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이제 만으로 열두 살이 된 그녀들의 관심사를 소개한다.
새빨갛게 입술을 물들이는 '틴트'
하얗게 얼굴을 보정하는 각종 '크림'
조금이라도 눈매를 또렷하게 보이기 위한 '아이라이너'
꾸미고 싶어 하는 그녀들의 욕망을 알고 이해하지만 여러 이유로 무한정 허락해줄 수는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피부가 빨리 상할 수 있다.'
'맨 얼굴 자체로 예쁘니까 진하게 하면 오히려 못생겨 보인다.' 등의 말들로 그녀들의 욕망을 자제시켜왔다.
자제시키기 위한 형식적인 논리는 아니다. 말 그대로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도 하고 싶어 하니 크림을 바르고 틴트로 입술을 물들이는 것 까지는 허용을 해주었다.
(내가 교실에서 허용하지 않았다면 다른 곳에서 분명히 한다.)
매일 거울 앞에 모여 치장을 하는 그녀들.
어느 날 주말에 영등포 지하상가에 몰려서 놀러 갔다 왔다는 이야길 하길래 재밌었겠다고 내 유년시절의 추억도 회상하며 잘했다고 그렇게 몰려서 지하상가도 가줘야 된다며 까르르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런데 이번 주 학부모 상담기간에 어느 학부모님께서 아이가 주말에 얼굴 마주 보는 것을 자꾸 피하길래 봤더니 '아이라인'을 그리고 왔다면서, 자제시켜줄 것을 요청하셨다.
학생의 욕망을 자제시켜야만 하는 것일까? 하지 말라고 안 할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강압적으로 하지 말라는 건 또 아닌 것 같고, 또 고민이 시작되었다.
중학교 때 교칙 중에 두발제한이 정책이 있었다. 머리를 길게 길게 기르고 싶었던 나는 그게 정말 불만이었다. 왜 내 머리 기르는 것이 학교 교칙에 의해서 제한받아야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머리를 기르는 것과 학생의 본분인 공부(이것도 라떼 시절 말이지만)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교칙에서 말하는 길이보다 조금 길게 기르고 구불구불한 펌을 한 후에 검사할 때 목을 꼿꼿이 세우고 똑딱이 핀으로 머리끝을 집어 머릿속에 고정시켜놓고는 아닌 척~ 하고 앉아있다가 학생주임 선생님과 모두에게 웃음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던 나였지만 또 학급의 반장이기도 했기에 따로 불려 가서 한소리 듣긴 했던 거 같다. 누군가의 모범이 되는 일이란 이렇게 힘든 일이란 걸 진작부터 알았다면 직업선택을 잘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교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틀을 깰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틀을 깨고 싶어 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던 적이 많았다.
각종 화장품을 사들여놓고 파우치를 채워놓고는 정말 '쳐 발 쳐 발' 요상한 화장을 선보였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분명, 나의 선생님이, 나의 엄마가 '하지 말라'라고 했었다.
아무 관심도 없는 것보다야 낫았겠지만 하지 말라고 안 하지는 않더라. 좀 덜 하긴 했지만
부모님은 자식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거나 맘에 안 드는 행동은 보통 하지 말라고 말린다. 자식이니까. 내 자식이니까 그러는 거다.
'아빠가, 엄마가 널 많이 사랑해. 너도 알고 있지 그러니까 부모님이 원하지 않는 행동은 안 하는 게 맞는 거야.'
다른 이들은 이 논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미성년자는 보호자의 보호와 감찰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외모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꾸미고 싶어 하는 그 욕망은 존중받아야 한다. 교육자로서 그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현명한 조언이 무엇일까?
또 고민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려고 말이다.
그리고 그녀들을 불러 모았다. 불려 오는 것 자체에 두려움이 생길까 봐 언니처럼 구슬리며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 거라며 편하게 앉혀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늘 나를 신뢰하는 그녀들은 아이라인을 누가 누구에게 그려줬는지부터 순순히 이야기했다. 주말에 있었던 일에 대해 언급을 하니 놀란 거 같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나의 고민에 대해 솔직하게 풀어놓으며 그녀들을 구워삶았다(?)
화장을 꼭 하고 싶으면 티 안 나게 하는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거라며 언젠가 아이라인 그리는 것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더니 좋아하더라. 그리고 진심을 담아 너희가 우리 반 학생이라 이쁘지도 않은데 이쁘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 지금 모습 자체만으로도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다고 했다. 꾸미고 싶은 마음은 너무 잘 알겠으니까 최소한으로 하되 아이라인 그리고 마스카라 하는 그런 수준까지 정말 하고 싶으면 '학교에서는 하지 말고' 밖에서 하고 다니거든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지우고 들어가라' 고 했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시니 어쩔 수 없는 처사라 생각했다.
그녀들에게 적절한 답변이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내가 하는 일이 원래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룰 때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욕망이 한 어른에게서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으로써 만족을 얻고 화장의 경중(?)을 판단하고 꾸밀 줄 아는 예쁘고 밝은 아이들로 자라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2015년 새빛 3기 아이들과 함께하던 가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