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3 / 열흘 만에 돌아 본 나
8번째 일기를 남긴지 벌써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동안 무사히 여행을 끝내고 익숙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행 동안 큰 이상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여행을 위한 자기암시에 불가했는지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저는 그대로 앓아누웠습니다. 때문에 일기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누워있는 동안 여행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일기에 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는데 막상 몸이 많이 좋아지고 키보드 앞에 앉자 그동안 적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숨어버리네요.
여행에서 제가 얻었던 특별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쌓아 준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공황 일기와 함께 기록할지 별도의 이름으로 따로 기록할지 아직 고민 중입니다. 사랑은 저를 공황에서 버티게 해주는 힘이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다른 무언가와 함께 표현하기엔 제게 너무나 중요한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보물을 숨기는 사람 마냥 느껴지네요. 사실은 그저 사랑에 대해 서술하며 제가 제 스스로 제 안의 사랑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깨닫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아직 제가 사랑하고 저를 지탱하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그걸 서술하기엔 많이 불안정하고 겁먹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저를 버티게 하고 저라는 존재를 유지해 준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직시하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의사 선생님께도 이야기했는데 조금 씁쓸한 웃음을 지으시더군요.
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직시하려고 합니다. 혹시 어릴 적 너무나 소중해서 제대로 갖고 놀지 못했던 장난감이 있으신가요? 저는 제법 많았습니다. 너무 갖고 싶어서, 너무 소중해서 보물 상자에 넣어놓고 가끔씩만 꺼내보던 아주 소중한 장난감들. 하지만 그 장난감들은 결국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어딘가는 녹슬어 작동하지 못하거나 기억 속에서 잊혀 존재조차 잊히는 일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저는 저를 버티게 해준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런 어린 시절 보물 상자에만 넣어뒀다 결국 휴지통에 버려진 장난감처럼 되지 않도록 제대로 직시할 것 입니다.
제가 조금만 더 안정된다면요.
현재 저는 아직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제가 매번 자기 암시처럼 금방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 몸소 깨닫고 있습니다.
최근 다녀온 정기 검진에선 오히려 약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사실 이번 정기 검진에선 의사 선생님께 장시간의 버스 이동도 무사히 다녀왔다고 자랑을 할 생각에 들떠있었습니다. 좋아진 부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병원을 다녀온 날은 연휴의 다음날이었던 6월 7일이었습니다. 때문에 병원엔 평소보다 대기인원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거의 1시간 반가량을 기다려 진료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사람이 가득 찬 대기실에서 평소처럼 메모장 앱에 그동안에 있었던 제 증상들과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사항들을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1시간 반가량의 시간은 쉽게 흐르지 않더군요. 때문에 우습게도 공황 장애 때문에 들리는 병원 대기실에서 공황을 경험할 뻔했습니다. 다행히 힘들 때쯤 진료실로 들어가 의사 선생님께 자만 대신 대기실에서 직시했던 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아직 여전히 힘든 공황 장애 환자였습니다.
3일 전에도 비상용 약을 먹었고, 오늘도 나를 몰아붙이는 호흡에 비상용 약을 찾아 꺼내들었습니다. 평소엔 가방 하나 없이 휴대폰만 들고 다니던 저는 공황 장애를 앓으며 가방 속에서 비상용 약과 물을 꼭 넣어 다니는 사람이 됐습니다. 많은 것이 바뀌진 않았을지 모르지만 사소한 삶의 변화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 사소함은 곧 큰 변화가 될지도 모릅니다. 많은 정신병 경험자들의 서적에는 병을 이기고 새로운 목표를 이뤄내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저는 병원 약에 항상 지쳐 떨어져 수마에 빠져들기 일쑤입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울 틈도 없이 제시간의 대다수를 약에 빠져 생각을 잃고 저를 잃고 있습니다.
저 역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제시간을 되찾고 저를 되찾을 수 있겠지요?
저를 지탱해 주는, 저를 유지해 주는 사랑을 계속해서 지속할 수 있겠지요? 가끔 너무 불안하고 무섭습니다. 나를 유지해 주는 사랑을 보는 것조차 약 기운에 지쳐 바라보지 못할 때 나를 잃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두렵습니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싶어요.
이건 살기 위해 나를 나로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써 내려갈 내 이야기이길, 나를 버티게 해주는 한 글자 한 글자들이 훗날 나를 지탱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늘의 일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