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를 건너며 18화

굿모닝 샌디에이고

by 무똥

※ 알림: 이 글은 허구이며, 등장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여자친구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거절해야 했을까? 곱씹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즉흥적으로 크리스마스에 샌프란시스코에 가기로 계획했다. 브라이언이 나온 대학교가 샌프란시스코 근처여서 그는 자주 방문했다고 했고, 나에겐 처음이 될 여행이었다. 크리스마스까지는 3주가 남아있어서 블랙 프라이데이부터 시작된 세일이 홀리데이가 될 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홀리데이라길래 ‘어떤 홀리데이를 말하는 거야?’라는 의문이 생겼는데 크리스마스를 종교적 색채를 빼고 부르기 위해 홀리데이라고 퉁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브라이언은 우리가 이별해 함께 보내지 못했던 추수감사절을 보상하고 싶다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라고 했다. 나는 향수가 갖고 싶다고 은근슬쩍 눈치를 줬지만 브라이언이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향기로 많은 것을 기억하는 나에게 브라이언을 오래 기억하게 만들어 줄 물건이 향수라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했다.

크리스마스 방학은 일주일이었으므로 그 기간 동안 잠시 본국에 다녀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이 앤워였다. 우리는 키스 사건 이후로 한동안을 어색하게 지내다 이제야 막 다시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도 눈이 와?” 내가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북부에 가끔 오긴 하는데 흔한 일은 아니야.” 앤워가 웃으며 대답했다.

“거기서도 크리스마스를 축하해?”

“예수의 탄생일로서 축하하는 건 아니고 그냥 기념일로 이것저것 세일을 많이 해. 쇼핑 행사 기간 같은 상업적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지.”

“우와, 그렇구나! 생각해 보면 한국도 종교적 색채가 강한 나라는 아닌데 그냥 분위기만 내는 것 같기도 해.” 곰곰이 생각하다 내가 대답했다.


“넌 항상 사우디에 대해서만 묻네?”

“응?” 나는 당황했다.

“앤워라는 사람한테 궁금한 것보다 늘 사우디 이야기만 물어보잖아.” 상처받은 기색 없이 무심하게 말하는 앤워의 표정이 더 무서웠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람을 볼 때 항상 그의 출신지에 관심을 가지는 버릇이 있었다. 브라이언을 볼 때도 그 사람 자체보다는 원주민, 멕시코 혼혈이라는 모습으로 그를 생각하게 될 때가 종종 있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 어느새 수업이 끝날 시간이 다 되었고 나는 찝찝한 기분으로 어학원을 나섰다.


이후에 브라이언과 저녁을 먹었다. 가스램프쿼터에 있는 미국식 중국집이었는데 미국식 중국요리가 한국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미국에 살면서 겨우 알게 되었다. 내가 늘 먹는 메뉴는 에그푸영으로 오므라이스 같은 음식이었는데 계란 부침이 한국 오므라이스보다 훨씬 두툼했고 맛있는 그레이비소스를 끼얹어 먹는 것이 특징이었다. 미국 식당에서 요리를 주문하면 1인분이 한국의 2인분에 맞먹는 양이어서 나는 늘 남은 음식을 포장해 왔고 다음날 점심으로 먹고는 했다. 전날 맛있게 먹었던 음식과 즐거운 식사 시간을 한 번 더 되새길 수 있어서 나는 이 의식을 매우 소중하고 신성하게 여겼다.


“샌프란시스코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요.” 브라이언이 오물오물 음식을 씹으며 말했다.

“뭐라고요? 버스 안에서 즐거운 휴가를 다 버릴 셈이에요?” 나는 조금 화가 나 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어떡해요. 난 돈을 아껴야 한다고요. 이별할 때 내 아들의 엄마가 모든 물건이며 돈을 다 가져갔고 나는 이제 혼자 벌어 애를 키워야 해요. 빚더미에 앉았다고요.”

“그래도 그렇지 샌디에이고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어떻게 버스로 가요? 저가 항공을 타면 항공료는 별로 안 나올 거예요.” 내가 애원하듯 말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인데 항공료가 싸겠어요?” 브라이언은 한숨을 쉬며 반문했다.


즐거워야 할 크리스마스 계획이 가벼운 말다툼으로 번지고 우리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식사를 마무리했다. 나와의 첫 여행을 자기의 딱한 사정으로만 치환해 생각하는 브라이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연인이 된 뒤에도 우리는 합의점을 찾는 데에는 영 서툴렀다. 역시나 남은 음식을 포장하고 식당 밖으로 나가는데 브라이언과 나는 둘 다 멈칫했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지난주에는 공지도 없이 연재를 쉬게 되어 죄송합니다.

일이 바빠져 시간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최대한 성실하게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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