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날 헷갈리게 한 점들
너 키가 몇이야?
미국에 살 때 끝까지 적응이 안 되었던 것은 바로 미터법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상 캐스터는 화씨로 기온을 알려주었고, 내비게이션은 마일로 거리를 알려주었다. 같은 미터법을 쓰는 프랑스는 편했지만, 미터법을 쓰는 방식이 미묘하게 우리와 달랐다.
“너 키가 몇이야?”라고 한국인이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나? 백육십삼.’이라고 답할 것이다. 프랑스라면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나? 일 미터 육십삼(1 metre soixant trois).’ 프랑스에서는 100cm가 아니라 1m라고 말하는 것이다. 음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보통 500ml(밀리리터) 생수 한 병이라고 얘기하지만, 프랑스에서는 50cl(센티리터)라고 한다.
키를 잴 때 미터법을 쓴다고 발길이도 미터법을 쓸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내 발은 245mm이지만 프랑스에서는 ‘38’이라는 알 수 없는 단위의 신발을 신었다. 근데 이 36, 38, 40으로 이어지는 사이즈는 상의, 하의를 살 때 쓰이는 이른바 S/M/L 같은 느낌의 개념이었는데, 왜 발 사이즈 같은 중요한 것을 mm가 단위를 쓰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미터법이 아니어도 헷갈리는 단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가장 헷갈렸던 것은 시간이다. 프랑스에서는 오후 3시, 오후 5시라고 얘기하지 않고 15시, 17시라고 이야기한다. 간단한 것 같지만, 15시가 자꾸 5시인 것 같고 17시가 7시로 보이는 기적이 일어나 매우 헷갈렸다. 나는 이 이유로 시험 시간을 착각해 못 치른 적이 있다. 참고로 프랑스 통신사를 쓰면 시간 설정이 자동으로 이렇게 바뀐다.
프랑스에서는 소수점을 온점이 아닌 반점(쉼표)으로 찍는다. 예를 들어, 4.5를 4,5로 300,00는 30000이 아니라 300인 것이다. 우리가 주로 천 단위에 쉼표를 찍는 것과는 다르게 프랑스에서는 천 단위는 띄어쓰기를 하고 소수점에 쉼표를 하는 것이다. 모든 가게에서 수 없이 많은 가격표를 봤지만, 쉼표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조금씩 배우면서 알게 된 것은 각 나라마다 문장부호를 사용하는 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느낌표나 물음표를 쓸 때, 마지막 글자에서 한 칸 띄어서 써야 한다. T’as faim ? (O) T’as faim? (X) 우리는 인용을 할 때 따옴표를 쓰지만 프랑스에서는 괄호를 쓴다 : <<이렇게 말이다.>>
단위와는 상관없지만, 프랑스는 여권도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프랑스 친구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 여권에는 신장과 눈동자의 색깔이 적혀있다고 한다. 내 친구는 눈동자가 갈색+초록색이기 때문에 두 가지 색을 다 적어놓았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색이 다양하지 않아서 눈동자 색을 기입하는 것은 효용성이 없겠지만, 신장을 적는 것은 꽤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에 갔을 때 언어, 사람들의 생김새, 건축물과 같은 것들도 별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지만, 사소하지만 한국과는 다른 것들이 타국에 온 것을 실감하게 했다. 소인국에 도착한 걸리버의 막막한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