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도 나는,
자주 잊어버리고 가끔 깨달았다.

여행 알못의 어쩌다 유럽 여행기_note 1 : #바르셀로나 #스페인

by 금요일

정말 가는구나. 사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복잡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대로 떠날 수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앞이 깜깜한 상황이었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도 혹시 모를 상황이 걱정돼 마음 편히 준비를 할 수가 없었는데, 정말 하늘이 도우신 게 틀림없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아니, 평소에 숱하게 지나치곤 했던 서울역이 이렇게나 사람을 설레게 하는 장소였던가. '여행'이라는 약의 플라시보 효과는 생각보다 강했다. 아직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집을 나서면서부터 지나친 모든 것들이 마냥 재밌고 좋아 보이기만 했으니까. 별 것 아닌 면세점 광고 표지판도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항공권은 여행 1달 정도 전에 샀기 때문에 비교적 급하게 산 것이고 경우의 수도 많지 않았지만, 꽤 훌륭한 선택이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파리 왕복에 베트남을 경유하는 노선이었는데, 가격도 68만 원 정도로 착했고 경유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기내식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인천에서 하노이로 떠나는 비행기가 출발하기 직전, 친구가 이어폰 한쪽을 내밀며 이륙할 때 꼭 이 노래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몸이 떠오름과 동시에 귓가에서 가수 '거북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비행기에 앉아서 듣는 '비행기'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떠나게 된 여행이라 그런지 더더욱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노래의 가사처럼 파란 하늘 위로 훨훨 날아 어느새 베트남 하노이의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P20160113_195325231_C3123253-5F9E-4220-8E94-F13D898143B5.JPG
P20160113_195319397_0E7AB47F-D022-45EA-91A5-5DA3C552496B.JPG
P20160114_015038130_8A20C836-5772-47FC-894B-0329ABEE3310.JPG
P20160113_192041000_52219738-4C2F-4A07-8713-2D073415CB5A.JPG


3시간 정도 대기 시간을 가지고 드디어 파리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인 <인사이드 아웃>을 극장에서 봤었지만 친구가 보지 않았다고 해서 같이 한 번 더 보았는데 여전히 '빙봉'이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걸렸다. 나는 중요한 기억들을 얼마나 많이 잃어버린 채 사는 걸까. 라일리와 달나라에 가야 한다던 빙봉은 결국 달나라가 아닌 우주 저 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라일리는 여전히 웃고 울고 화내며 전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 빙봉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인사이드 아웃>을 보며 눈물 젖은 밥까지 해치우고 나서는 기절하듯 잠에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자다가 깨어나 기내식을 한 번 더 먹고 나니 어느새 파리의 상공에 떠 있었다. 드디어 1차 목적지에 도착했다. '1차' 목적지라 칭한 이유는, 이 곳에서 몇 시간 후 최종 목적지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를 다시 타야 했기 때문이다.


P20160114_154459593_8D7A327E-8B01-4DF6-9462-8EBC6C8D0C0A.JPG
P20160114_155126805_55A36330-5A9D-464B-9320-53AC31876DC3.JPG


프랑스 파리의 첫인상은, 아침 6시의 서늘함과 축축함, 어두움 정도로 나에게 남아있다. 그리고 또 하나, 착륙했을 때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비행기 창문 너머로 어둑어둑한 배경 속에서 빛나던 샤를 드 골 공항의 프랑스 국기 삼색은 내가 정말로 프랑스에 왔음을 인지시켜 주었고, 그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사진처럼 남아있다.


짐을 찾고 입국심사를 하자마자 친구와 바르셀로나행 비행기 체크인을 하러 갔다. 유럽 저가항공사인 easyjet을 이용했고 7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체크인 후 탑승까지 시간이 남기도 했고 배도 슬슬 고파오던 참이었기에 맥도널드로 들어갔다. 한국에서야 맥도널드를 가든 롯데리아를 가든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일이지만, 그곳에서는 그것마저 큰 도전이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언어로 끼니를 해결하는 첫 미션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예상 가능한 전개로 별 일 없이 햄버거를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이렇게 별 것 아닌 것에서도 뭔가 해낸 것만 같은 착각에 뿌듯함이 잠시 얼굴을 스쳤고, 역시 사람은 큰 성공 하나보다도 작은 성공들을 여러 번 맛보는 경험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P20160114_181922663_733426F2-FE8D-4579-BA0A-E32993BA5220.JPG 빅맥과 더블치즈베이컨 햄버거로 추정된다. 가격은 합해서 12.3유로!


몇 시간쯤 지났을까, 이제 정말 최종 목적지로 간다. 날씨가 너무나도 맑고 화창해 환영받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다. 바르셀로나행 비행기가 날아오르고 구름이 발 밑에 깔려있을 때쯤, 밝은 대낮의 하늘은 아직 찍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꺼냈다. 신중하게 각도를 조절하며 바깥 풍경을 찍자 옆에 앉은 외국인 여성분께서 호기심을 보이며 사진 잘 나왔냐며 물어왔다. 그렇다고 하고 사진을 보여준 다음 몇 마디 짧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한다는 것이 괜히 긴장되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햇볕 쨍쨍한 날씨만큼 쾌활한 분 같아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졌고 편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시작이 좋다. 기분 좋은 울렁임이 커져간다.


P20160114_213819767_67B262F5-AFBD-45F5-9366-16BCBB8F3354.JPG
P20160114_233622037_2A925355-BE5F-4AE6-B112-D86464487A4B.JPG
P20160114_233601375_651C7A52-E74A-4F5B-8FA7-F7452C62F35E.JPG


드디어 스페인, 바르셀로나! 독서광이자 독서왕이신 엄마의 추천으로 보았던 어느 스페인 여행 에세이가 머릿속을 스친다. 이 곳까지 오기 위해 장장 몇 시간을 날아왔던가.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피부로 느껴지는 따뜻한 온도와 줄지어 서 있던 야자수 나무들은 내가 기억하는 스페인의 첫 모습이고, 그것은 나를 더욱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P20160114_234431863_F1611F32-6F30-4A51-853A-BDFF9299C473.JPG
P20160114_235735639_BEA96274-1E43-447D-ACED-1E17C4C9C929.JPG
P20160114_235407297_B2A2606F-4F99-425A-B8FA-91EE52F31DFA.JPG
P20160115_000151445_2844AE41-397E-4275-A214-5260E5492AF5.JPG


바르셀로나의 도심인 카탈루냐 광장(위의 네 번째 사진)으로 가기 위해 공항버스에 올랐다. 유심이 없는 상태였기에 와이파이가 되는 이 버스가 참으로 반가웠다. 위의 사진들은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이는 곳들을 찍은 것인데, 안에서 바라보는 밖은 보이는 것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제 카탈루냐 광장에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면 정말 목표 달성이다. 숙소는 구엘 공원 근처에 있는 곳이었고,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했다. 3명이 5박을 하는 데 27만 7천 원 정도가 빠져나갔으니 1명당 하루에 1만 8천5백 원 정도 들었다고 볼 수 있다.


시내버스를 타는 과정은 역시나 땀을 좀 흘려야 했지만 무사히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우리가 내려야 할 정류장은 구엘 공원에서 한 정류장을 더 가야 했기에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안내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버스가 구엘공원에 가까워질 때쯤 갑자기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빠끄 구엘, 빠끄 구엘." 하고 연거푸 말씀하셨다.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는 관계로 무슨 말씀을 하신 건지 정확히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황상 우리가 구엘공원을 보러 온 관광객들인 줄 알고 내리는 곳을 놓칠까 봐 계속 일러주신 것 같았다. 간단한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풀가동 해 '우리는 여기에서 내리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라는 문장을 할아버지께 전달하고자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공교롭게도 할아버지와 우리는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내려서도 계속 '빠끄 구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뭔가 알려주시는 것 같았고 얼마간 차마 발이 안 떨어지는 듯 망설이시기도 했다. 물론 우리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신경 써주신 것 같아 정말 감사했고 낯선 곳에서 이런 호의를 받으니 더욱 마음이 흐뭇한 느낌이었다.


P20160115_015007360_486FE845-E980-448D-AFC5-44D9829FD275.JPG
P20160115_015031309_82C3B608-0D53-4E1E-BD4F-66A3A0DA3621.JPG
P20160115_015148249_206E3C3D-2D11-49F2-AFB3-05D9909504FD.JPG
P20160115_015206820_B8AF2B8C-E1E3-4E38-8EC3-908D71ECA243.JPG


그렇게 도착한 숙소는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우선 가장 많이 달랐던 포인트는, 숙소의 위치가 도심에서 꽤 벗어난 곳이라는 점이었다. 관광지인 구엘공원의 근처에 있어서 위치가 괜찮다고만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저렴한 가격에 별 고민 없이 이 곳으로 선택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 곳은 주요 관광지들로부터 꽤 떨어진 곳에 있었고 구엘공원을 제외하고 어디든 가려한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다음으로는 바로 이 곳이 '반지하'라는 점이었다. 호스트 아저씨를 만나 계단을 내려가면서 조금 당황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장실의 문이 문이 아니라 칸막이처럼 생긴 것에 미닫이식으로 되어 있었다는 것. 이 세 가지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것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괜찮았다. 한국을 떠나 묵는 첫 숙소였는데 현지 분위기가 물씬 났기 때문에 그 점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호스트 아저씨께서 굉장히 친근하게 대해주셨으며 그 지역의 지도를 가지고 오셔서 숙소의 위치부터 어디엔 뭐가 있고 어디서 보면 뷰가 좋고 하는 정보들을 성심성의껏 알려 주셨다. 같이 간 친구와 함께 체크인을 하고 아저씨께 한참 설명을 듣고 있을 때 웬 초췌한 몰골의 사람이 몸뚱이보다 큰 배낭을 힘겹게 든 채 등장했다. 그 모습에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이 바르셀로나 여행의 멤버가 완성된 순간이었다.


셋 중 둘은 장시간의 비행으로 인해, 하나는 돌덩이 같은 짐을 지고 이동한 것으로 인해 모두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숨 좀 돌리고 나서 목욕재계를 하고 나니 벌써 해가 떨어져 밖이 어둑어둑했다. 다들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에 다섯 밤 지내는 동안 하루에 한 끼만 외식을 하고 나머지는 숙소에서 만들어 먹기로 했지만, 첫날은 다들 지친 상태였기에 밖에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무작정 식당이 있을 만한 거리고 나가보았더니 꽤 많은 사람들이 웨이팅을 하고 있는 곳이 보였다. 가게 안에 사람이 많아서 줄이 긴 것은 아니었고, 스페인은 저녁 식사 시간이 우리보다 늦기 때문에 그 시간은 브레이크 타임이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조금 기다리니 곧 가게 문이 열렸고 잊지 못할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때 시킨 것은 빠에야와 깔라마리, 얇은 스테이크, 클라라 맥주였는데 맥도널드를 제외하면 첫 식사이고 현지 음식으로서는 아예 처음이라 그랬었는지는 몰라도 정말 맛있었다. 빠에야는 뭐랄까,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해물탕에 밥 말아먹는 것 같은 친근한 맛이 나면서도 그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확실한 건 우리 입맛에 아주 딱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깔라마리는 하나를 입에 넣고 저작운동을 시작하자마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부드러움이란…. 이게 오징어라는데, 내가 2n년간 먹어왔던 오징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맛이었다. 거기다 클라라 한 잔을 곁들이니 이건 정말 여행의 시작을 축복하는 식사로 더할 나위가 없었다. 현지인들도 많이들 찾는 것으로 보아 운 좋게 동네 맛집에 들어온 것 같았다. 하지만 단순히 맛 때문이 아니라 바르셀로나의 한적한 동네가 주는 이국적이면서도 편안한 느낌에 좋은 멤버들과 함께 있다는 것까지 더해 더욱 감동적인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P20160115_025214850_53F4DD11-B419-441C-AC71-ECAFA5D8A8F3.JPG Las Delicas ! 대만족이었던 첫번째 식사. 음식 사진은 시계방향으로 고기, 빠에야, 클라라, 깔라마리다.
P20160115_032332801_392E4262-802B-4A52-AF55-1C84415ABDEA.JPG
P20160115_032644524_D1C6E699-8A9C-485D-B3EA-E1952DA8605E (1).JPG
P20160115_030933220_B55239C8-9EFE-42EE-9460-8B7CB3D2C572.JPG
P20160115_030252882_34878AC3-8E20-4E70-AF5D-2CF36D83E408.JPG


동네 마트에 들러 5일 치 장을 보고, 호스트 아저씨께서 알려주신 정보를 토대로 동네를 잠시 거닐었다. 숙소 뒤쪽에 작은 동산 같은 것이 있었는데 발 닿는 대로 올라가다 보니 탁 트인 곳이 나왔다. 까만 바탕에 불빛으로 점점이 수놓아진 바르셀로나의 풍경. 문득, 숙소를 여기에 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좋은 풍경을 전세 낸 듯 독차지하고 있을 수 있는데, 반지하면 좀 어떻고 화장실이 안 좋으면 좀 어떠랴!


P20160115_051513896_482116FA-29E7-4B3A-A088-04575B2558A5.JPG
P20160115_051107333_200F9C8C-397C-4620-9F70-9198CEC4FC31.JPG
P20160115_050225719_253F44C4-0810-465C-ADDC-EAC9DADAE126.JPG 당시 나의 아이폰6s는 최선을 다해주었으나,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와 잘 준비를 하고 일기를 쓰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자려고 누우니 떠나기 직전까지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여행을 갈 수는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던 상황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일단락시켜놓고 오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근심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가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막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고 온 걱정과 아직 맞닥뜨리지 않은 걱정에 잠시 마음이 복잡해졌지만 이내 털어버리고자 노력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것은 지지도 않은 빚을 미리 갚는 것과 같다'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차츰 마음을 느슨히 하고 눈을 감았다.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좋은 풍경을
전세 낸 듯 독차지하고 있을 수 있는데,
반지하면 좀 어떻고 화장실이 안 좋으면 좀 어떠랴!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곳에서도 나는, 자주 잊어버리고 가끔 깨달았다.