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똥 Oct 21. 2021

홈스테이를 일주일만에 옮겼다

내 방을 여행하는 법

떠나볼까 let me fly to my room, 시선을 낮추고 어디든 막 zoom



  어릴 때 한국에만 살았던 나에게는 한 가지 로망이 있었다. 외국에서 정원 딸린 2층 집에 살아보는 것! 운명적으로 나는 그런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아르노 거리에 있던 나의 첫번째 홈스테이 집, 정원과 뒷마당이 딸린 2층집이었다.

     

  앙제 쌍 로 역에 도착한 밤, 홈스테이 아저씨가 마중을 나와 차로 내 짐을 싣고 홈스테이 집으로 향했고, 집을 본 나는 감탄을 했다. ‘여기가 내가 살게 될 집이구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정원을 지나, 정문을 지나, 차고 쪽으로 향했다.


  아저씨는 차고 문을 열더니 차고 위 다락방을 가리키며 거기가 내 방이라고 했다. 사진에 보이는 맨 오른쪽 창문이 내 방이었다. 그날 밤,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난방이 안 되는 프랑스 집은 꽤 추워, 나는 덜덜 떨며 잠이 들었다. 스무 살의 나는 용기가 없었다. 괜히 프랑스에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하나는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 방은 집의 본체 옆, 옆 차고의 위에 있었기 때문에 와이파이 신호가 닿지 않았고, 와이파이를 쓰려면 방을 나가 집 본체 쪽으로 핸드폰을 뻗어야 했다. 통신사에서 유심칩을 구입하기 전이었던 터라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두 번째 문제는, 내가 본체로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차고에서 본체로 향하는 문은 집의 부엌으로 이어졌는데, 그 문은 잠겨있었다. 저녁 식사를 할 때 물어보니 도둑이 들 수 있어 그 문을 잠가놓는다고 했다. 왜 나에게 열쇠를 주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방 옆에는 간단한 조리기구와 냉장고 등이 있었고 화장실도 있었다. 즉 난 그 집에 사는 게 아니라 내 방에 사는 것이었다.     


  어느 날 불문과 선배의 홈스테이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선배 말로는 그 집에 오기로 했던 학생이 못 오게 돼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1층, 2층을 지나 3층에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난 방과 사랑에 빠졌다. 그 방은 집에서 가장 큰 방으로, 원래는 할머니의 딸 두 명이 함께 쓰던 방이었다. 방에는 큰 창문이 있었고, 퀸사이즈의 침대, 옷장, 서랍, 책상 두 개, 테이블 한 개가 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방 안에 샤워부스와 세면대가 있었던 점이었다.     


  나는 그날 바로 집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살던 집 가족에게 이야기를 하고(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없었다) 6개월을 지낼 두 번째 홈스테이로 가게 되었다.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두 번째 홈스테이 집에서 나는 집 안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1층에는 거실과 다이닝룸, 부엌, 그리고 작은 정원이 있었다. 거실에서 가끔 TV를 봤고, 다이닝룸의 큰 테이블에서 숙제를 하고는 했다. 작은 정원에는 꽃이 있었는데 아주머니는 가끔 꽃을 잘라 테이블 위에 두고는 했다. 부엌에서는 자유롭게 요리를 하고 먹을 수 있었다. 냉장고는 각자 칸을 정해 사용했다.     


  집에 네 명이 살고 있는데 공용 화장실은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 방에는 샤워 부스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 걱정 없이 내 방에서 샤워를 했다. 한 가지 안 좋은 점은 샤워를 오래 하면 밑에 층 화장실로 물이 새기 때문에 샴푸까지만 할 수 있었고 린스는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물은 석회수라 프랑스 생활이 끝날 때 즈음에는 머릿결이 꽤나 뻣뻣해졌다.     


침대에서 바라 본 내 방의 모습, 왼쪽에 샤워 부스 그 오른쪽에 세면대가 보인다.


  내 방은 나무로 된 방으로, 곳곳에 파란 포인트가 있었다. 파란 전구, 파란 그림, 파란 세면대. 나는 내 방을 ‘파란 방’이라고 불렀다. 앙제의 특산물이 ‘파란 초콜릿’이었기 때문에 나는 내 파란 방에서 파란 초콜릿을 먹으며 킬킬댔던 기억이 있다.


  책상이 두 개라는 것도 좋은 점이었다. 나는 하우스메이트들과 주로 다이닝룸의 큰 테이블에서 숙제를 했지만, 가끔 내 기분에 따라 내 방에서 이 책상, 저 책상을 오가면서 공부할 수 있었다.     

 

 이 아름다운 파란 방 맞은편에 있는 마들렌 성당에서는 매일 저녁 일곱 시가 되면 종소리가 울렸다. 딩-딩-딩- 종은 항상 같은 시간에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울렸고, 그야말로 유럽에 살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앙제의 아름다운 시내, 강, 성 모든 것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내 방이었기 때문에, 아름답고 편안한 방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파란 방에서 오독오독 씹어먹던 파란 초콜릿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