저는 지금 조금 현실을 부정하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병을 이겨내는 것은 낙관적인 사고방식만으론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했듯 저는 점점 더 나약해질 특성들을 타고났고, 마치 그 특성들이 길을 닦아 안내하듯 점점 수렁에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만하고 싶어 졌습니다.
이렇게 수렁에 빠지는 것도, 수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도 말입니다.
머리가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이 수렁에서 사는 건 너무나도 큰 고통을 동반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렁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는 우물 안을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점프를 연습할 겁니다. 좀 더 높이, 조금만 더 높이 그렇게 수 없이 되뇌며 끝내 우물 밖을 벗어나게 되는 거겠죠. 물론 그 우물 밖은 우물 안보다 더 혹독한 환경이겠지만 그래도 개구리는 오랜 시간 우물 안에서 벗어나길 바란 만큼 가치 있는 우물 밖을 즐기지 않을까요? 전 지금 그 개구리와 같습니다. 정확히는 두 번의 점프를 띈 개구리 같습니다.
저는 작년 5월 1일 공황장애를 진단받은 병원을 꾸준히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끝없는 두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문득 병원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병원의 잘못은 없었다. 같은 흔한 좋은 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병원이 좋았으면 바꿀 생각자체를 하지 않았겠지요. 이성적이라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의사 선생님의 말씀들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기도 하고, 긴 대기 시간 속 인파 속에 앉아 있는 노출환경이 호흡을 가쁘게 만들고 많은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새로운 병원을 찾아 나섰습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가진 환자가 무언가를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우물 밖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개구리처럼 몇 번이고 뛰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병원을 찾아냈습니다. 물론 주변에 도움도 받았습니다. 집중이 풀리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플 땐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 마저 정보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새로운 병원의 첫 방문이었습니다.
이전 병원에선 받지 않았던 기술적인 검진을 걸쳤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 주에 들으러 다시 방문합니다.
솔직히 아직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병원의 신 기술과 조금 더 다정다감한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객관적인 시선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 따뜻하고 다정해서였을까요? 제가 듣고 싶은 대로 멋대로 들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 말들이 너무 따뜻하고 좋았기 때문에 오늘 이곳에 남기고자 합니다.
새로운 의사 선생님께선 참으로 다정다감한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의사 선생님께선 제게 한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 증상들에 대해 주변에선 어떤 반응을 가지고 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질문에 저를 제가 병마와 싸우며 병원을 다니는 등 하는 행동들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께선 그 사실이 제가 잘 버티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잘 이겨내가고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도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저를 지지해 주는 것이라고 말이죠.
간단한 이야기지만, 주변에서도 직접 해준 이야기지만 제 3자의 시선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일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저 스스로가 또는 저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너는 잘 버티고 있다는 가끔 너무 달콤해서 입안에서 쓰게 느껴질 때도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의사 선생님께선 두 번째 질문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냐는 것이었습니다. 병을 낫는다. 그런 전제 말고 앞으로의 제 인생 전반적으로 무엇이 하고 싶냐는 질문이셨습니다. 이건 제가 최근 들어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길을 잃었습니다. 앞서 우물 안 개구리에 저를 빗대었는데 이건 우물 안 개구리에게 못 할 비유였을지 모릅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밖을 벗어나려는 확고환 미래 전제가 있지만 저는 없습니다. 원래 있었는가? 모르겠습니다. 이젠 병을 낫는 것만 생각하고 살다 보니 제가 뭘 하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는지 점점 모르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 질문에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저를 의사 선생님은 안타깝게 보시며 함께 찾아가자고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글로 적다 보니 확실해지네요.
새로운 병원은 따뜻한 곳 같습니다.
너무나 달콤해서 쓴 것 같지만 확실하게 위를 보호해 주는 꿀물 같네요.
이렇게 다시 글을 쓰는 것도 의사 선생님의 칭찬 덕분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는 이야기에 의사 선생님은 좋은 취미라고 기뻐하셨습니다. 저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건 좋은 일이라고요. 저는 그게 무서웠습니다. 저를, 제 내면을 들여다볼수록 제 심연이 보일수록 제가 저를 알면 알수록 무서워집니다. 저는 어떤 사람일까요? 무용지물 인간쓰레기가 아닌 게 맞을까요?
오늘의 글은 이렇게 끝맺으려 합니다.
눈가에 맺히는 눈물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한 걸음 나아간 대답이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