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스산해지지 않도록

2021년의 글입니다.

by 그별
살아가는 동안 마음이 확 이끌리는 결정을 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매 순간 작은 선택들을 하고, 때로는 굵직한 결정을 하기도 한다. 선택의 경중을 대강 가늠해 볼 수는 있지만 모두에게 같지는 않다. 어떤 이에게는 크게 신중하거나 고민 없이 할 수 있는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고심하고 여러 가지를 따져 선택할 문제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게 고르고 고민하여 결정하는 문제에 관해 꽤나 수월한 과정을 밟아가기도 한다. 거기에는 약간의 운도 따라줘야 하고 여러 우연이 만나 필연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어온 지 2년이 다 되어 간다. 서로 이끌리는 힘을 막아낼 틈도 없이, 그리고 빈틈없이 서로를 향한 마음을 간직하며 지내왔다. 현실적인 문제들, 육신의 고통, 가족의 아픔, 상실 등이 그간 있어왔지만 정신적 공허와 정처 없는 마음, 괴로움 등을 함께 나누고 달래주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어떤 과정 중에도 언제나 도움이 돼주려고 애썼다. 그렇게 항상 함께 해왔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 없지만 함께 지나온 세월과 시간에 은연중에 당연스레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이 생겨 되려 힘들 때도 있었다. 상대방이 나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싫다고 항상 생각하며 살아왔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과오를 스스로가 저지르기도 했다. 있는 그대로의 존중과 용납이란 것을 실제로 살아내는 사람은 성인군자가 아닌가? 이 정도면 관용의 정신을 가지고 사는 거지라고 자부할 수 없게끔 불쑥 나타나는 옹졸한 나 자신에 놀랄 따름이다.




모든 존재는 각자의 특성과 고유함을 지니고 있어 무언가를 끌어당길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비슷한 결을 가진 것들끼리의 끌어당김이 가장 강력하고 때로는 상호보완적인 역동 때문에 끌어당겨지거나 끌려가기도 한다. 어쩌다가 내 주변에 조성된 환경들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요인이 바로 그런 끌어당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역으로 밀어내는 역동성을 지니기도 해서 꽤나 가까이에 자리한 여러 가지 변수와 사람들이 있어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 같은 퍼스널 브랜딩이 중요한 시대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선한 영향력'이란 워딩을 매일 같이 읊조리고, 그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열망했던 시기가 있었다. '선하다'는 것의 정의는 사람마다 디테일하게는 다르겠지만 러프하게는 대체로 비슷한 범주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선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에 대해서도 선한 방향이어야 할 것이며, 자기 자신이 누군가의 인생에 함부로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검증 또한 철저하게 또 쉼 없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말처럼 쉬운 일일까?

그러한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인생을 사는 사람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선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인생을 크게 놓고 보았을 때는 그런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말 한마디 중요하고 힘이 있겠지만 말로써 살아지는 인생도 아니기에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말 뿐인 선함은 힘이 없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기에 이제 더 이상 그런 말을 자주 읊조리지는 않는다. 그러한 체하지 않아도 선한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마음씨가 묻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단숨에 판단하려고 하진 않지만 내 마음과 직관으로 그렇게 사람을 읽어내고 또 자연스레 느껴지는 것들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을 좇으며 살아가다 보니 잊고 지낸 것들 중에 나 자신이 있었다. 내가 좇고 있는 이상과 꿈, 가치보다 어쩌면 후 순위에 머물러있던 자아를 발견하게 되면서부터 인생의 물음표가 더 많아졌다. 그렇다고 여태 쫓아왔던 목표들을 쟁취하는데 쓰던 에너지를 꺼뜨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혼란스러웠지만 그동안 소외됐던 나 자신을 돌보는데 에너지를 조금 나누어 쓰고, 지속적으로 꿈을 좇고 목표지향적이고 체계적인 삶의 모양새를 지니려고 노력했다. 많이 늦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전히 나를 쫓기게 만드는 것들이 있어 그럴 때마다 힘들었다. 지금도 가끔씩은 숨이 가쁘고 머리가 아득해진다. 절대 손에 닿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자꾸 주변을 맴돌아 마음이 힘들다. 내 힘으로 안되면 누군가의 도움이라도 더해지면 좋을 텐데 라는 아쉬움에 더 좌절감이 생긴다. 다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냥 내려놓으면 편할 텐데. 이상을 꿈꾸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현실적으로 채워갈수록 재미가 없다. 노잼 인생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현실감각을 버리려고 하면 또 불안한 미래가 엄습해 오는 것 같아 두렵다. 뭐냐 이도 저도 아닌 것이? 그래 잊고 있었다 원체 겁이 많은 나를.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는 일이 잦지만, 나는 작은 사람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라서 두렵다. 그런데, 한 치 앞도 모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할당량만 하면 나머지는 맡겨야 된다. 두려워할 필요 없이. 두려움을 잊거나 내려놓거나 버리거나 아무튼간에 이건 끝이 없다.



매일 아침에 고정된 시간까지 고정된 장소에 나타나는 것이 언제나 힘들었던 내가 이제 더 이상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10년 가까이 고정적인 삶의 양태를 지니고 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나왔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툭하면 부모님의 데려다 줌, 데리러 옴 등을 당했던(?) 나. 그리고 갓 스무 살이 되어 재수를 하던 시절에도 비슷하게 마찬가지였고 (아침마다 늦잠을 자고 알람시계가 끊임없이 울려댔으며 학사를 감독하던 사감언니가 문을 두드리며 매일 깨워줘도 제대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대학생활 역시 특히 아침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참으로 고된 일이었다. 그런 내가 대부분의 아침을 활기차고 기분 좋게 맞이하고 있다니 이건 나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함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과거 생활을 생각하면 믿어지지 않는 지금의 삶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나 신기하기도 하다. 신기한 인생.



백멜란지 색상의 기모 후드 맨투맨과 궁둥이와 허벅지가 두툼해 보이는 조거팬츠를 겨우내 입고 다녔다. 따뜻하고 편하고 겨울에는 이게 최고다 생각했다. 인스타에 시크하게 집게핀을 꼽고 골드, 실버 이어링과 볼드한 목걸이를 찬 외쿡 언니들도 그런 패션을 한창 즐기는 요즘이라 그런지 더 좋아하는 착장이었다. 한참 동안 입다가 봄기운이 생동하는 척하는 2~3월 그 착장에 한 번도 손대지 않았다. 기흉으로 병원 신세 졌던 1월 입원하러 가는 길(이별하러 가는 길 아니고요) 퇴원하는 길 주야장천 입었더니 약간 정뚝떨 돼가지고. 고이 세탁해서 접어둔 그 착장을, 4월 초 벚꽃이 다 떨어지고 낮에는 후끈하기까지 하지만 아침과 저녁 바람이 여전히 사늘한 지금 다시 입어보았다. 올해 만난 열 살배기 아가들이 만날 때마다 얼평, 몸평을 신나게 하는데 (관심 표현이라 나쁘게 생각 안 한다.) 오늘의 착장 또한 좋아해 주었다. 뭐가 그렇게 예뻐 보인다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말이다. 코시국에 원하는 방향의 공동체 경영이 어렵고, 아이들에게 쏟는 에너지보다 배로 다른 부차적인 것들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해서 평소에 누리던 만큼의 기쁨이나 보람이 부족했다고 판단되어 올해는 과감하게 교담을 희망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3월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이제 옷장 정리도 또 해야 하고, 몇 개월 후에는 이사 갈 준비도 해야 한다. 현실적인 것들의 무게감에 치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항상 잘 궁리하면서 또 현실을 잘 대비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


이천이십일년 서울에서, 그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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