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버튼은 왜 저기에 있을까- 를 게임하다가 생각해 봄
조작의 편의성이나 규칙을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장치들은 그 본질적 재미를 부가시켜주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런 요인들은 주로 매니악한 게임보다는 캐주얼한 게임에서 더 드러났었는데, 최근에는 장르와 무관하게 입문자를 위한 친절한 요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로 느껴진다. 다만 게임의 '고인 물'들과 신규유저 모두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게임의 본질적 재미와 정체성을 헤치지 않는 수준에서 편의성과 온보딩을 제공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만 30년 동안 게임을 해왔는데, 여러 문화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작품'으로 게임을 인식했었지만, 완결성/편의성 등의 개념까지 생각한 'IT제품'으로는 최근에서야 바라보게 된 것 같다. 최근 즐긴 게임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UI/UX를 몇 개 적어본다.
[데이브 더 다이버]는 낮에는 바닷속에서 물고기를 잡고, 저녁에는 잡은 재료로 초밥집을 운영하는 게임이다. 23년 출시되어 굉장히 호평을 받았던 국산게임으로, 게임 자체로도 매우 즐겁지만 플레이하면서 기억에 남는 UI/UX는 상품 정렬 기능이었다.
[데이브 더 다이버]에서 초밥집을 경영할 때, 그날그날 판매할 메뉴를 선정해야 한다. 다만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재료에 비해 메뉴판에 올려놓을 수 있는 메뉴 가짓수는 매우 한정적이다. 또한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때로는 초밥집 매출에 집중해야 하고, 때로는 맛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오늘 어떤 메뉴를 선보여야 할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게임 속 UI는 이를 정렬 기능으로 아주 쉽게 해결해 준다. 사용자가 원하는 기준대로 현재 가능한 메뉴를 정렬할 수 있고, 그 정렬 항목들은 사용자의 입맛에 아주 적절하게 맞아떨어진다.
별거 아닌 듯 하지만 이런 요소들이 게임을 즐기는 전체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해 본다면, 플레이어는 불필요한 클릭을 덜 할 수 있어서 피로도가 감소할 것이고, 매번 내 상황에 맞는 최적의 선택을 했다는 만족감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로 측정해 보면 플레이어의 게임미션 성공률이 조금씩은 개선되지 않았을까. [데이브 더 다이버]는 이 외에도 게임성과 친절함, 유머까지 겸비한 아주 좋은 게임이지만, 이런 사소한 점까지 플레이어를 고려했다는 점에서 더 기억에 남는다.
튜토리얼은 게이머 입장에서 계륵이다. 게임을 오래 해봤으니 어지간한 장르의 조작법이나, 규칙들은 다 알고 있는데. 하지만 이번 새로 하는 게임에서는 또 어떤 시스템들이 적용되어 있는지 몰라, 쉽게 넘어갔다간 뭔가 놓치고 플레이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는 제작사 입장에서도 동일한 고민일 텐데, 따라서 튜토리얼 과정을 단순히 "A를 누르면 공격하고, B를 누르면 점프합니다"와 같은 설명시간이 아니라, 스토리에 녹여내어 초반 몰입감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23년 출시된 국산게임 [산나비]는 좋은 예시를 보여준다. 횡스크롤 액션게임이라 그저 점프하고, 적을 공격하는 것이 게임의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게이머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몇 가지 소소한 규칙들을 주인공의 과거 회상 장면으로 구현했다.
주인공이 어린 딸과 놀아주는 과정에서 장애물을 점프하여 진행해야 하는데. '앞으로 게임 내에서 빨갛게 표시된 부분은 피해서 가야 한다'라는 게임 내 규칙설명을, 어린아이들이 밖에서 놀 때 "거기 빨간 곳은 용암이야! 밟으면 안 돼!!"라며 자기네들끼리 정해놓는 놀이로 표현했다.
점프하고, 공격하면 되는 게임에서 저렇게 빨갛게 표시된 부분은 당연히 피해 가야 한다는 것을 게이머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나비]같이 격렬한 액션게임은 조작이 손에 익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와중에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게임을 가볍게 즐기는 사람에게 MOD라는 말은 생소할 수도 있겠다. modification의 줄임말로, 기존 게임요소를 변형시킨 일종의 서드파티 프로그램이라 보면 된다. MOD를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모더'들의 커뮤니티도 있는 만큼, 해외에선 꽤나 큰 규모의 세계이다.
그 확장성에 따라서 아예 기존 게임의 색깔을 바꿔버리는 경우도 있고, 작게는 유저의 편의성을 위해 UI/UX화면을 바꾸거나 지루한 부분은 스킵할 수 있게 해주는 경우도 있다. 비슷한 개념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온라인 RPG게임의 '애드온' 같은 개념이 있겠다.
게임은 너무나도 재미있고 작품성 있지만, 장시간 플레이하기에 불편한 점들이 많아 답답한 경우들이 있다. 300시간 이상 즐길 수 있는 SSS급 게임들은 더더욱 그러한 불편함이 크게 다가오는데, UI개선 MOD의 덕을 본 경험이 제법 많이 있다. 지금 떠오르는 건 2011년 출시했지만 끝없는 MOD의 개발로 지금까지도 즐겨지고 있는 [엘더스크롤 5 - 스카이림]의 UI 개선 MOD인데, 게임은 너무나도 훌륭했지만 내가 갖고 있는 아이템을 한눈에 확인할 수 없다는 아주 사소한 불편함이 플레이 내내 뒤따라왔었다. 하지만 UI개선 MOD설치 한방으로 해결. 제작사가 고려하지 못한 불편함을 유저가 직접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른 IT제품과 게임의 큰 차이점인 듯하다.
그래서 90년대를 생각해 보면 당시의 게임들은 엄청난 버그를 갖고 있었음에도 게이머들은 엔딩을 봤고, 그 게임들은 현재 고전으로 불려지고 있지만. 전반적인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재미는 기본이고, 하드웨어 최적화, UI 등 완성도 또한 만 족 한만 한 수준이어야 좋은 평가를 받는 시대가 된 것 같다. 게임 만드는 사람들에게 경외심과 애잔함이 느껴지는 한편, 게이머 입장에선 이러한 시대가 된 것이 즐겁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