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도 나는, 자주 잊어버리고 가끔 깨달았다.

여행 알못의 어쩌다 첫 유럽 여행기_ Prologue

by 금요일
내가 유럽에 가게 되다니, 내가에펠탑을 보게 되다니!

상상도 해본 적 없고, 꿈꿔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나 여행 중인 사람들의 소식을 접할 때에도 부럽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 여행을 다녀오기 전까지는. 감히 엄두가 안 났다기보다는 해외여행 자체에 대한 욕구가 거의 없었다. 이유를 찾자면, 어느 순간 20대, 특히 대학생에게 있어 '해외여행'이라는 것이 마치 한국 사회에서의 '취직'이나, '결혼'쯤 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마치 '퀘스트'와 같은 느낌이었달까.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새로운 장소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어떤 엄청난 힐링과 깨달음을 얻고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으레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한 번쯤 달성해야 하는 '퀘스트'. 생각이 거기까지 닿고 보니, 나에게 있어 '해외여행'이라는 것의 매력이 반의 반의 반으로 떨어졌던 것 같다. 아, 물론 그렇다고 '여행' 자체를 좋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좋아했다. 걷는 것도 좋아하고, 귀에 꽂은 이어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BGM 삼아 여기저기 쏘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했기에 국내 여행은 종종 떠나곤 했었다. 또, 서울에서 지낼 때에는 시간이 부족할 때가 아니면 최대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보다 걷는 것을 선호했고, 다리나 공원 같은 곳들을 혼자 걸으며 바람 쐬는 것을 즐기곤 했다.


남해 - 담양 - 광주 - 전주 - 대구여행 때 갔던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행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내가 첫 배낭여행지로 '유럽'을 선택하게 된 건, 거기에 어떤 호기심이나 갈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10년 지기 친구들과 더 늦기 전에 다 같이 여행할 곳을 찾다가 서로 일정과 의견을 조율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을 뿐. 그런데, 시작은 분명 평범한 감정이었지만 여행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부터는 뭔가 달라졌다. 한국이 아닌 아예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어딘가 신기한 면이 있다. 여행을 준비하는 것 만으로, 몰랐던 것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계획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이륙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붕 뜬 기분은 2016년 1월 13일, 인천 국제공항에서 정점을 찍었다. 선물상자를 열어 보기 직전과도 같이, 여행을 시작하기 직전의 그 순간이 가장 설레었고 가장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부터 끝을 두려워하는 스스로를 발견했을 때, 노파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행이 시작됨과 동시에 기도했다. 부디 이 여행이 끝났을 때, 지난 날의 향수에 사로잡혀 현실의 평범한 삶을 잘 살아내지 못하는 내가 아니라, 오히려 그 평범한 삶 자체를 사랑하고 더욱 잘 살아낼 수 있는 내가 되어 있기를.


맙소사, 내가, 정말, 떠난다니! 이게 실화인가요?


그렇게 떠나게 된 첫 번째 배낭여행에서 나는 많은 체험을 하지는 못했다. 적은 예산으로 5주를 버텨야 했기 때문에 무언가 돈을 주고 관람을 하기보다는, 그저 걷고 그러면서 보고 그 공기를 음미하는 것으로 내 시간들을 채워 나갔다. 그토록 오랜 기간 사람과 대화를 하지 못한 것도, 그토록 불안한 주머니 사정으로 살아내는 것도 처음이었기에 몸도 마음도 상당 부분 지치고 외로웠던 것은 사실이다. 배부른 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숨을 쉬는 빈도가 늘어갔고, 한국이 그리웠다. 하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아쉬움도 없다. 풍요로운 여행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돈을 아끼기 위해 돌아가는 길에서 결코 잊지 못할 경험들을 하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더 어리고 팔팔할(?) 때 이렇게 배고픈 여행을 하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폭풍과도 같았던 여행은 끝이 났고, 나는 여전히 나다. 말도 잘 안 통하는 미지의 세계는 누군가 묘사하는 것처럼 보물섬도 아니었고, 그 낯선 곳에서 배 좀 곯고 체력 소모 좀 하고 온다고 해서 나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전에 알던 내가 아닌 새로운 인간이 되어 오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곳에서도 나는, 자주 잊어버리고 가끔 깨달았다. 살면서 결코 놓치고 가서는 안될 중요한 가치들에 대해, 그리고 내가 곧잘 범하곤 하는 오류와 실수들에 대해.


여행의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지금, 다시 일기장을 편다. 맨 첫 페이지를 펴고 그때의 내 시선과 발끝을 따라가 보려 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이 여정이, 여전히 자주 잊어버리는 나에게 혹은 이 글을 보고 있을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든 어떤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나에게 그러하듯 그 누군가에게도 가끔씩은 다시 떠나고 싶은 여정이 되기를 또한 감히 바라본다.




첫 목적지인 바르셀로나 공항 도착 직전!


그곳에서도 나는, 자주 잊어버리고 가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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