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3 / 공황이 다가올때
저는 현재 여행에 와 있습니다.
저번 일기에서 남겼던 저의 비포장길 도로에 피어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꽃을 보러 왔습니다. 낯선 장소에서 익숙한 일기를 남기니 평소와 다른 말투가 나오네요. 하지만 이 또한 저이니 이번엔 이런 색다른 문체로 일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이것 역시 여행에서 얻은 또 다른 저의 성장일 수 있으니깐요.
지방에 살고 있는 저는 현재 서울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했든 정돈되지 않은 저의 비포장길 도로에 피어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꽃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이 이야기는 차후 여행이 끝난 뒤 따로 정리해서 올려보려고 합니다. 아직 여행이 조금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땐 여행 속 긍정적인 감정을 바로바로 일기로 남기려고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약에 적응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의 부작용을 버티며 여행을 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간단하게 여행 속에서 겪었던 공황의 순간들을 적어보려 합니다.
저는 공황 장애를 진단받은 뒤 굉장히 규칙적인 삶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불안 요소로 인해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공황 발작을 막기 위한 제 나름대로의 방어선의 일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오니 그동안 지켜왔던 규칙들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일단 환경의 변화가 가장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행 처음에는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대로 미리 비상용 약을 복용하고 억지로 약을 이겨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처방된 대로 행동하니 낯선 환경 속에서도 공황 발작은 일어나지 않았고 낯선 환경이 주는 흥분감과 고양감에 약의 부작용도 제법 버틸만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방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황 장애는 잠시의 방심도 허락해 주지 않더군요.
문제는 여행 사흘째에 일어났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챙겨 먹고 약을 먹던 평소의 패턴이 누적된 여행의 피로로 무너졌습니다. 느즈막이 일어나 게으름을 피우며 누워있다가 아침 겸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만큼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왔습니다.
가볍게 점심을 먹으러 간 프랜차이즈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광장 공포증을 보였던 적은 없었기 때문에 저는 걱정 없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또한 그때는 약 복용이 늦어지고 있다는 경각심조차 없었습니다. 여행의 고양감에 완전히 방심해버린 거였죠.
결국 저는 사람들이 가득한 카페 한가운데에서 늦은 점심을 먹다가 공황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발작으로 까진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공황 장애를 오랫동안 투병 해오신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아, 공황이 온다."
그런 느낌이 확 든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말이었습니다. 공황 발작은 순식간에 몰아붙이는데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하고 의문을 표현했죠.
하지만 이날 저는 저 말을 경험했습니다. 정말 순간적으로 불안이 나를 휘몰아치는 느낌이 확 오더군요. 그래서 재빨리 약을 먹고 복식호흡을 취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익혔던 방법들을 시행했습니다. 그러니 다행히 금방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사람이 가득한 점심시간의 카페에서 발작을 일으킬 뻔했지만 잘 이겨냈으니 이 또한 여행의 성장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이건 성장이 아니라 자만이 가지고 온 폐해였습니다.
스스로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 생각에 매몰되어버려 정말 스스로의 힘만을 믿어버린 저의 자만이 만들어낸 좋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결국 하루의 시작부터 공황 겪어버린 그날은 컨디션을 세밀하게 체크하며 움직여야 했습니다. 즉, 행동에 제재가 걸려버리고 말았죠. 여행을 시작할 때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자만이 가지고 온 대가는 생각보다 길었고 잘 이겨내고 있다는 자신감까지 가져가더군요.
한마디로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이겨내면 됩니다.
다시 방심하지 않고 제때 약을 챙겨 먹고 공황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다시 일어날 겁니다. 아직 저는 여전히 비포장길 도로를 걷고 있습니다. 비포장길 도로에 흔하디흔한 돌멩이에 잠깐 걸렸을 뿐이라 생각하고 일어나며 됩니다.
그렇게 일어나 또다시 사랑하는 꽃을 보러갑니다.
저는 여전히 사랑으로 병을 버티고 이겨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