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똥 Oct 22. 2021

노엘(크리스마스)의 의미

아야! feve다! 내가 왕이에요!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이다. 젊은 세대는 성당을 다니지 않고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집에 성경 한 권쯤은 끼고 읽는(?) 그런 나라이다. 나는 미국에서도 크리스마스를 겪었는데, 미국에서 종교적 색채를 지우기 위해 크리스마스를 주로 Holiday라고 부른다는 것을 듣고 꽤 충격을 받았다.(미국에서는 Merry Christmas 대신 Happy Holiday, Christmas season 대신 Holiday season 등으로 부른다)     


  홈스테이 아주머니는 주일마다 성당에 가고 집에서 종종 기도 모임을 갖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므로 나는 다행히(?) 성스러운 노엘(크리스마스)을 보낼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시작은 creche(크헤슈, 성탄절 예수 탄생 장식)였다. 아주머니는 예수님의 탄생 장면을 미니어처로 꾸며 거실 피아노 위에 장식해 놓았다. 마구간 구유에 놓인 아기 예수, 별을 따라 찾아온 동방박사들로 이루어진 creche는 노엘 그 자체였다. 아주머니는 장식품을 어디서 샀는지를 전부 기억하고 설명해주셨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소소하게 해놓았던 다이닝룸, 뒷편의 문을 열고 나가면 작은 정원이 나온다.


  도시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들이 건물 사이를, 건물 위를 뒤덮고 크리스마스 마켓이 시작됐다. 할리멍 광장에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섰다. Vin chaud(방쇼, 따뜻한 와인), 프레첼, 치즈, 크레페 등과 같은 음식을 팔기도 했고, 스노볼 같은 예쁜 쓰레기(예쁘지만 쓸모는 크게 없는 장식품)도 많이 있었다.


  그 후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굳이 찾지 않아도 산타는 계속 눈에 띄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 사탕을 나눠주고는 했는데 좋아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자지러지게 울어버리는 아이도 있었다.


  

시내를 돌아다니던 산타 할아버지와 마주친 아이가 무서워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방학이 시작하자 나는 한국에서 온 친구와 여행을 떠났다.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는 스트라스부르인데 우리는 스트라스부르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규모에서부터 앙제와는 비교되지 않게 컸고, 가판대마저도 더 예뻤다. 시내의 모든 건물은 제발 나를 한번 봐달라는 듯 화려한 조명 장식에 덮여 빛나고 있었다. 빛나는 건물과 엄청나게 큰 크리스마스트리, 대규모 creche까지 스트라스부르 전체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동화 속을 걷는 것 같았던 스트라스부르의 노엘, 아름다웠던 건물


  호텔로 돌아와서는 친구와 함께 Buche de noel(뷔쉬드노엘)을 먹었다. 통나무 장작 모양의 케이크인데 크리스마스에 먹는 케이크로 유명하다. 알자스 지방 특산물인 화이트 와인과 함께 먹으니 기가 막혔다. 크리스마스에 먹는 유명한 음식으로 푸아그라도 있는데, 특유의 비릿한 맛과 식감 때문에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방학은 1월 6일 공현절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나는 친구와 이탈리아 로마 여행을 하며 새해를 보냈다. 공현절은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후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받은 날인데, 프랑스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1월 내내 빵집에서 Gallettes des rois(걀렛데후아)를 팔았다.     


  걀렛데후아는 고소한 크림이 들어간 환상적인 맛도 유명하지만, 안에 들어있는 작은 도자기 인형인 feve(페브)로 유명했다. feve가 들어간 조각을 먹은 사람이 왕이 되어 하루 동안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걀렛데후아는 1월 내내 팔기 때문에 나는 홈스테이 가족, 친구들과 여러 번 사 먹을 수 있었고 세 번 정도 왕이 되었다.


물고기 모양 feve! 여러 feve 중 가장 예뻤다.


  프랑스에서 보낸 노엘은 내가 살면서 겪은 크리스마스 중 가장 종교적이고, 길고, 화려한 크리스마스로 기억된다. 비록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상점들이 문을 열지 않지만, 유럽 여행 중 크리스마스를 보낼 계획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프랑스를 추천한다!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마켓, 방쇼를 마시고 취했었다.


호텔에서 먹었던 뷔쉬드노엘과 화이트 와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